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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May 23. 2021

010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100일 글쓰기

바야흐로 콜바넴의 계절이 돌아왔다. 항상 이맘때쯤이 되면 콜바넴이 생각난다. 초여름, 매미소리, 푸른 하늘이 다시 콜바넴을 찾게 만든다. 올리버와 엘리오가 나를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콜바넴을 사랑하는 건 아마 누구나 첫사랑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리버의 전화를 받은 뒤 모닥불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엘리오를 보며 나를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첫사랑을 이루었겠지만,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더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사랑한다.


또한 이 영화는 나에게 특별하다. 앉은 그 자리에서 두 번이나 본 영화이기 때문이다. 당시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공부가 너무 되지 않는 날이었다. 집에 가서 영화나 봐야지 하고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워서 친구가 추천해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처음 <캐롤>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동성애적인 요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그들의 사랑이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도대체 언제부터 둘이 사랑에 빠졌는지 이해하지를 못했다. 영어 듣기 평가를 볼 때마다 감정을 이해하는 문제를 틀렸던 나는 역시 이번에도 남의 감정을 읽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보았다. 언제부터 둘이 사랑에 빠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본 콜바넴은 그저 나를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과 콜바넴의 두 주인공을 사랑하는 마음, 두 가지의 사랑하는 마음이 불쑥 나에게서 튀어 올랐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가 있다니,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니, 그저 기쁘고 행복했다.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있다는 것에 특별함을 느꼈다. 게다가 두 주인공은 나를 사랑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의 사랑이, 깊고 깊은 사랑이 나를 물들게 만들고 나의 사랑을 추억하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엘리오가 올리버의 논문을 칭찬했을 때 올리버가 부끄러워하며 수영장에 뛰어드는 장면이다. 첫 번째 볼 땐 왜 저러나 싶었는데, 두 번째 볼 땐 너무 좋아서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엘리오의 한 마디가 올리버의 마음을 흔들어 놓자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굴러 수영장에 빠지는 장면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 장면을 계속해서 보곤 했다.


콜바넴의 후속편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 영화를 볼 땐 아무런 스포 없이 보았기 때문에 퀴어영화인지도 몰랐고, 아련한 첫사랑과 관련된 영화인지도 몰랐다. 그저 둘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에 올리버가 자신의 약혼은 고백했을 때에도, 아버지아 엘리오를 위로해줄 때에도 어떤 정해진 결말 없이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그들이 어떻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았다. 그렇기에 후속편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올리버가 엘리오를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고(나쁜놈이니까 약혼녀가 있었다니!) 그저 올리버는 엘리오의 첫사랑으로서 추억되었으면 좋겠다. 이것의 나의 결말이다.


곧 다음주면 6월이 된다. 이제 진짜 콜바넴의 계절이 돌아온다. 후덥지근한 날씨, 서로 사랑하는 두 남자, 그리고 이탈리아의 한 소도시, 이 모든 것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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