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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Oct 20. 2019

혹시 너네 피임하니?

부모님과 섹스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산다는 것은 늘 뒤통수 맞는 일의 연속이라지만 피 섞인 어른의 입에서 '피임'이라는 단어를 다 들을 줄이야. 내가 결혼한 지 일 년 정도 되었을 무렵, '너네 혹시 피임하니?'라는 질문이 어느 날 훅 들어왔다.

'피임 함부로 하지 마라. 그러다가 진짜 아이 갖고 싶을 때 안 생겨.'

놀랍기도 했다. ‘피임’이라는 단어를 어른들이 입 밖으로 꺼낼 때도 있구나. 이 단어를 알고 있기는 하셨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다소 기이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경험담을 조심스레 고백하니 의외로 많은 이들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시어머니에게 들어보았다, 아빠나 시아버지 같은 남자 어른들도 ‘노력은 하고 있니?’라고 물으시더라, 심지어 아들이나 딸을 가지는 비법을 아주 자세히 전수해주시기도 하더라 등등. 생각보다 많은 부모 혹은 일가 친인척들까지 결혼한 자식의 성생활에 대해 거침없이 묻고 관여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다들 그런 간섭에 대해서는 몹시도 불편해하고 있었다. 내가 느꼈던 생경함을 그들도 느낀 것이다.

아이를 만들어라 닦달하는 부모님에게 정작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시절에 티브이에서 해주던 <구성애의 아우성>이라는 프로그램을 녹화해주고 그걸 보라고 했다. 구성애 선생님에게 전적으로 교육의 권한을 맡긴 것으로 엄마로서의 소임은 다 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반면 아빠는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아빠는 초등학생 고학년이 된 남동생과 중학생인 내게 뜬금없이 성교육을 한다며 우리 둘을 앉혀두고, 


‘남자랑 여자는 손을 잡으면 안 돼. 일단 손을 잡으면 그 뒤로 남녀 사이에 책임질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 그러니 절대 남자나 여자아이들하고 손도 잡지 마라. 명심해! 아직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 기억들이 내가 가정에서 받은 성교육의 전부였다.

 정말 이상했다. 삼십 년 넘게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먼 산보며 함구하시던 분들의 입에서 다 건너뛰고 ‘피임하지 마’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 말이다. 결혼한 자식들의 성생활을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가정에서 자식들에게 성지식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은 걸까??

사실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꾸준히 통제하고 간섭하고는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자식들의 성생활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취급했다. 고등학생 시절, 야한 영상을 컴퓨터에 잔뜩 깔아 둔 남편을 발견한 아버지가 ‘너 이런 것 좀 그만 봐라.’라고 호통 친 적이 있었단다. 당시 어렸던 남편은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잘못했어요.’라고 말했단다. 부모님에게 성교육을 받은 경험조차 떠올리지 못한 남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경험은 그렇게 죄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가정에서 ‘딸’로 산다면 성에 대한 통제는 더욱 긴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 아주 이른 통금시간에 얽매이는 것은 기본이고, 숙박을 해야 하는 여행이라면 절대 부모님에게 허락받지 못하고,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러 갈 때 옷차림까지 엄마에게 검열당하는 일은 부지기수이다. 남자 친구와 첫 경험을 가졌던 여자들이 가장 먼저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이 들었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 감정의 근원은 결혼하지 않았다면 성은 아직까지 알 필요도 없는 것이고, 결혼하지도 않고 저지르는 성관계는 있을 수 없다는 가정에서의 암묵적인 규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결혼한 자식들의 성생활은 부모에게 기꺼이 ‘공유할 수 있는 것’ 이어야 한다. 결혼한 부부의 성생활은 한 가문의 구성원을 만드는 일과 직결되는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시간이 조금 흘렀음에도 아이가 없다면 ‘가족계획’의 명목으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피임은 언제까지 할 건지, 성관계를 갖고 있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성관계를 소홀히 하는 건지, 둘 중 누구의 성기능이나 생식 능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등등. 부모님뿐만 아니라 집안의 어른들이라면 너무 가볍게 툭 물어보고 가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젊은 남녀의 성생활을 무조건 통제하려만 드는 것이 바람직한가?



결혼 이전의 자식의 성생활은 금기시 취급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이 되지만 결혼 이후의 자식의 성생활에는 갑자기 의무와 부담까지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간극에서 혼란을 느끼는 동안 성관계는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며 한 명의 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인식은 쉽게 간과된다. 성관계는 남녀 사이에 매우 사적이고 내밀한 일이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한 동시에 한 사람의 인격과도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걸 통제할 권한도 없고, 누군가가 알고 있어야 할 정보도 아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자식은 성에 대해서 감추려고만 하거나 다른 이에게 교육의 책임을 떠밀었던 부모와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영 어색하다. 그동안 성관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열심히 심어주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오직 아이를 낳기 위해 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되어버리다니.


섬세한 존중과 재미난 즐거움이 빠진 섹스 이야기는 아무하고도 나누고 싶지 않다. 절대.



이미지 출처


작가 이름: Phan Phan

브런치: http://brunch.co.kr/@phanphan

인스타그램: @phan. p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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