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현장
예술가가 아닌 저 같은 경우는 화가의 아뜰리에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할 경우 종종 작가들의 살아생전 살던 집을 뮤지엄으로 꾸며놓은 곳을 방문하는데
대표적으로 귀스타프 모로의 집이나 모네의 지베르니는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화가의 아뜰리에"라는 명칭은 로맨틱하면서도 환상적인 공간일 것이라는 무지몽매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의정부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이자 주거공간인 4층 건물을 방문해 들어가는 순간
저는 저의 무지함과 편견이 부끄러워졌습니다.
4층이란 건물이 무색하게 작가의 공간은 오로지 "작품"을 위해 배치되고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은 삶의 현장이 아니라 노동의 현장입니다.
지난하고 고되며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 척 클로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
Inspiration is for amateurs the rest of us just show up and get go work
영감은 아마추어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라고 했습니다.
르누아르는 그의 생의 마지막 날까지도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날 그는 침대에서 작은 과일 정물화를 그렸다고 합니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심지어 야전침대를 두고 있기도 하였습니다.
선이 가늘고 고운 작가의 외형, 아름다운 완성된 작품 안에 저러한 고됨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현주 작가의 작품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물들과 누구나 알 수 있는 만화 속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문인화와 사군자화를 전통적인 기법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사용하는 재료 또한 매우 다채롭습니다. 캔버스에 아크릴, 한지에 아크릴, 먹과 크리스털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들을 사용합니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는 파리를 떠나 브뤼셀로 돌아와 조용한 소시민 동네인 변두리 제트라는 마을에서 소박한 아파트에 거주하며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킵니다.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된 화실을 원하지 않았고 언제나 양복 차림에 조끼까지 입고 작업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일상의 사물은 그것에 실용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강박적 의지에서 해방되는 순간 지성적 의미를 갖게 된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최현주 작가의 작품은 르네 마그리트의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경험하는 일상적 사물들을 새롭고 낯설게 느끼게 해 줍니다.
달걀 프라이와 꽃,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은 전혀 조우하지 않을 것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되고 우리가 기존의 어법으로 독해하는 사물의 의미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허물어버립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을 배치하지만 그것이 기괴하거나 이상한 감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감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작가는
"삶은 현실과 비현실적 현상이 교차하는 작은 그릇 안이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위트와 상상력이 가득한 나의 작업으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따스한 행복함을 느끼게 만들고 싶다"라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강렬한 색채와 익숙한 소재를 작가가 가진 경험과 시각을 통해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했지만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 아마도 최현주 작가의 뛰어난 지점일 것입니다
더불어 예술의 여러 가치 중 하나인 인간에 위로와 정서적 충족감을 준다는 본질을 정직하고 우직하게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작품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장점입니다.
그러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 끊임없는 고민과 노동에 의해 성실히 수반되어진다는 것이 제가 화가의 아뜰리에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이었습니다.
작가의 아뜰리에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위트 넘치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