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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May 16. 2023

나중에 남편이 죽으면 혼자 어떻게 살지?

시아버지 장례 뒤 남은 고민들


지난겨울,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시아버지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셨다. 당뇨 이외엔 아무런 지병도 없으셨다.


어느 겨울 아침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기 전, 불길한 예감은 이미 머릿속을 스쳤다. 아무리 급한 용건이어도 아침 7시는 전화하실 만한 시간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그전 날 밤 귀가 하지 못한 시아버지를 발견했단 연락은 큰 충격이었다.  


상을 치르는 동안 손님을 맞이하고, 장례 일정을 챙겨야 하는 건 모두 자식들 몫이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배우자를 잃은 시어머니는 비통함에 잠겨 아무것도 하시지 못했다.


시부모님은 유독 사이가 돈독한 부부였다. 대학교 연합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함께 해온 세월이 40년이었다. 시아버지는 재작년 시어머니 은퇴시기에 맞추어 suv한대를 장만하셨다. 그 차로 매주 주말, 두 분이서 전국을 돌아다니셨다. 일명 ‘캠핑족’에 합류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 뒤로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지금, 시어머니는 여전히 남편의 부재를 힘들어하신다. 날이 흐린 날보단 맑은 날에 그리움이 깊어지신다 했다. 화창한 봄날, 함께 외출하던 배우자가 이젠 없으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시어머니는 빠르게 일상에 복귀하였다. 은퇴 뒤, 새로운 일터에 취직하셨고 매일 출퇴근하신다.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신다. 게다가 시어머니 입장에서 ‘시어머니’이긴 하지만, 시할머니와 같이 사시니 완전히 혼자 지내시는 건 아니다.


정작 문제는 나였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나는 자식으로서 아빠를 보내드린 내 남편의 슬픔보다도 배우자를 잃은 시어머니의 슬픔이 더 아리게 다가왔다. 배우자 사별은 자식의 죽음보다도 더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그 말을 알 것도 같았다. 장례식동안 부부가 함께 한 40년의 세월이 어느 한쪽의 부재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보았다. 그 아픈 과정을 보고 나니 ‘배우자’는 내 인생길에서 평생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남편은 나와 ‘한 때’ 같이 사는 사람일 뿐이구나.


그럼 그 이후에 나는 어떻게 살게 되려나?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단 것도 깨달았다.


기혼 여성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남편이 먼저 사라지면 어떻게 살 거냐고. 다들 그런 가정 자체를 두려워했다. 가장 많은 답은 '무조건 내가 먼저 죽을 거야.' 누구나 이게 정답 아님을 알면서 말이다. 필연은 아니더라도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산다. 노후 문제는 곧 여성 문제라고 하질 않던가.


비교적 독립심이 강한 내게도 배우자 부재는 상상하기 두려운 일이었다. 결혼 전, 나는 혼자 10년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덧 남편과 산 6년에 훨씬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은 평생 혼자서 살 순 없다.' 결혼이 내게 준 교훈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혼자서 생을 마감한다.' 죽음이 내게 준 교훈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선 심란한 이 마음을 해갈할 답을 찾지 못했다. 무작정 배낭을 꾸렸다. 잠시 남편 없이 지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남편 없이는 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곳에 갈 거라 다짐했다. 운전하는 남편이 나를 태우고 다녀 안락하게만 여행했던 곳. ‘제주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렇게 무면허 뚜벅이 나는 8kg 배낭을 짊어지고 제주도에 10일을 머물렀다. 혼자인 상태의 내가 무엇을 할지, 누굴 만날지 궁금했다.


‘나 혼자여야만 가능한 여행’이어야 했으므로 숙소는 주로 여성 전용 게스트 하우스를 잡았다. 아무리 좋아도 남편 하곤 절대 올 수 없는 곳으로. 비가 와도 하루 두 시간씩 올레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좋은 장소가 있다면 다음날 운동복을 입고 러닝을 했다. 일정상 빠르게 이동해야 할 땐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제주도 마을버스를 이용했다.



숙소는 총 세 군 데. 오조리의 첫 번째 숙소에선 통성명도 안 한 여행자들과 아침을 나눠 먹고 저녁엔 대화를 오래 나눌 수 있었다. 그에 반해 하도리 두 번째 숙소에선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아름답고 안락한 공간에서 쉬었다. 마지막 세화리 숙소는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책과 시로 여행의 낭만을 더할 수 있었다. 다양한 숙소는 여행이 한층 다채로웠던 이유다. 마지막 숙소 빼면 여성 전용이라 남편 하곤 다시 갈 수 없다. 혼자가 아니라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한 번의 여행으로 생의 고민들이 단숨에 해결되었을 리 없다. 그래도 알 것 같다. 여성이 취향과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그에 맞추어 조합되고 갈 길을 내어준다는 것을. 여행을 준비하다 보니 1인 '여성' 여행자를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참 많았다. 혼자임을 즐기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있다. 세상은 이미 그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여자들은 조금의 용기만 내면 된다. 그 이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혼자인 삶이 그리 두려운 게 아니란 것도 알게 되지 않을까.


(남편에게 왜 남성전용 여행 시설은 없지? 물어보니 '누가 남자끼리 뭘 하고 싶겠어, 그냥 찜질방에서 혼자 널브러져서 자는 게 낫지!' 질색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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