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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가면을 벗습니다

페르소나 없이 나를 만나는 시간

by MPL

가면을 쓰고 삽니다

페르소나(Persona).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던 가면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적 인격'이라고 부릅니다.


낮 동안, 우리는 수많은 가면을 씁니다.

집에서는 아빠의 가면을 씁니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회사에서는 팀장의 가면을 씁니다. "이번 프로젝트, 우리가 해냅시다."

친구 앞에서는 또 다른 가면을 씁니다. "나? 요즘 잘 지내."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가면을 써야 합니다.

사회생활이란 결국 적절한 가면을 골라 쓰는 일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갑니다. 직장인의 가면을 씁니다.

회의 시간, 리더의 가면을 씁니다.

점심시간, 동료의 가면을 씁니다.

오후에 고객을 만나면, 전문가의 가면을 씁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남편과 아빠의 가면을 씁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면을 바꿔 씁니다. 썼다 벗었다, 또 썼다 벗었다.

그러다 보면 문득 헷갈립니다.

'어떤 얼굴이 진짜 나지?'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화장을 지우는 순간

화장을 하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화장을 지우면 편안합니다. 피부가 숨을 쉽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끄럽기도 합니다. 쌩얼을 보여주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왜일까요?

화장이 나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화장한 얼굴만 기억합니다.

그래서 진짜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화장이 한 겹 한 겹 쌓이면 피부가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답답합니다.

페르소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면이 한 겹 한 겹 쌓이면 내 자아가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답답합니다.


새벽에는 관객이 없습니다

새벽에는 모두가 잠들어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관객이 없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무대입니다. 끊임없이 누군가 저를 보고 있습니다.

고객이, 상사가, 동료가, 가족이 저를 봅니다. 그들 앞에서 저는 적절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새벽에는 아무도 보지 않습니다.

관객이 없는 무대.

연기할 필요가 없는 시간. 가면을 벗어도 되는 순간.


역할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역할이라는 것도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팀장, 누군가의 동료.

관계가 있어야 역할이 생깁니다. 하지만 새벽에는 관계가 멈춥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시간에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아빠도 아니고, 팀장도 아니고, 동료도 아니고.

그냥 나. 오직 나 자신. 그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에 새벽만큼 좋은 시간도 없습니다.

낮에 이 질문을 던지면 역할들이 대답합니다.

"나는 팀장입니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남편입니다."

하지만 새벽에 이 질문을 던지면 다릅니다.

역할이 아닌 본질이 대답합니다.

"나는... 사실 지쳐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는... 가끔 외로운 사람입니다."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진짜 목소리가 들립니다.


부끄럽지만 진짜입니다

화장을 지우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내 얼굴입니다.

가면을 벗으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내 모습입니다.

새벽은 그 부끄러움마저도 인정되고 용인되는 시간입니다.

완벽하지 않은 나. 강하지 않은 나. 때로 약한 나.

그 모든 것이 진짜 나입니다.

낮에는 이것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벽에는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요. 아무도 평가하지 않으니까요.


숨을 쉴 수 있는 시간

화장품이 피부를 덮으면 피부가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답답합니다.

페르소나가 자아를 덮으면 자아가 숨을 쉬기 어렵습니다.

답답합니다.

하지만 새벽에는 나를 덮는 화장품들이 없습니다.

나를 가리는 가면들이 없습니다.

내 자아는 있는 그대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깊게, 천천히, 자유롭게.

자연인으로서의 나

새벽은 그런 시간입니다.

순수한 나 자신을 만나고 인정하는 시간입니다.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되는 시간.

내 상황에 맞는 가면을 꺼내 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자연인으로서 나 자신을 만나면 됩니다.

역할도 없고, 평가도 없고, 기대도 없습니다.

오직 나만 있습니다.


가면을 벗는 용기

가면을 벗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화장을 지우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나를 마주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새벽은 안전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요. 아무도 평가하지 않으니까요.

여기서 연습하면 됩니다. 가면 없는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연습.

새벽은 그 연습장입니다.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오늘 새벽도 저는 가면을 벗습니다.

팀장의 가면, 아빠의 가면, 괜찮은 사람의 가면.

모두 벗습니다.

그리고 마주합니다.

지쳐있는 나, 불안한 나, 외로운 나.

그것이 진짜 나입니다.

부끄럽지만 인정합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숨을 쉽니다.

깊게, 천천히, 자유롭게.


오늘 새벽, 저는 또 한 번의 가면을 벗습니다.

하루 종일 썼던 역할들을 내려놓습니다.

화장을 지우듯, 페르소나를 지웁니다.

그리고 마주합니다.

맨얼굴의 나, 가면 없는 나, 순수한 나.

부끄럽지만 괜찮습니다. 새벽은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요.

숨 쉴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새벽에는 가면을 벗습니다.

그것이 새벽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20251123.jpg 20251123 오늘의 날씨 _ 춥지는 않은데 초미세먼지가 있는 날이네요. 마스크를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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