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향어부터 티키타카까지,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언어
충동성이 높고 말이 많은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즉각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앨리스도 생각한 것을 바로바로 말하지 않으면 못 견뎌했다. 이 때문에 나는 아주 곤혹스러운 상황을 여러 번 마주했다. 앨리스가 내뱉은 즉각적인 말에는 무례한 표현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앨리스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때로는 아이의 입을 막은 적도 있었고 때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며 재빠르게 자리를 이동한 적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일화는 다음과 같다.
▶아줌마! 할머니!
앨리스는 매우 외향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한창 말이 많아지던 만 3, 4세 시기에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인사하고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앨리스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성인 여자일 경우 문제가 되었다. 앨리스가 대화 상대를 부를 때 자신만의 기준을 적용하여 아줌마 혹은 할머니라고 불렀던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아줌마나 할머니라는 호칭이 적절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호칭을 쓰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동이었다. 심지어 앨리스는 누가 봐도 아줌마나 할머니가 아닌 사람에게 아줌마 혹은 할머니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에게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알려주고 ‘아줌마’나 ‘할머니’라는 호칭을 아예 쓰지 못하도록 했다. (사장님이라는 호칭도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적어도 아줌마나 할머니처럼 무례한 표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몇 달간 연습을 반복한 결과 앨리스는 더 이상 모르는 사람에게 아줌마나 할머니라는 호칭을 쓰지 않게 되었다.
▶탈모
앨리스는 병원에서 종종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앨리스는 너무나도 큰 목소리로 “왜 저 사람은 탈모예요?”라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던 일은 빨리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목발을 짚거나 깁스를 한 사람을 본 경우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항상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나에게 큰 소리로 “엄마, 이 사람은 왜 다쳤어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나마 이 경우에는 당사자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앨리스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중년의 남성을 볼 때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엄마, 저 아저씨가 담배 피워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의 공통적인 문제는 앨리스가 공개된 장소에서 다른 사람에 관한 말을 큰소리로 한다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마치 자신이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앨리스가 다른 사람에 대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말을 참지 못하는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에게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로 엄마 귀에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몇 번 꾸준하게 지도하니 앨리스는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내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앨리스는 귓속말을 할 때 자신이 말하고 있는 대상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누구라도 그런 장면을 본다면 귓속말을 하는 사람이 자기 말을 몰래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에게 이제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하고 싶으면 아무도 없을 때 말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몇 달간 같은 지시를 반복한 결과 드디어 앨리스가 아무도 없을 때만 다른 사람에 관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다른 사람에 대한 말이 서서히 줄어든 앨리스는 만 5세가 된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외모나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왜 얘는 말을 못 해요?
앨리스가 다른 사람의 외모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었지만 적어도 엄마인 나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라 대처가 어렵지는 않았었다. 아이가 말을 하는 시점만 조절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외모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인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직접 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무례함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상황이 벌어진 후라면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앨리스는 종종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앨리스는 병원이나 발달센터에서 체격은 비슷한데 말을 하지 못하는 또래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꼭 그 아이의 엄마에게 가서 얘는 왜 말을 못 하냐고 물어보았다. 이미 상황이 벌어진 이후에는 내가 뒤늦게 아이의 입을 막거나 다른 말을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의 뒤에서 죄인이 된 심정으로 불편하게 상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때마다 모든 양육자들이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우리 아이는 아직 말을 배우고 있어서 그렇다'라고 현명하게 답을 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 또한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처지이기에 당시 그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죄송할 뿐이다.
앨리스가 만 5세를 넘기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거는 상황은 거의 사라졌다. 이는 자연스러운 성장의 결과일 수도 있고 약물(아빌리파이)의 효과일 수도 있다. 아무튼 앨리스가 남들에게 민감한 질문을 직접적으로 할까 봐 우려할 일은 이제 없다. 대신 앨리스는 본인이 관심이 있는 상대에게는 질문은 안 하더라도 가까이 다가가서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을 너무 부담스럽게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앨리스가 이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안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