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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Oct 25. 2018

은밀하고 위대한 서호주 여행 #2

rx100m5A로 가볍게 깊어진 여행


쿼카와 셀카를. 로트네스트 섬(Rottnest Island)


서호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가장 설레게 하는 동물이 있다. 캥거루나 코알라가 아닌 작은 동물 바로 쿼카이다. 아래의 사진처럼 셀카 찍을 때 웃는 동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고 나도 떠난 섬이기도 하다.


네이버에서 퍼옴.

로트네스트로 가는 배는 프리멘틀이나 힐러리스에서 탑승할 수 있다. 브런치를 먹기 위해 프리멘틀로 갔던 나는 여기에서 출발을 했는데, 사전에 페리 티켓을 예약하면 별다른 티켓팅 없이 QR코드를 보여주고 바로 탑승할 수 있다.



로트네스트 섬은 페리를 타고 30분을 가면 도착하는 곳이다. 섬을 즐기기 위한 방법이 2가지가 있는데 자전거 or 버스 투어를 선택할 수 있다(걸을 수도 있는데 정말 비추천한다. 섬 내에 숙소를 잡았다면, 해볼 만한 도전이다.). 당연히 개인 자전거도 가지고 올 수 있고 대여할 수도 있으며, 버스를 타면 표를 구매해서 정해진 시간마다 순환하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 구경할 수 있다. 버스는 One way로 다니기 때문에 다시 리턴이란 없다. 그래서 만약 다시 더 보고 싶다고 한다면 걸어가던지, 포기하던지 해야 한다. 생각보다 섬이 꽤 크기 때문에 매 정거장마다 내려서 구경하다간 반도 못 보고 하루가 다 지나간다.


섬에 도착했을 때 먼저 나를 반겨주는 것은 공작새였다. 한 달 전에 크로아티아의 로크룸 섬에서 도심 속 비둘기처럼 마주했던 게 공작새라서 그런지 큰 감흥은 없었다. '음 공작새구나~' 정도. 다른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난리 났었다.



버스 티켓을 구매하고 받은 안내 지도를 보면, 버스 정류장이 숫자로 나온다. 그래서 원하는 장소에서 내리면 되는데 솔직히 어디가 유명한지 몰라서 적당히 눈치 보다가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 내리기로 했다. 버스 타고 가면서 보는 섬의 풍경은 정말 예쁘다. 그래서 당장 내리고 싶은 충동을 자주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 내린 곳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이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큰 절벽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옆에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곳이었는데, 내가 볼 때는 특별한 것 없는 그냥 바다(?)의 느낌이었다.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도 성게가 꽤 많아서 앞에서 발만 담그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잠시 동안이지만 바람을 맞는 것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다.



다음 포인트까지는 그냥 걷기로 했다. 버스도 1시간에 2대 정도 다니기 때문에 차도가 위험하지도 않았고 걷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에 트래킹 한다는 생각으로 경치를 즐기며 걸었다.


중간에 작은 수풀들이 보여서 자세히 보면 쿼카들이 보일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쿼카는 이런 자연보다는 처음 배가 내린 입구 쪽에서 우리가 온 반대방향으로, 그러니까 섬을 기준으로 최종 목적지에 대부분 모여있다고 했다. 나도 거의 섬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 마지막 포인트에서 쿼카 무리를 봤으니, 혹시나 로트네스트에 쿼카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배에서 내리면 버스 타지 말고 제일 마지막 포인트로 그냥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작은 숲풀을 한참 바라봐도 쿼카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걷다가 경치 좋은 해변이 나와서 미리 준비한 식사를 했다. 메뉴는 과일과 어제저녁에 먹고 남은 햄버거였지만 장소가 좋으니 간단한 식사라도 맛있게 느껴졌다. (배고프면 중간에 사 먹으려고 했었으나 선착장과 마지막 포인트에만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그때 아니면 먹을 수 있는 곳은 준비한 도시락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


