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상
우리는 예술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개성과 변화를 발견하는 경험을 합니다.
예술로 소통을 하는 작가들은 다양한 층위로 존재하고 각자의 방식을 보여주면서도 세대별 공통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이셀러리가 만난 젊은 작가 "김연정"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지금에 있어 회화의 영역은 더이상 캔버스 위에 구현되는 것에 가두어지지 않고 영역의 파괴와 넘나듬을 통해 새로운 모색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진 작가들의 경우는 디지털 아트, 미디어 아트 쪽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그 흐름이 하나의 대세이기도 합니다.
김연정 작가는 현대적 매체로 작업을 진행하기에 좋은 소양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림 공부를 위해 2018년에 SI 그림책 학교를 들어갑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새롭게 "그림책" 이라는 독서와 스토리 텔링에 관심을 기울이며 작업의 또다른 길을 찾았다는 것은 남다른 지점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색연필로 작업을 하면서 본인만의 시각 언어를 찾고 있습니다.
작가의 책상 위에는 색연필이 한가득 있습니다.
디지털 작업에 누구보다 능숙할 것 같은데 "색연필"이라는 소재를 택했다는 점 또한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작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았습니다.
작품 활동과 연관 있거나 창작 활동을 위해 하고 있는 취미가 있으실까요?
: 작품 활동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감상을 글로 정리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작품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활동과 교류가 쌓여 추후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 스스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목이 될 법한 저만의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창작하는 행위를 통해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릴 때면 시간이 금방 가버리는 것도 좋았습니다. (물론 놀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직업으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표현 방법에 있어서는 이런 저런 상상력을 버무려 보겠지만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 내 주변의 이야기입니다.
즐기기 위함이지만 작품 영감의 원천을 "독서"라는 고전적이고 아날로그적 방법에서 찾는다는 점
그림의 동기가 "튼튼한 자아를 형성하기 위함"이라는 작가의 대답은 젊은 작가가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패기와 트랜디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였습니다.
본인의 작품 활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과 작가를 소개해 주세요
: 데이비드 호크니의 나무 연작 시리즈입니다.
호크니는 현존하는 세계의 거장입니다. 수영장 시리즈를 비롯해 대중들에게 작품이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위의 그림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가 고향에서 어머니가 남긴 집에 머물며 10년간 작업한 풍경화 중 하나인데 캔버스 50개를 이어붙였다고 합니다.
작가는 밑그림 없이 현장에서 50개의 캔버스를 각각 스케치 했고 오랫동안 바라보기 그리고 열심히 바라보기가 그의 삶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행위이자 큰 기쁨이라고 말했는데 저도 그렇게 세상을 오랫 동안 섬세하게 바라보며 살고 싶습니다.
작가가 밝힌대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에 영향받았음이 보이는 비온 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소녀가 비 온 뒤 물웅덩이가 고인 산책로를 강아지와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비를 머금은 나무들은 이전보다 더 선명해져 있습니다. 그 싱그러움은 길가에 고인 물웅덩이에도 담겨 있습니다. 비 온 뒤 맑게 개인 날, 길가를 걸을 때면 바닥을 보고 걸어도 마치 하늘을 보고 걷는 기분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 풍경에 대한 작가의 감정은 맑고 순수하며 섬세하면서도 부드럽습니다.
김연정 작가의 말 속에는 현실에 뿌리를 내린 단단함과 담담함이 느껴졌습니다.
거창하고 큰 목표를 내세우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내면을 채워나가는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과 힘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장 트랜디한 전공으로 시작했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차근 차근 자신만의 세계를 채워나가는 모습은 가장 신선한 지점이었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예술가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그림"을 통해 고스란히 반영했기에 역사 속에 기록되고 회자되는 것입니다.
삶을 오래도록 관찰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섬세한 시선으로 찬찬히 바라보려하는 태도는 김연정 작가가 만든 작품이 왜 개성적이고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단초였습니다.
작가는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주변에서 발견합니다. 평소에 찍어 둔 핸드폰 사진을 넘겨 보다가 소재를 선택하기도 하고 산책하거나 어딘가로 이동할 때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다가 작품 주제를 떠올린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풍경을 보고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이 보여도
작가들은 남다르고 예민한 촉수를 가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작가의 자질과 재능이 아닐까 합니다.
삶 속에 감추어진 비의와 찰라의 순간을 스쳐지나가는 감성을 놓치지 않고 작품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위안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