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있었던 일이다. 앨리스가 갑자기 나에게 엄마는 장애인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장애인이 뭐냐고 묻는다. 우리나라는 장애를 크게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분류하지만, 정신적 장애는 아직 설명하기 힘들어서 일단 신체적 장애에 대해서만 말해주었다.
“귀가 잘 안들리거나, 눈이 잘 안 보이거나, 말을 잘 못 하는 경우 장애인일 수도 있어.”
그러자 앨리스가 말했다.
“그럼 00 이는 장애인이야? 말을 잘 못 하는데?”
“그건 엄마도 몰라. 병원에서 평가하는 거야.”
“그럼 00 이는?”
“엄마도 몰라.”
내가 잘 모른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앨리스는 자꾸 주변의 다른 아이들이 장애인이냐고 물었다. 그들이 장애인인지 아닌지 나는 전혀 알 수 없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예로 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앨리스가 이해하기 쉽도록 가장 가까운 가족인 아빠를 예로 들었다.
“아빠가 장애인이야. 귀가 잘 안 들려서 보청기를 꼈잖아.”
그때 앨리스가 어찌나 놀라던지 동그란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아빠가 장애인이라니 말도 안 돼!”
앨리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앨리스가 장애인이라는 말을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부정적인 의미였던 모양이다. 장애인은 불쌍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항상 자기가 도움을 받고 든든하게 의지했던 아빠가 장애인이라니 앨리스의 표정이 미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빠에게 물어봐.”
앨리스가 자꾸 믿기 어렵다고 하자 나는 직접 아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아빠, 장애인이야?”
“응.”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답했다. 앨리스의 표정은 더욱 복잡하게 바뀌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럼 나도 장애인이야?”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언젠가는 앨리스가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었는데, 이렇게 일찍 질문할 것이라고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앨리스의 질문은 당연한 순서였다. 앨리스로서는 아빠처럼 본인도 보청기를 끼고 있으니 아빠가 장애인이라면 본인도 장애인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서 고민이 되었다. 앨리스에게 장애인이라고 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니, 그전에 앨리스는 장애인이 맞는가?
앨리스는 난청과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등록된 장애인은 아니다. 세상에는 앨리스처럼 장애(impairment 혹은 disorder)가 있으나 등록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매우 많다. 장애가 있다고 모두 장애인이라고 한다면 장애인의 범위가 비상식적으로 넓어질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앨리스에게 법적으로 등록된 장애인으로 장애인의 범위를 한정해서 말하기로 했다.
“음… 아직은 아니야. 청력이 더 떨어지게 되면 (장애인이 될 수도 있어).”
“그럼 내가 아줌마 되면 장애인이야?”
“그건 그때 가봐야 알아.”
“나는 장애인이 되기 싫은데.”
앨리스가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형성된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앨리스가 매우 안타깝기도 했다. 앨리스가 장애인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앨리스는 이미 두 가지 장애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가지는 것처럼 아이러니하고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가 장애인이라는 말을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길래 이렇게 부정적으로 인식하는지 알고 싶어졌다.
“장애인이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어? 유치원에서?”
“아니야 책에서 읽은 거야. (뜬금없이) 나는 눈치가 빨라.”
앨리스 특유의 회피 및 횡설수설 화법이 시작되었다.
“엄마 눈치가 빠른 건 뭐예요?”
“말을 안 해줘도 잘 안다는 뜻이야.”
“나는 눈치가 정말 빨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앨리스가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앨리스는 끝까지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도 장애이해교육 기간(장애인의 날)에 유치원에서 장애인에 대해서 배운 것 같았다. (초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앨리스가 저렇게 장애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 것도 납득이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장애이해교육은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요구가 다른 동등한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비장애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연민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재 7세가 된 앨리스는 본인의 청각장애는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청력이 더 떨어지면 등록장애인이 되리라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같은 청각장애를 가진 아빠가 있기 때문에 청각장애로 인해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나에게 당면한 더 큰 숙제는 당연히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음을 아이에게 알리는 일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개인에 따라 그 증상이 천차만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자폐라는 말 그 자체가 최악의 낙인으로 여겨진다. 사회는 자폐인의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자폐인을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자폐가 있다고 독립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데 사회적 인식이 이렇다 보니 자폐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자폐를 숨긴다. 이런 나라에서는 자폐가 있으면서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성인 롤모델을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이에게 본인의 진단명을 알리지 말라고 한다. 아이가 충격을 먹고 인생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안다. 앨리스도 자신의 다름에 대해 조만간 눈치챌 것이다. 본인의 표현처럼 앨리스는 특정 영역에서는 머리가 비상하고 눈치가 매우 빠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차별적이고 편협한 말로 아이를 휘두르려고 하기 전에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미리 정확히 파악하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가 자신의 다름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시기를 대비해서 아이가 자폐를 이해하고 긍정적인 자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성인 자폐인의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폐임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외국의 사례를 끌어오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아이가 원한다면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살게 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자폐 인식이 너무 나빠서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해외로의 이주도 생각 중이다. 가능한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나는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기획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자폐가 더 이상 낙인이 아닌 곳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