걷다가 밥먹기 위해 들린 비치. 독특하고 바닷물 색도 너무 이뻐서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식사를 끝내고 정리할 때쯤, 저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버스 타고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운이 좋으면 혹등고래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섬의 가장 서쪽 끝 포인트(West End) 이기도 했다. 한참을 바라봤으나 파도가 좋다는 것만 봤을 뿐 고래의 꼬리 조차 볼 수 없었다. 운이 좋아야 본다고 하니, 서식지가 아니라 어쩌다가 지나가는 고래를 본다는 것이겠지. 그래도 이 곳은 방문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경치가 너무 이쁘기 때문이다. 섬의 가장 끝에 왔다는 의미도 있지만, 주변에 펼쳐진 노란 꽃들과 파란 바다가 이루는 조화는 정말 환상적이다.

노란 꽃과 바다, 그리고 강하게 몰아치는 파도는 정말 예쁘다

여기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순환버스가 오질 않는 것이다. 1시간에 2대 수준이기 때문에 교통 체증도 없고 지키지 못할 이유도 없는데, 50분 가까이를 기다려서 겨우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람들 모두 불만이 가득했지만 정작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환영하는 버스 기사를 보고 어느 누구도 화를 낼 수 없었다. 이래서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고 하나보다.


예상치 못한 버스의 지연 때문에 시간이 애매해져서, 바로 마지막 포인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간단히 커피라도 한잔하며 남은 시간을 전부 소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쿼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진 찍으라 꽤 많은 시간을 소요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냥 한 번에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포인트의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많은 쿼카들이 레스토랑에서 사람들 발 밑으로 다니거나, 나무 밑에서 계속 먹이 찾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들 쿼카 사진 찍느라 매우 바쁘다. 쿼카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간혹 억지로 찍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한다. 인스타그램 등에서 보면 쿼카와 셀카를 찍은 사진이 수없이 나오는데, 투어 버스에서 친절하게도 쿼카와 셀카를 찍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쿼카와 사진을 찍는 방법과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대략 요약하면 웃으며 카메라를 준비하고 셀카봉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어라는 것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쿼카가 웃으면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잠깐 관심을 가지는 타이밍에 찍어야 하는 것이다. 이 타이밍이라는 것이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 특히, 만지거나 쓰다듬으면 안 되고 먹을 것을 주지 마라고 되어있는데 쿼카의 건강을 위해서 꼭 지켜야 할 사항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진 욕심 때문인지 감자튀김이라던지 먹을 것들을 주는데 이때 사진을 많이 찍는다. 쿼카도 이런 것들에 입맛이 길들여졌는지 감자튀김 냄새만 맡아도 거기로 가버린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도 힘들었고, 관심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주기도 싫어서 몇 번 시도를 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몇 번이고 노력을 했지만,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아서 심통이 난 이유도 있었다.


만약 쿼카가 웃으면서 카메라를 쳐다본다면, 찰나의 순간이니 일단 찍고 나중에 결과물을 확인하는 것이 쿼카와 본인의 정신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귀여운 쿼카, 하지만 셀카를 찍는 것은 영 쉽지 않다.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과 쿼카의 귀여움으로 휴식을 만끽하고 선착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구글 지도로 대충 거리를 보니 30분만 걸어가면 되었다. 가는 중간중간에 야생 쿼카를 만날 수 있는데, 레스토랑에서 만난 녀석들보다 더욱 예민해서 다가가면 도망가버려서 셀카를 찍기 더욱 어려웠다. 만약 셀카를 찍는다면 레스토랑에서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다. 그리고 특히나, 중간에 만난 새끼 쿼카는 정말 귀여웠다.


새끼 쿼카

로트네스트 섬에서 트래킹 하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간이 마지막 포인트에서 선착장까지 걸었던 곳이다. 다시 이 섬을 방문할 일이 온다면, 선착장에서 이 길을 걸어서 마지막 레스토랑에 도착한 다음 식사를 하고, 쿼카와 다시 셀카 시도를 하고 나올 것 같다. 페리 값은 좀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여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기에 기꺼이 투자할 만하다고 생각이 된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간. 숲풀에는 야생 쿼카들이 서식한다.

