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 < 로제타 >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에 대한 물음 < 로제타 > ( 다르덴 형제, 벨기에, 1999 )
거친 숨소리로 계단을 뛰어가는 그녀. 성에 차있는 발걸음으로 급하게 뛰어가는 뒷모습에 왠지 분노와 불안함이 느껴진다. 작업장에 도착하자마자 어떤 여자에게 때릴 듯이 덤벼들고, 상사인듯한 남자들이 그녀를 제제한다. 그리고 바로 작업복을 입은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숨소리만으로는 몰랐지만 작업복을 입은 그녀의 얼굴은 앳된 소녀다. 이름은 로제타. 산뜻한 뉘앙스의 예쁜 이름과는 달리 그녀의 삶은 팍팍하다. 알코올 중독인 어머니, 비바람이 새어 집 구실을 못하는 트레일러, 먹을 것이 부족해 강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헌 옷을 팔아 생활하며 생계를 걱정하는 그녀는 가난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보지만 수습기간이 끝나면 바로 해고되고, 실업급여를 요청하지만 일했던 기간이 짧아 그마저도 반려된다. 우연히 와플 가게에서 만난 리케와 친구가 되어 평범하게 사는 꿈을 잠시라도 생각했던 그녀.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내가 다르덴 형제를 처음 알게 된 건 2002년작 <아들>을 봤을 때였다. 영화는 전작 로제타의 첫 장면과 상당히 비슷했다. 청소년들에게 직업훈련을 가르치는 남자가 어떤 아이의 뒤를 은밀히 훔쳐보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 계속해서. 그 아이에게 시선을 멈추지 않고, 집요하게 동선 하나하나를 엿본다. 관객들은 영문도 모른 체 주인공과 똑같이 숨죽여 아이를 바라본다. 남자 주인공이 왜 그랬는지 나중에서야 이유가 밝혀지지만 주인공의 상황을 알 수 없는 긴박함, 당황스러움이 거친 숨소리와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가 다 말해준 듯했다. 로제타에서도 다르덴 형제의 특유의 촬영기법이 그대로 드러난다. 어지러울 정도로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그녀의 심리를 느껴보라는 듯 어떤 음악이나 효과음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아들>과는 다르게 로제타에서는 화면의 질감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좀 더 거칠다.
사회문제나, 이념, 계급, 난민 등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감독은 많다. 그 감독들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촬영기법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다르덴 형제의 연출은 뭔가 특별하다. 독보적이라고 할까? 사회를 반영하는 예리함, 그러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출, 형식에 대한 완고함과 고집스러운 방식 등 관객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생각의 시간을 넓혀주는 감독은 몇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다르덴 형제는 애매모호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교집합을 찾아내어 영화적 언어로 잘 풀어내는데 선두에 서있는 감독이다. 관객들이 쉽게 간과하는 부분에 눈과 귀를 열어주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제일 안타깝게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생존의 제일 밑바닥까지 갔다고 생각되는 장면은 로제타가 생리통이 심해 계속 배를 웅크리며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 여자들은 알 것이다. 이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약국이나 병원에 갈 돈이 없어 아랫배를 드라이기로 따뜻하게 해주는 장면. 감독이 로제타의 절박함과 극한의 힘듦을 묘사하러 이 장면을 넣었다고 했다면 정말 크게 성공한 셈이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도 주인공 케이티가 무료급식소에서 원하는 만큼 음식을 가져가도 된다는 자원봉사자의 말에 몰래 숨어서 깡통 캔의 음식을 손으로 마구 퍼먹는 장면과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가난이 영화 속 ‘로제타’와 ‘케이티’를 이런 상황까지 이어지게 만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견딜 수 없는 마음의 파동이 전해진다.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장면들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영화 개봉 후 1년 만에 벨기에에서는 ‘로제타’ 법이 시행되어 청소년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질적인 결과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 사회문제를 다룬다면 다 그렇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까? 감독들은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윤리적인 면죄부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제도적으로 뭔가 변경되기까지 아마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며 공감은 할 수 있다.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며, 좀 더 친근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과연 내 태도는, 내 마음가짐은 어때야 하는가?를 계속 상기시키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름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영화는 그 주인공을 유심히,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감독도 그 중요성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제목을 짓는다. 포스터는 전면적으로 그녀의 우울한 눈빛의 얼굴과 이름이 크게 나와있다. 이 포스터 한 장 만으로도 영화를 다 말해주는 듯하다. 일자리를 갖고, 친구도 사귀고, 평범한 삶을 살기 바라는 그녀에게, 힘들어 울고 있는 그녀에게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Wirtten by concub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