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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Oct 26. 2018

은밀하고 위대한 서호주 여행 #3

rx100m5A로 가볍게 깊어진 여행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 좋았던 하루


이른 아침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 일정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기분이 좋아졌다. 여행을 떠난 지 7일 차가 되는 날이라서, 하루는 쉬어가는 일정을 넣었던 것이다. 때마침 축제기간이라서 축제를 보러 가던지, 아니면 시티 투어를 하던지 이것도 아니면 와이너리 투어 정도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하루였다. 비가 오니까 늦잠을 자고 부담 없이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자는 늦잠이었다.


숙소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 여유를 가지다가, 비가 그치고 나서 근처에 유명한 카페가 있다고 해서 커피 한잔을 마시러 갔다. 야하바 커피(Yahava Koffe Works)라는 곳인데, 원두 로스팅부터 직접 다 하는 곳이었다. 난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하루에 기본 4잔을 마시는 커피 중독자이다. 커피 특유의 향을 정말 좋아하는데,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하는데 너무 행복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파란 하늘을 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즐겼다. 나의 여행은 항상 바쁘다. 사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 장면이라도 더 담고 싶어서 바쁘게 움직이는데, 유일하게 여유를 가지는 시간은 이렇게 커피를 마실 때뿐이다. 어차피 오늘은 바쁜 일정도 없고, 더군다나 이번 여행 자체 컨셉이 사진은 내려놓고 여행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이 순간을 즐겼다.



그동안 호주 여행의 일정은 대부분 자연이었다. 사막, 국립공원 같은 곳들만 다녔고 시티를 본 것은 전날 저녁을 먹으러 온 것이 전부였다. 앞으로 남은 일정도 전부 자연과 소도시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빌딩 숲이 있는 시티를 구경하기로 했다. 사실 보고 싶어서 갔던 것보다는, 중간중간 비가 다시 내리기도 했고 나온 김에 시간도 때우기 위해서였다.



아침과 점심을 같이 해결했더니, 배고 고파져왔다. 그래서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BBQ로 결정했다. 퍼스에 도착한 첫날에 배탈이 나서 제대로 먹지 못한 립을 다시 먹고 싶어서였는데, 허리케인 그릴이 아닌 또 다른 유명한 맛집으로 갔다. 


호주는 우리나라처럼 맥주를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없고, 술을 안 파는 레스토랑들도 많다. 술 종류는 리퀴어 마트 같은 술만 파는 곳에서 사야 하며 레스토랑도 술을 팔 수 있는 라이선스가 있어야지 팔 수 있다.



이번에 갈 레스토랑은 술은 따로 가져가서 1인당 3달러의 비용만 내면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술을 들고 가서 안 사실이었지만, 최근에 라이선스를 땄는지 맥주도 팔고 있었다. 그래도 차지를 지불하고 가져간 맥주를 마시는 것이 더 저렴하긴 했다.



허리케인 그릴뿐만 아니라 이 곳의 폭립(Pork Rib)도 상당히 훌륭했다. 첫날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을 이날 다 풀었다. 맥주와 폭립은 치킨에 맥주만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주변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서 푹 쉬기로 했다.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3시간의 야간 질주, 허무한 결말, 서호주 요크(Western Australia, York)



밤 9시 30분, 큰 결정을 해야 했다. 바로 벌룬(Balloon) 축제 때문이었다. 1년에 한 번 하는 축제가 열린단다. 그리고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데, 내일은 마가렛 리버로 가는 날이기 때문에 지금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퍼스에서 요크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도착하면 밤 11시. 늦어도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그래도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오늘 비바람이 많이 불었기 때문에 (천둥 번개까지 쳤다.) 벌룬을 띄우지 못해서 날이 좋아지길 기다린다고 하는 내용을 축제 SNS에서 봤기 때문이다. (이때 자세히 봤어야 했다).


서호주에 와서 벌룬 축제를 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일단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차들이 많거나 비가 온다면 돌아오기로 했다.



호주는 밤이 되면 캥거루와 같은 야행성 동물들이 도로로 나오기 때문에 언제 로드킬 할지 모른다. 그래서 긴장을 해야 하는데, 하필 인터넷도 터지지 않는 깊은 숲 속을 가로질러가야 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도로 주변에 있는 캥거루들이 간혹 보였지만 다행히 뛰어들진 않았다.


가는 길에 아무리 봐도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크에서 나오는 차들도 없었다. 다들 모여있다고 생각하고 1시간 반을 달려서 요크에 도착했다. 그런데 축제 분위기여야 할 도시가 어둡고 조용했다. 천천히 마을 한 바퀴 돌아봤는데, 사람 인기척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SNS를 확인해보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주소의 끝에 UK가 보였다. 호주였으면 AU로 끝나야 하는데 UK인 것이다. 그렇다. 호주 요크가 아닌 영국의 요크에서 하고 있는 축제를 헷갈려서 잘못 찾아온 것이다. 무려 야밤에 1시간 30분을 달려서. 너무 허무해서 밤하늘에 별이 보이길래 별 사진 찍다가, 이 조차도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다시 차를 돌려서 1시간 30분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SNS에 계속 올라오는 낮에 띄운 벌룬 사진은, 오늘 날씨가 안 좋아서 어제 띄운 벌룬 사진을 올린 것이 아닌 영국 요크에서 실시간으로 찍고 올리는 것들이었다. 


