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향어부터 티키타카까지,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언어
앨리스가 51개월일 때의 일이다. 당시 앨리스는 자신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주 보는 사람끼리는 왼쪽과 오른쪽이 반대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마침 내가 그 사실을 알려주자 앨리스는 깜짝 놀라며 매우 재밌어했다. 그런데 그 이후 앨리스는 집요하게 자신의 왼손과 오른손을 반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반면 타인의 왼손과 오른손은 바르게 말했다. 나는 앨리스가 왼쪽과 오른쪽이 헷갈리는 줄 알고 몇 번 정정해 주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아무리 알려줘도 자신의 왼손과 오른손을 일관적으로 반대로 말했다. 개념이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왼손과 오른손을 반대로 말하는 것 그 자체에 재미를 느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일일이 대꾸하는 것을 포기하고 반대로 말하게 놔두었더니 그 후로 며칠 동안 같은 말(이쪽이 왼손이고 이쪽이 오른손이에요)을 수십 번 이상 반복한 후에야 그 말을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사실 앨리스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꽤 오래된 습관이다. 반향어가 슬슬 끝나가던 시점부터 앨리스는 ‘엄마’와 같은 간단한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게 같은 말의 반복인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앨리스가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해서 말을 더듬는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앨리스는 점점 할 줄 아는 말이 복잡해지고 말의 길이도 길어졌는데도 쉬운 단어들을 반복해서 말했다. 말 반복은 단어뿐만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문장도 반복해서 말했다. 위에서 소개한 일화처럼 한 문장을 반복할 때도 있었고 여러 문장을 반복할 때도 있었다. 여러 문장을 반복할 때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인지 눈치채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이가 말한 문장이 당시 상황에 우연히 맞아 들어가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앨리스는 그렇게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다가 거기에 음을 붙여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했다. (물론 기존에 있는 노래를 외워 부르기도 했다.)
앨리스는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의미 없는 소리를 반복하는 일도 매우 많았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잠시도 입을 쉬지 않고 의미 없는 소리를 반복했다. ‘트트트트트’ 혹은 ‘타타타타타’와 같이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주로 냈는데 신기했던 점은 그냥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를 맞추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미 없는 소리를 계속 내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나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기도 했다.
하루는 앨리스가 이렇게 의미 없는 소리를 계속 내다가, 갑자기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하고,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몰래 촬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앨리스가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슬쩍 웃으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었다. 외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단둘이 자동차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똑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내지 않았다. 따로 중재한 적이 없는데도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똑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을 상동행동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이 상동행동 증상을 가지고 있다. (혹은 과거에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앨리스의 경우에는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날갯짓을 반복하거나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드는 행동, 책장을 계속 넘기는 행동 등을 두 돌 전후에 보였었다. 그런데 상동행동에는 이러한 운동적인 상동행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동행동에는 같은 단어나 문장을 반복하는 언어적 상동행동도 있다. ‘이쪽이 왼쪽이고 이쪽이 오른쪽이에요’라는 문장을 며칠 동안 수십 번을 반복한 앨리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자폐스펙트럼 아이들은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감각추구, 불안 완화, 각성 조절 등) 앨리스의 경우에는 아무 때나 같은 말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 혹은 주양육자인 나와 함께 있을 때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리고 같은 말을 반복할 때 앨리스의 표정은 너무나도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앨리스에게 같은 말의 반복이란 감각 자극 추구와 더불어 순수한 즐거움의 목적이 가장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