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방황중인 설렘

30 second love story _ Peggy

by 윤서



지난 2월, 올리브 그린 색의 스웨터를 마지막으로 뜨개 도구는 다시 정리함 깊숙이 들어갔지만 1년 반 정도 뜨개질을 하는 동안 늘 함께 했던 것이 오디오북이다.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이 아깝단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뜨개질만으로 보낸 하루는 시간을 낭비한 기분이 들곤 했다. 뜨개질은 단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순면사'로 짠 스웨터를 구하기 힘들어 직접 만들어 입는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만 가치가 있었다.


독서와 비교해서 뜨개질의 효용성을 단순화시키는 게 혹시 지적 허영심인가 싶어서 가치를 평가하는 나의 협소한 기준을 탓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마음이 고쳐지는 건 아니라서 생각해 낸 게 오디오북이었다. 이전까지는 오디오북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흡수하는 속도나 독서 중에 잠깐씩 행간에 머물며 사유하는 시간을 맞춰주는 오디오북은 없었고(없는 게 당연하고), 낭송하는 목소리도 중요했다. 다행히 그런대로 마음이 맞는 오디오북 사이트를 찾았다. 덕분에 어디서도 살 수 없는 내 취향 맞춤형의 스웨터와 조끼 여러 벌과 장갑 머플러 양말 가방까지 뜨면서, 오래전에 읽어서 거의 잊었던 고전의 매력을 다시 음미하고, 한때 젊음을 관통했던 여전히 유명한 글과도 재회했다. 종이책만큼 다양하진 않았지만 뜨개질을 하면서 책을 듣는다는, 일석이조의 장점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뜨개질을 하며 오디오북을 듣는 시간은 내게 꼭 필요한 숨,이었다. 뜨개질이라는 것이 보기보단 고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서 쉼, 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의 신체적 움직임은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고 뜻밖으로 정신의 빈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가끔은, 흔하게 사용되어서 정이 가지 않는 '힐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다. 게다가 책을 만나는 방법으로는 가장 느슨하다고 할 수 있는 오디오북까지 보태지니 자칫 무용하다는 누명을 쓰기 쉬운, 윤슬 없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하루도 그리 아깝진 않았다.


이렇게 뜨기와 듣기를 동시에 하는 매력에 빠져서 한정적인 오디오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 유튜브에서 찾아 듣는 강의(최재천, 유시민, 김경일, 김창옥)도 생겼다. 각각 다른 분야와 매력을 지닌 분들인데 그중 김창옥 강사님은 마음의 사소한 억울함을 덜어주는데 탁월한 강의를 하신다. 내가 들어본 강연자 중에서 '뼈 있는 농담'을 가장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다. 게다가 유머 코드까지 맞아서 이 분이 강의 중에 하시는 농담엔 늘 재미를 넘어 감탄한다. 때로 심각하고 논리적인 설득보다 진솔함을 해치지 않는 농담 한 마디가 더 빠르게 위로와 공감이 된다는 걸 알았다.


강연 중에 이런 농담을 하신 적이 있다. 남자는 거리에서 마주친 여자를 스캔하는데 딱 2초면 된다. 그 2초 동안 '얼굴이 질서를 지켰는지 질서가 없는지, 혹은 몸매가 장난 아닌지, 장난꾸러기인지' 다 알아본다는 것이다. 저 잔망스러우면서도 화려한 단어 선택에 반해서 정말 쓰러지면서 웃었던 터라 아이에게도 말했더니 세대차인지, 성향차이인지, 나를 다시 웃게 만드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여자도 그래!