아참, 쿼카는 잠을 상당히 귀엽게 잔다. 얼굴을 가리고 자는데 쿼카는 귀여움을 그냥 타고난 것 같다. 자는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보던 말던, 그냥 길가에서 그냥 자고 있다.


얼굴 가리고 자는 쿼카



다양한 맥주 맛을 즐길 수 있는 곳, 프리멘틀(Fremantle)


로트네스트 섬 투어를 마치고 프리멘틀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길을 걷는데 건물과 도로에 알 수 없는 노란 페인트 자국이 있길래 무엇이지 하고 봤는데, 알고 보니 특정 포인트에서 보면 어떤 문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마침 그 포인트를 지나고 있었기에 잠시 시간을 내서 봤는데, 신기하기는 했지만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건물과 거리에 있는 노란 페인트, 특정 포인트에서 보면 이런 원의 모양을 나타낸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그냥 구경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그냥 걸었다. 걷다가 플리마켓(flea market)이 보여서, 들어가서 군것질을 하며 구경했다. 이런 곳에서 지갑을 열어야 하는데, 방콕에서 싼 가격에 과일들을 즐기고 왔더니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저녁에 먹기 위한 오렌지와 사과 정도만 구입했다. 꽤 싱싱해 보였고 특히 사과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맛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맛을 보니 사과는 정말 맛있었다.



간단하게 플리마켓을 구경하고 나오니 일몰이 시작되면서 하늘이 화려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에는 맥주 양조장이 있어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맥주 한잔(?)을 하러 들어갔다. 하지만, 너무 많은 맥주 종류들이 있어서 결국 샘플러로 주문했다.


프리멘틀의 아름다운 일몰


맥주 양조장과 샘플러들


샘플러를 주문하면 마시는 순서를 알려준다. 그리고 설명이 적혀있는 종이를 주는데, 수제 맥주들이 가지는 특유의 맛이 정말 독특했다. 어떤 것은 식초 맛을 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과일 향이 나기도 했다. 시원하게 목을 넘기면서 마시던 맥주를 테이스팅 하듯 천천히 마시면서 맛을 음미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 스타일은 시원한 탄산이 식도를 훑으면서 지나갈 때 주는 그 청량감이 가장 좋은 것 같다.



퍼스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 킹스 파크 (Kings Park)


프리멘틀에서 다양한 맥주 맛을 즐기고, 다시 퍼스로 넘어왔다. 퍼스에도 한인들이 꽤 거주하기 때문에 한식당이 많이 있는 편이다. 저녁은 오랜만에 입에 맞는 것으로 먹고 싶어서 한식당으로 갔다. 불 짜장이 맛있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살면서 이렇게 매운 음식은 처음 먹어봤다. 보통 해외 나가서 맵다고 하면 매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8월 초에 중국 우시에서 마라룽샤 (매운 사천 가재요리)를 먹기 위해 직원과 5분 동안 실랑이를 벌인적이 있었다. 난 먹고 싶다고 주문했고, 직원은 매워서 못 먹는다고 만류했다. 결국 내가 이겨서 주문했는데, 생긴 것과 다르게 매운맛이 전혀 없어서 실망까지 했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고 주문한 불 짜장을 먹는 순간, 얼굴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근데 신기하게도 맛은 있었다. 보통 매우면 혀가 마비돼서 맛을 못 느끼는데, 여기는 특이하게도 맛은 느껴지면서 온 몸이 짜릿해지는 매운맛이었다.



나름 전쟁 같은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킹스파크로 향했다. 퍼스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방문했는데 눈 앞에 기념비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꺼지지 않는 횃불이 있었다. 서호주 전쟁 기념탑이었는데, 전쟁에서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로 횃불을 켜놨는데 365일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꺼지지 않는 횃불과 전쟁 기념비

기념비를 뒤로 하고 나가니, 눈 앞에 야경이 펼쳐졌다. 어디를 여행하나 그 나라의 야경을 보는 것은 정말 좋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보면서 쿼카와 셀카를 못 찍은 것이 아쉬운 하루였지만, 그래도 여기에 와야지만 볼 수 있는 동물을 본 것과 수제 맥주 샘플러도 마시고 화려한 야경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꽤 알찬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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