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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Oct 23. 2018

은밀하고 위대한 서호주 여행 #1

rx100m5A로 가볍게 깊어진 여행


서호주, 퍼스(Perth)에 내디딘 첫발


기내에서 거하게 마신 맥주의 취기가 거의 깨어날 때쯤 스크린에 비친 비행경로 정보에는 드디어 호주의 대륙이 보였다.  방콕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6시간 만에 호주라는 거대한 붉은 대륙에 막 진입하고 있었다. 진입하는 그 순간을 보고 싶어서 민폐를 무릅쓰고 창문 가림막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첫 모습은 나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처음 마주한 호주 대륙의 모습


붉은 땅에 푸른 바다, 정말 아름다웠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같은 느낌이었다. 호주라는 나라는 2014년도에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호주가 아닌 시드니와 멜버른 쪽이었는데 그 당시에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황량하게 붉은 사막 같은 땅이 전부였었다.


서쪽으로 진입했을 뿐인데, 이렇게 풍경이 다르다. 그렇게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나는 끝없이 펼쳐진 평야가 눈에 들어올 때쯤에서 다시 창문 가림막을 내리고 눈을 붙였다.


스카보로 비치(Scarborough Beach)의 일몰과 힐러리스(Hillarys)에서 저녁식사


렌터카를 찾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한 다음 약간의 휴식을 가진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전에 호주에 왔으니 일몰과 바다를 먼저 보고 싶어서 서퍼들이 좋아하는 '스카보로(Scarborough) 비치'에 갔다. 호주에는 파도가 좋은 곳들이 많은데, 발리에서 짧게나마 서핑을 배운 적이 있던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파도를 즐기는 서퍼의 모습을 바라봤다.


차가운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오히려 파도가 좋아져서 서퍼들은 즐기고 있었다.


근사한 일몰을 바라보며 호주의 느낌을 충전시킨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기대했던 저녁을 먹으러 갔다. 4년 전에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허리케인 그릴(Hurricane's Grill)의 폭립(Pork Rib)'이 너무 그리웠었다. 인생 폭립이었다. 다행히 퍼스의 힐러리스 (정확히 말하면, 소렌토 퀘이 힐러리스 보트 하버(Sorrento Quay Hillarys Boat Harbour))에도 허리케인 그릴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여기로 바로 갔다. 일단 주문은 당연히 폭립과 맥주였다.



립 하나가 입에 들어오자마자 그 달달한 소스의 맛이 4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이 맛을 4년 동안 그리워하며 또 먹을 날이 올까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나의 여행은 이렇게 순탄하게 시작되나 싶었지만, 사실 타이항공에서 제공한 샌드위치를 먹고 배탈이 나있던 상태라서 기다림 대비 많이 먹지 못한 아쉬움만이 가득한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하버의 야경은 정말 예뻤으나, 배탈로 인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는 숙소로 가서 약과 함께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난 기적적으로 회복을 했고 어제 남긴 폭립의 그림자가 아른거렸지만, 결국 다시 먹을 기회는 없었다.



얀쳅(Yanchep) 국립공원에서 BBQ 점심식사


퍼스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얀쳅 국립공원이 나온다. 호주는 국립공원이나 작은 공원에 BBQ 그릴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그래서, 음식 재료만 사들고 가면 별 다른 비용 없이 경치 좋은 곳에서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호주에 왔으니 한 번은 즐겨보고 싶어서 미리 장을 보고 얀쳅 국립공원에 입장했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났다. "이래야 공원이지!"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일찍 온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공원을 먼저 둘러보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며 걷는데 특별한 것 없는 이 여유로움이 너무 좋았다. 호주에 오기 전에 4일 동안 방콕 여행을 했었는데, 고온 다습한 환경과 심각한 교통체증 그리고 목이 매캐한 매연 때문에 피로에 절어있었다. 그래서인지, 맑은 공기와 시원한 날씨를 선사하는 호주는 여름에 들어간 은행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얀쳅 국립공원에서는 야생 코알라와 캥거루를 볼 수 있다. 코알라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에는 대부분 잠을 자는데 그래서 어느 나무 구석에서 자고 있는지 하나하나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한참을 여기저기 돌아보며, 겨우 숨어 있는 녀석을 찾았다.



얼굴이 보고 싶어서 한참을 바라봐도 나무에 머리를 박은 녀석은 얼굴을 숨긴 채 잠자기에 여념 없었다. 아쉽지만 그래도 발견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번에는 야생 캥거루를 찾기 위해서 또 열심히 탐사에 나섰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아 포기하고 식사 준비를 하러 가는 길에 수풀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쳐다보자, 밥 먹다가 당황했는지 사람들을 보며 특유의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유튜브에서 보던 근육질에 주먹을 날리던 모습과는 완전 반대인 순한 모습이었다.



공원에는 BBQ를 즐길 수 있는 전기 그릴이 군데군데 배치되어있다. 그래서 괜찮다 싶은 곳에 자리를 잡고 즐기면 되는데,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서 자리 잡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평일에 온 나는 여유롭게 자리를 고를 수 있었다.



장 봐온 재료들을 세팅하고 바로 굽기 모드에 들어갔다. 올해 먹었던 그 어떤 고기보다 이 날 먹은 고기가 제일 맛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를 한점 먹을 때마다 한국에도 호주처럼 국립공원 같은 곳에 이런 장소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자연과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좋은 문화가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또는 한라산 중턱에서 BBQ를 즐긴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설레는 일일까.




