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샘 Feb 04. 2020

그 나이에 차도 없고 애도 안 낳니?

나이 말고 내 속도에 맞춰 살게요.

우리 집은 자가용이 없다. 평소에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해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자차 없는 30대 부부는 꽤 보편적이지 않은가 보다. 특히 남편이 차가 없다고 말을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차가 없이 불편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반응이 대다수다.


우리 부부는 집에서 서로 일하는 직장이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집에서 3분 정도만 걸어 나가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역은 환승역이라 두 개 노선이 지나다닌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애매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차는 있어야죠. 주말에라도 놀러 다니려면… 30대고, 결혼했고, 둘이 맞벌이면 차 유지비 정도는 충분히 나오잖아요?”


남편은 결혼 전 자차가 있었다. 그러나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곳에 신혼집을 얻고, 집 근처에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으니 이용 가치를 못 느꼈다. 결국 결혼 직전 차를 팔았다. 주말에 놀러 다니 건 서울 밖을 잘 벗어나지 않는 데다가 그마저도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가 필요한 경우라 하면 가끔 서울 밖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인데 그런 일은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


한 달에 한 번 차를 이용하자고 매월 자동차 유지비 명목으로 최소 50만 원씩 써야 할까? 30대의 결혼한 부부니까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그 비용을 지출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역시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교외로 나가고 싶어 유독 몸이 근질근질 한 주말이면 집 근처 주차장에서 차를 렌트한다. 누가 물어올 때면 차 없는 편리함을 설파하곤 하는데 ‘그래도…’라는 반응이 나올 때가 많다.


‘30대이고, 결혼한 부부이니까 자차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차를 매일 이용하든 한 달에 한 번 이용하든 따질 것 없이’라는 생각은 ‘결혼했으면 응당 아이를 낳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고 있고, 그것이 자연스러우니까.’라는 통념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편이 타던 차를 없애기 전에 차를 바꿀까 아니면 없앨까를 두고 차의 효용성에 대해 의논했듯이 우리 부부는 아이의 탄생을 두고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30대라면 누구나 차 한 대쯤 있으니까, 차 없으면 왠지 불편할 것 같으니까.’는 식의 당위성이나 불안함에 휘둘리지 않고, 담백하게 ‘우리에게 차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를 두고 따져 보았듯이 말이다.


아이가 자라기에 우리가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이 사회가 아이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이 많은지, 우리 사이가 아이가 반드시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을지, 없다면 무엇으로 우리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나갈지 등등. 아이의 부모가 된 친구들에게 우리의 고민과 대화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깜짝 놀란다. 아이를 낳기 전, 우리는 그 정도로 깊이 생각하고 낳지 않았고 말이다.


남편이 차를 바꿀까 없앨까를 두고 고민할 때도 일단 결혼 직전에 갖고 싶은 차를 지르고 보라는 친구들도 많았단다. 어떻게든 할부며 유지비며 갚아나갈 수 있다고. 차의 편리함에 못 이겨 와이프도 그러려니 할 거라고. 안 그래도 많은 고정 지출이 발생하는 결혼생활, 차를 살 타이밍을 놓치면 평생 망설이게 될 거라며 남편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도 많은 대화를 하는 우리에게 사려 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게 사사건건 모든 조건을 따져서는 절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추어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몇 살에 그 조건이 충족될지도 모르거니와 그 나이가 되면 생식능력이 떨어져 그땐 아이를 원해도 갖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나이별로 하나둘씩 깨나 가야 하는 미션들을 도대체 왜 수행해야 하는 건지 근본부터 깊이 파고들 기회, 그저 남들이 그렇게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길을 맹목적으로 가려는 건 아닌지 성찰할 기회, 여태까지 그 단계를 충실히 밟아온 우리 삶이 과연 만족하고 행복하기만 했었는지 돌아볼 기회, 그리고 그 단계를 하나쯤 건너뛴다면 우리가 잃는 것과 얻는 것은 무엇인지 따져볼 기회를 갖고 싶었다.


우리는 차가 없어 고정 지출이 크지 않아 돈을 알뜰하게 모아 신혼 1년 만에 직장 근처 작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아이도 없으니 학군이나 주거 환경을 꼼꼼히 고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내 집 장만이 더 빠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대신 걷기가 습관이 되어 둘이 천천히 산책하며 대화하는 여유를 즐긴다.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만큼 차가 넘쳐나는 서울에서 어딜 가든 주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어딜 갈 때 차가 밀리거나 끼어들 걱정도 없으니 정신 건강에 꽤 이롭다.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할 항목이 없으니 생활도 다소 여유롭다.


아이 없는 일상 역시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고 있다. 퇴근하면 나는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일주일에 두 번은 필라테스 수업이 있고 한 번은 미술 수업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독서 모임에 참석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학원에서 드럼을 치는 데 시간을 보내고, 드럼 레슨이 없을 땐 캘리그래피 수업도 듣는다.


물론 우리 둘만의 규칙도 있다. 금요일 저녁은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무조건 단둘이 영화관에서 금요 영화를 즐길 것.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 부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취미 생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편적인 30대 부부 모습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모습이지만 뭐 어떤가. 우리는 이 생활에 무척 만족한다. 마치 이렇게 살기 위해 지난한 여정을 다 거친 건가 싶을 만큼 말이다.


무엇을 가졌든 불행과 불만이라는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게 다 무슨 의미일까


아주 간혹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혹은 몸이 좋지 않아서 차나 아이를 가지지 못한 것 아니냐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시선을 가진 자야 말로 자신의 시선에 갇혀 사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내 삶을 끼워 맞추려 끝없는 비교와 겉치레에 신경 쓰는 사람이야말로 공허와 불행을 자주 느낀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혼에 자녀까지 있는 친구들이 늘어간다. 아이가 없어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줄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비교 대상도 없고, 다른 이들과 견주기엔 너무 독특해 비교 대상에서 늘 우리 부부는 제외된다. 서로 아이의 성장 속도를 곁눈질하며 초조할 일도 없고, 사교육 개수를 세보는 일도 없다. 소비하는 목적이나 항목도 너무 달라 애초에 비교 불가.


남들과 비교할 수 없고, 비교당하지 않는 삶의 형태를 갖추었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많은 것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이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규격에 맞는 삶은 아니지만 본연의 ‘나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30대에 갖추고 있어야 할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삶이 아닌 나의 바람대로 하나씩 문장을 채워가는 삶이 말이다.  



이미지 출처
작가 이름: Phan Phan
브런치: https://brunch.co.kr/@phanphan
인스타그램:@PhanPhan.qp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는 부부 사이를 연결해주는 끈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