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음으로 기본에 충실하다.
스마트폰 교육 문의가 처음 들어왔을 때 들었던 오만한 생각은, 이미 도시에서 다 끝난 수업인데 이게 왜 문의가 들어올까.
도시에서 구청 정보화교육을 준비하며 이것저것 많이 공부하고 준비했었는데 마지막 확정 면접을 앞두고 구례로 왔다. 정말 아깝고 아쉬운 기회였다.
가족이 우선이었으니깐 다음에 할 수 있을 거야 몇 년만 참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이 1년 2년 지나서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운 좋게도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하는 방송통신중학교 ICT수업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의가 오고 집합강의도 한다. 코로나19가 한참일 때, 집합강의를 잠시 쉬면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수업하려면 코로나19가 지나가야 되겠지. 아마도 그럴 거 같다고 확정 지으며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온라인 개인교육도 준비했었지만 처음 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다. 준비하는 동안 틈새시장을 못 찾고 코로나19는 끝났다. 아니 아직 끝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면생활로 빠르게 돌아오고 있다.
이전과 같은 현장은 아닐 수 있겠지만 사람들의 다양한 니즈.
메타버스가 시도되는 세상 속 스마트폰이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 모른 채 고가의 전화기로만 사용하는 사람들.
그래서 스마트폰 활용교육을 시작했다.
타이틀은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폰 활용수업이다.
'시니어'라는 단어의 대상 연령대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생각하고 정의 내려야 할까.
학원에서 컴퓨터교육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제일 어려운 상대는 백발의 어르신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과감히 깨 주었던 여사님이 계셨다. 처음 뵈었을 때 하얀 장갑을 끼고 개량한복을 입은 채 강아지 한 마리와 오신 분. 첫인상은 아찔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분 같아 보이니 나이 어린 강사를 무시할 수도 있고 혹시 예측하기 힘든 수업상황을 만들면 어떻게 하나. 그러나 그분은 굉장히 성실했다.
"선생님, 제가 많이 느리니 이해해 주세요."
그녀의 말투와 목소리는 항상 정중했고 깊은 울림으로 답변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세월을 이겨낸 매너였을까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며 굉장히 깍듯했다. 그녀는 인근지역에서 부동산업을 했고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직원분들에게 맡겨도 될 문서들도 직원들 바쁘니 귀찮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해야겠다면서 직접 오신 대표님이었고 그때 그분의 연세는 칠순을 바라보고 있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그분은 나의 어리석은 편견을 알려주신 고맙고 소중한 백발의 제자였다.
그 후 꽤 오랫동안 열심히 다니셨고 한글 문서는 혼자 수정할 정도가 되어서야 학원오기를 멈췄다.
여성인력개발센터에 교육을 나가며 다양한 학생들을 만났다.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들, 가족들이 모두 자기 일을 찾아나간 이후 시간에 외출해 경력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부지런한 여사님들. 또는 경력은 이미 충분하고 자신의 사업이 있지만 혼자서는 독학이 어려워 문서 업무를 위해 배우러 오시는 여성사업가분들.
그들은 내게 컴퓨터 사용방법을 배웠고 나는 그들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백발이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주변의 생각 때문에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서 더 비참해질까 봐 두려워 배움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도 못해? 그걸 왜 배워? 그거 그냥 하면 돼. 그걸 왜 하려고 하는 거야.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불편한 것이 무언지 모르기에 쉽게 이야기한다.
모르기 때문에 질문할 수 없고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배울지 모른다.
의외로 껍질을 깨는 것은 같은 마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껍질을 깨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열 사람에게 알려준다.
한 번의 수업이 또 다른 수업을 만들어 온다.
3월, 봄의 시작이자 배움의 시작이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스마트폰 교육이 시작하고 방송통신중학교의 ICT 활용수업도 시작한다. 디지털역량강화교육이라고 했든가. 디지털격차에서 오는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불균형을 맞추기 위한 교육이 디지털역량강화교육이라고 한다.
코로나19는 더욱 다양한 사회적 격차를 만들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은 디지털로 배워도 강화될까. 아니다 디지털을 배우려 하는 초급자들은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기에 한걸음한걸음을 대면으로 사람과 함께 배워야 한다. 그렇게 기초를 다지고 나면 디지털 기본을 디지털로 시작할 수 있다. 디지털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어떤 것이든 쉬워질 것이다.
시니어 대상 스마트폰 활용 교육으로 디지털의 격차를 줄여보려고 한다.
백발의 남자와 여자, 나이가 가늠되지 않는 모자를 쓴 사람들, 커다란 안경을 쓰고 인자한 미소를 지닌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럽지만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들은 자신이 디지털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너무 많다. 또한 자신이 디지털 소외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디지털 빈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디지털 소외와 빈곤은 단순히 마음속 거리감이 아니다.
컴퓨터를 잘못하는 것과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지 못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컴퓨터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스마트폰 역시 잘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가의 전화로만 사용중일 것이다.
내가 느끼는 봄의 기운은 꽃이 아니라 사람들의 환한 미소다.
그들이 하나씩 질문을 만들어낼 때마다 나는 땅아래 뿌리의 기운을 느끼는 나무가 된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씩 배우고 알아감으로 인해 생겨나는 의욕이다.
아이들과 다른 느긋함 속 조급함.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처음 마음으로 기본을 다하는 것뿐이다.
3월은 교육을 진행 중입니다.
나 자신도 교육을 받고 있고 한편으론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이네요.
덕분에 작업실이 더 조용하지만 내가 바쁜 만큼 사람들이 '구례현상점'을 기억할 테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달이 지나면 작년 한 해 동안 구상했던 인형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내가 만드는 인형이 조금 이상할 수도 또 기괴할 수도 또 아름다울 수도 있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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