호주 요크에서 허무한 마음에 찍었던 별사진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사진을 보다가 호주의 요크에서 찍었던 별 사진에 은하수가 찍혀있었다. 그때 확인이라도 했으면 제대로 찍었을 것인데, 이 조차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다열차의 모티브, 버셀턴 제티 (Busselton Jetty)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바다 열차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된 곳이 바로 서호주에 있는 목재로 된 부두 버셀턴 제티라는 곳이다. 실제로, 부두에는 바다 위로 열차가 달릴 수 있도록 철로가 건설되어있다. 여기는 기차를 타거나 걸어서 끝까지 다녀올 수 있는데 거리가 왕복 4km 가까이 된다. 난 별다른 고민 없이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곳은 갑오징어 낚시로도 유명하기 때문에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중간중간에 손질할 수 있는 장소도 준비되어있다.

버셀턴 제티는 갑오징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왕복 4km를 걷기 전에 바로 앞에 있는 'The Goose'라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기로 했다. 맥주와 간단한 음식들을 주문했는데, 여기서 마신 맥주는 올해에 내가 마신 맥주 중에서 가장 최고였다. 이름에 Monkey가 들어갔는데, 이 지역의 수제 맥주라고 했다. 라거를 좋아하는 나에게 달콤한 과일향이 나는 맥주가 이렇게 맛있고 매력적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혹시, 여기 도착해서 나처럼 맥주 한잔하고 걷고자 하는 사람은 미리 화장실을 다녀오던지, 아니면 걷고 와서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반쯤 걸어갔을 때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돌아가나 끝까지 걸어가나 거리가 같아서 참고 끝까지 걸어가야 했다. 화장실은 부드의 입구와 제일 끝에만 있기 때문에, 중간쯤 왔다면 어찌 방법이 없다.

하얀 목재로 된 부두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바다를 바라보니, 별 다른 것 없이 좋았다. 오직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과 느낌이었다. 그리고, 기차가 옆으로 지나가는데 기차 타고 바라보는 풍경 또한 상당히 좋을 것 같았다. 시간이 많았다면 난 분명히 다시 기차를 타고 왕복을 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두의 끝에 도착했다. 끝에는 전 세계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고, 바닥에는 커다란 고래 그림이 있었다. 드론을 띄워서 봤다면 분명 멋진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갈매기들 서식지가 있다. 아마 부두를 건설하거나 보수를 하면서 생긴 곳 같은데, 여기에 갈매기들이 알을 낳고 새끼들을 키우고 있었다. 위태해 보이는 곳이었지만, 적응을 했는지 편안하게 있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캥거루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곳, 도넬리 리버(Donnelly River)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다시 방콕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날인만큼 가장 기억에 남을 일정을 넣고 싶었다. 그래서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 캥거루 먹이 주는 것을 전체 일정의 가장 마지막으로 넣었다. 도넬리 리버는 숙소가 있는 마가렛 리버에서 1시간 30분을 가면 도착하는 곳이다. 히든 포인트 이기도 했고, 차가 없다면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도넬리 리버로 가는 길.


도넬리 리버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역시 캥거루이다. 그리고 타조보다 조금 작은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새, 에뮤(emu)도 함께 있다. 입구에서 먹이를 살 수 있는데 캥거루와 에뮤가 같은 먹이를 공유하고, 더불어 얘네들도 이미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조금만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귀신같이 쫓아온다.


(왼) 캥거루 (우) 에뮤와 새끼들

캥거루에게 먹이 주는 체험은 호주에 왔다면 꼭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여기뿐만 아니라 시드니나 멜버른에서도 할 수 있는데, 난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었지만 역시나 먹이를 먹기 위해 캥거루가 내 손을 잡을 때의 느낌은 정말 짜릿하다. 


그리고, 캥거루와 다르게 에뮤는 정말 무섭게 생겼는데 부리가 매우 강해서 손을 쪼으면 굉장히 아프다. 그래서 계속 에뮤를 피해 다니면서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는데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캥거루에 비해 에뮤는 약간 깡패 같은 느낌이었다. 항상 뺏어먹는다. 그리고 자기들끼리도 서로 경쟁을 하면서 먹이를 뺏으려고 하는데, 한 번씩 큰 소리 낼 때는 가끔 놀래기도 한다.



캥거루는 특유의 멍청한 표정이 상당히 귀엽다. 그래서 덩치가 큰 녀석들이 다가올 때도 전혀 무섭지가 않다. 얼굴 자체가 난 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캥거루의 상징인 주머니에 새끼가 있는 녀석들도 있는데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새끼들을 보면 너무 귀엽다. 새끼들에게도 먹이를 주고 싶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주머니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그냥 바라만 봐야 했다.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고, 산책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모두 보냈다. 도넬리 리버에는 펜션 같은 숙소도 있는데, 다음에는 무조건 여기에서 1박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맑은 공기 속에서 아침을 캥거루와 맞이하는데, 생각만 해도 행복했다.



시계를 보니 도넬리 리버와도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 난 다시 회사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퍼스로 돌아가는 길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여행들을 천천히 회상해보면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퍼스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여행의 막을 내렸다.



아참, 캥거루는 어떻게 잘까? 쿼카는 얼굴을 가리고 잤지만 캥거루는 그런 것 없다. 그냥 사람처럼 누워서 잔다.



그리고, 가렵다면 그냥 사람처럼 긁는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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