하얀 모래사막, 란셀린(Lancelin) 사막


아름다운 곳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으니, 이제 서호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찾아 떠났다. 첫 번째 목적지는 얀쳅 국립공원에서 북쪽으로 1시간을 더 가야 만날 수 있는 란셀린 사막이었다. 호주는 참 특이하게도 바다 옆에 사막이 있는 지역이 꽤 있는 것 같다. 시드니에서도 '포트 스테판(Port Stephens) or 포트 스티븐스'라는 곳도 바다 옆에 사막이 있어서 해변을 걷는 낙타를 보거나 모래 언덕에서 샌딩 보드를 즐길 수 있었는데, 여기 란셀린 사막에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여기는 낙타 대신 갈매기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방문한 날에 여기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잠시 잦아드길 기대하며 대기했으나,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아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밖으로 나와서 언덕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저 언덕 위에 비키니와 수영복을 입은 남녀 커플이 보였다. 그래서 저 뒤에 멋진 바다가 펼쳐질 줄 알고 열심히 올라갔으나 나를 반겨주는 것은 더 넓은 사막이었다. 왜 여기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는 걸까. 바다까지는 적어도 30분은 족히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다란 생각을 하는 동시에, 바람이 불어 나의 옷 사이사이와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상당히 현명한 커플이라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모래 언덕에서 사막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투어 버스가 여러 대 들어오는 곳을 보고 다음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오늘 하루의 하이라이트, 피너클스 사막을 보기 위해서다.




카르스트 지형과 은하수가 매력적인 곳, 피너클스 사막(Pinnacles Desert)


란셀린 사막에서 다시 북쪽으로 1시간을 더 가면 만날 수 있는 곳, 풍화 작용으로 인해 수천 개의 석회암 기둥이 사막 위로 솟아있는 곳, 일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달이 뜨기 전까지 어두움이 매력적인 곳 바로 피너클스 사막이다. 숙소가 있는 퍼스에서 250km가 떨어져 있는 곳이다.


처음 이 곳을 방문하면 나처럼 첫마디를 뱉을 것이다. "대박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있지만 이런 지형을 가진 곳은 처음이었다.

 차에서 내려 기둥 사이를 걸어보는데, 다른 행성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존재했다니. 감탄을 연신 내뱉으면서 이 모습들을 하염없이 담기 시작했다. 란셀린 사막과 달리 바람이 불지 않아서 더욱더 감상하기 좋았다.


기이한 모습들이 크기와 모양들이 전부 다르다. 풍화 작용으로 인해 깎여서 이런 모습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서 이런 모습들로 이루어졌는지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해가 점점 지기 시작하면서 눈부신 햇살이 기둥 사이로 비쳤다. 점점 길어지는 기둥의 그림자들을 보면서 메인 포인트를 보기 위해 자리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전망대가 나온다. 피너클스는 밤에 별과 은하수를 보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이미 전망대 쪽에는 밤새 별을 감상하기 위한 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다. 별과 은하수를 육안으로 감상하려면 몇 가지 환경적인 요소가 뒷받침해줘야 한다. 첫 번째가 주변에 광해가 없어야 하고 두 번째가 달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별과 은하수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여행 전에 내심 기대를 했었으나, 생각해보니 내가 방문하는 일정은 추석 연휴였기 때문에 달이 가장 밝은 보름달 시즌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난 은하수는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해가 지고 나서 숙소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평소에 여행 다니면서 자주 애용하는 별자리와 은하수, 달의 위치를 시간에 따라 볼 수 있는 어플을 가지고 확인을 해봤다.


달이 떠오르는 시간이 저녁 8시 10분 정도. 오후 6시 넘어서 해가 지기 시작했으니까 운 좋으면 1시간 정도 별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보름달이 매우 밝기 때문에 광해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을 했지만, 일단 기다려보기로 했다. 아마 평생에 한번 있을 기회였기 때문에 놓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큰 기대를 가지고 차에서 나왔다. 어둠에 눈이 적응되고 하늘을 바라봤을 때,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별이 쏟아질 정도로 많이 있었고, 머리 위에는 은하수가 보였다.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을 정도라서, 급하게 세팅을 하고 그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나의 광각렌즈가 없는 것이 정말 한이 될 정도로 놓치기 싫은 장면이었다.



은하수 모습을 아쉬운 대로 담고 나서, 혹시나 해서 챙긴 별 포인터를 들고 나와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광선검 샷도 찍었다. 그 주변 사람들은 광선이 나오니 무슨 일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급하게 그 모습을 담고 내려왔다.



기다림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너무 뿌듯했다. 이번 전체 일정 중에서 가장 큰 수확을 얻은 순간이기도 했다. 기분 좋게 숙소로 향했다. 하지만 숙소까지 가는 길은 올 때처럼  순탄하진 않았는데, 숙소까지 네비를 찍어보니 3시간이 나왔다. 그리고 호주에서 야간 운전은 정말 조심해야 하는데, 바로 야행성 동물 때문이다. 특히, 캥거루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도착하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낮에 수없이 봤던 로드킬 당한 캥거루가 불쌍하긴 했지만, 실제로 사고가 난다면 차를 폐차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가 나기 때문에 집중에 집중을 해야 했다.

시야가 매우 좁아서 야간 운전은 정말 긴장의 연속이다.

운 좋게도(?) 나는 집에 가는 동안 도로를 건너는 캥거루를 한 번 봤다. 다행히 거리가 있어서 피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경험은 또 호주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해볼 수 없기 때문에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3시간을 달려 숙소에 도착하고, 긴장이 풀리자 잠이 쏟아지길 시작했다. 내일은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귀여운 동물, 쿼카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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