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리치 UEA 대학원 겨울방학 시작!
매주 브런치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그동안 일이 너무 많았다.
사람은 바쁘면 계획부터 먼저 포기하게 된다.
그냥 살고, 버티고 하루를 넘기다 보니
정신 차려보니 방학이 와 있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이 휘발되는 게 싫어서
브런치에 글을 남기자고 결심했는데,
휘발이고 뭐고 살아보느라, 생존하느라 애쓰다보니 너무 늦게 돌아왔다.
그리고 우려와는 달리 너무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어서
나태해진 것도 조금은 있다...
그래도 새해가 가기 전에 꼭 쓰고 싶었기에
더 늦지 않게 돌아왔다.
오늘이 아니었으면 계속 안 쓰게 됐을 거 같다.
겨울이 된 영국 노리치는
이제 오후 4시 30분이면 밖이 캄캄해진다.
겨울이 되면 해가 일찍 진다는 걸
영국에 오기 전부터 많이 들은 얘기지만
속으로는 반쯤 흘려들었다.
근데 실제로 겪어보니
진짜 오후 3시쯤부터 흐려지기 시작해서,
4시를 조금 넘기면 체감상 우리나라로 밤 8시 정도 되는 느낌이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4시 정도되면
시계를 잘못 본 줄 알고 세 번은 다시 확인한다.
하하 언빌리버블
그래서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됐다.
수업은 없고,
해는 짧고,
밖은 춥고,
괜히 더 가라앉은 시간을 보내게 될까봐.
그런데 막상 방학이 시작되고 보니
하루하루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누구보다 계획형으로 살아왔던 내가
요즘은 특별한 계획 없는 하루가 좋다.
"오늘 뭐 하지?"를 별 생각 없이 넘기는 사람이 됐다.
이게 나한테 가능한 변화인지, 아직도 가끔 놀란다.
영어공부 가볍게 하고,
날씨 좋아지면 산책하고,
운동하고
시내가서 쇼핑하거나 장을 보고
집에서 밥을 해 먹고.
큰 이벤트는 없는데
하루가 묘하게 평온하게 흘러갔다.
이런 일상을 아내와 24시간 내내 공유한다.
우리가 나눈 사소한 대화들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채워주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특별한 말이 아니어도 하루 끝에 나누던 이야기들이
많은 위로가 된다.
집 앞에는 산책로가 있다.
매일 봐도 좋다.
아마 나중에 돌아보면
이 풍경도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24시간 붙어있을 일은 없을 텐데
그래서인지 이런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영국에 온 지는 벌써 4개월 정도 되어간다.
영국에서 잘 해보겠다고 나름 노력했고,
생각보다 충만한 하루들이었다.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노리치 구석구석 수없이 다녔고,
영어 하나 안 들리지만 뮤지컬이랑 영화도 봤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집들이도 했고,
런던, 캠브리지, 비엔나, 뮌헨 여행도 다녀왔다,
영국에서의 첫 할로윈,
첫 크리스마스도 즐겁게 잘 보냈다.
중간중간 인종차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경험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이 훨씬 많다.
좋은 기억들은 나중에 하나로 빼서 정리해야지.
한국에 돌아갈 때
후회하지 않게 잘 지내볼게.
지금 이 겨울도, 나중엔 분명 그리워질 테니까.
지금은 생각보다
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