여기, 2초 만에 질서와 장난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도 감탄할만한 속도의 사랑법에 관한 노래가 있다. 30초간의 사랑이라니.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사랑법인가?. 뭐든 빠르고 가볍고 미련두지 않는 세대, MZ세대라는 단어는 어른들이 만든 것이지만 소셜미디어가 만든 신인류라고 해도 크게 거부감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짧고 간단해야 이들의 관심을 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긴 글은 안 읽고, (이건 딱히 MZ만의 특성은 아닌 것 같다. 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절망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마치 언어의 단축버튼이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수시로 말을 줄인다. 그리고 그들의 성향을 대변하는 것 같은 이 노래의 가사는,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다른 인생을 수시로 바꿔가며 보여주는 작은 화면 안에서 이상형을 발견하고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 낯선 사람을 보고 설레며 사랑에 빠진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인걸 알면서도 그 사람과의 미래를 상상하며, 좋아한다고 고백한 후 함께 커피를 마시고, 결국은 결혼을 하고 가족까지 만드는 일이 30초 안에 벌어진다. 하지만 곧 현타가 와서 화면을 넘기지만 이런 일은 매일밤 새로운 사람들로 반복된다,


는 내용이다.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현실이 되면 안 될 것 같은,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변화인가 싶어서 묘한 감정이 든다. 그저 즐기기만 하면 퍽 귀여운 노래지만, 노래를 다 듣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나이 든 사람'다운 생각이 이어진다. .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작은 액정화면을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만큼의 타인을 만난다.(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순기능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풍요 속의 빈곤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인생 전체가 그런 것처럼 예쁘고 좋은 것만 보여주며, 부러움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우리는 예전 같았으면 몰랐을 나와 다르게 사는 타인의 삶을 수시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며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초라하다고 느낀다. 설령 인간의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해도 이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이런 것들은 단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과시욕과 인정욕구, 그리고 외로움이 뭉쳐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어린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니지만 인생을 많이 산 사람들에 비해 경험이나 판단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에게는 더 큰 고통이나 삶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가끔 이를 자각해서, 보여주는 게 전부가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것이니,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착각으로 인해 고통받지 말라는 조언에 급하게 공감하지만,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사람의 눈만큼 허약하고 허영스러운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한 가지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걱정은 세대를 막론하고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물론 순기능도 많지만 특히 어린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경험을 통해서 쌓이는 나만의 굳은살이 박힌 삶의 부피가 아닌, 누군가의 자랑과 과시로 만들어진 것들이 행복한 삶의 기준이 될까 봐 안쓰럽다.


그래도 노래는 상큼하다. 독특한 음색이나 매력적인 창법에 비해 그리 유명한 가수는 아니라서 어쩌면 한국에 계신 분들은 잘 모를 것 같기도 하다. 뮤직 비디오의 구성도 그렇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면 과즙이 터지는 느낌이다. 문득, '30초간의 사랑 이야기'를 '첫눈에 반했다'는 흔한 표현의 구체적인 해석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가볍게 띄워본다. 첫눈에 반하는 게 얼마나 설레고 기적 같은 일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러니,


30초?

그게 어디야. :)



30 second love story _ Peggy




덧붙임 _ Happy Mother's Day


뜬금없게도 '30초 동안의 사랑'.. 어쩌고 라며 글을 쓰고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갈 사랑'에 대해 덧붙임을 하고 있군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라 저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깨달았어요. 이곳은 오늘이 마미데이'입니다. 날짜가 아니라 요일(5월 두 번째 일요일)로 하기 때문에 매년 날짜가 일정하진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 침대로 찾아온 아이와 허그를 하며 인사를 나눴는데(이렇게 쓰고 보니 어린 앤 줄 알겠네요. 서른입니다.ㅎ) 저도 같은 인사를 했더니 아이가 응? 하는 표정이길래, ’너는 헌터 엄마잖아. 원래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진짠거야,‘ 아이가 유쾌하게 웃더군요. 좋은가 봐요. 한국에서 구조된 헌터를 데려와 사랑으로 키운 자신의 노고와 정성이 인정받는 느낌이겠죠. 정상적인 엄마들은 늘 이래요.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고도 사소한 말이나 마음씀 만으로 대차대조표를 맞추며 살아가죠. 문득, 아이가 대학생 때 친구와 LA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온 기념품이 떠올라서 사진을 올립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볼 때마다 웃음이 터져요. 하지만 때로 사랑의 표현은 유치할 때 극대화 되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께 드립니다.:)


Hollywood, Best Mother

Hollywood, Best Mother / 오스카가 드리는 최고의 엄마상입니다. Happy Mother's D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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