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우주체험, 영화 그래비티

철학적 과학 영화

by 미스틱

*영화는 취향의 영역이고 해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무리가 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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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개봉 했습니다.

2013년 개봉, 2018년 재개봉, 2021년 또 개봉..

두 번이나 재개봉 할 만큼 그리 대단한 영화인가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명작 반열까지는 아니어도 경이로운 영화임엔 틀림없습니다. 적어도 첫 관람 때 나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우주라는 바다를 유영하는 간접 체험을 했다고 입을 모았으니 말입니다. 일반인 (비록 억만장자들이지만)의 우주여행이 현실이 된 뉴스로 떠들썩했던 지금, 그래서 또 개봉’하지 않았을까 함부로 추측해 봅니다. 사실, 그딴 이유가 아니어도 재 재 개봉을 할 만한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신기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SF 영화는 많지만 대리 체험한 듯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흔치않죠. 특히, 초반 10여분의 롱 테이크 (컷트 없이 이뤄진 긴 숏) 장면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다보면 어지러움을 느낄 만큼 경이롭습니다. 이후 주인공들의 조난 과정이나 귀환 과정 전체를 몰입하여 본다면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롤러코스터에서 내릴 때처럼 휘청거릴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 여주인공이 휘청거리며 걷는 것처럼 말입니다. 난 극몰입해서인지 극장 밖으로 나설 때 지구의 중력이 낯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4D 영화도 아닌데 촬영 기법만으로 이 정도 효과를 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칠드런 오브 맨’에 이어 이 영화로 롱 테이크의 1인자임을 확인시켰습니다. 근래 놀라울만한 롱테이크를 사용한 영화가 흔해졌어도 아직 알폰소 쿠아론을 능가한 감독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기술적으로만 대단한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단지 영화로써 신비한 체험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절대 아니란 얘기입니다.

충분히 감동이 있고 삶에 대한 통찰까지 담은 영화이니, 이를테면 철학적 과학 영화할까요? (말이 되나?)

영화적으로 특이한 지점은 화면상 출연 배우가 단 둘이란 것입니다. 이렇게 단출한 출연진으로 영화는 극강의 몰입을 자아냅니다. 그러니 감독의 세밀한 연출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한 명 더 있긴 합니다. 그러나 초반 원거리 샷으로 잠깐 등장했을 때조차도 헬멧 때문에 얼굴 안 보이는데다 영화 시작 이십 분 만에 인공위성 파편 맞고 사망해 버립니다. (배우로써는 참 억울하겠다 싶습니다.)


줄거리도 단선적입니다.

사고로 어린 자식을 잃은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초짜 우주 항공 엔지니어입니다. 그녀에게 지구는 잊고 싶은 과거이자 그다지 돌아가고 싶지 않은 '현실'이죠. 까칠한 그녀의 임무 파트너는 낙천적이고 낭만적인 맷(조지 클루니). 영화적으로 뻔 한 조합이긴 합니다. 어쨌든, 그 둘은 임무를 수행하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가까스로 귀환선을 찾아 탄 그들은 이제 지구로의 위태로운 귀환 여정을 시작하고 그래서 지구에 잘 도착하는지 어쩌는지, 아무튼 그게 줄거리의 전부입니다.

스토리의 얼개는 마치 스포츠 영화처럼 한 인간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 구조지만, 전개와 주인공이 용기를 얻는 모티브는 아주 색다르고 철학적입니다. 주인공이 겪는 고통 역시 인간이 겪어야 할 숙명 같은 것이고 그걸 헤쳐 나가는 과정도 한 생명의 잉태와 출산, 그리고 세상에 두 발 딛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삶은 어차피 고통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드라마 장르에서나 볼 법한 주제와 감동을 SF장르에서 보여준 겁니다.


그럼, 내가 이 영화를 철학적 은유라고 본 이유에 대해 썰 풀어 보겠습니다.


지구에서 스톤 그녀의 삶은 자식을 잃은 후로 퇴근 후 일과가 목적 없는 드라이브일 정도로 극히 단조롭고 의미 없는 일상이었습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보다 절망을 붙들고 산 것이죠. 그래서인지 그녀는 우주가 고요해서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피처로 삼았던 우주는 고요할 뿐 예측은 더 불가능한 곳이죠. 기어이 예기치 않은 사고가 나고 우주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한 그녀는 본능적으로 당장은 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한 고비 넘겼나 싶으면 또 고비가 오고, 또 넘겼나 하면 또 오고.. 으윽.. 결국 지쳐버립니다. 에라이. 이럴 바엔 차라리 자식의 곁으로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자포자기 상태가 됩니다. 자식을 잃고 사는 그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순 없지만, 안 그래도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구만 거기에 고난마저 계속 이어진다면 굳이 살려고 발버둥 치겠나 싶은 공감이 충분히 갑니다. 아이러니는 모든 걸 포기하려는 그녀는 단파 무선에 잡힌 지구에서의 잡스러운 일상의 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시끄럽고 복잡하고 고통이 난무한 지구보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우주가 더 좋았건만, 막상 죽음을 눈앞에 두자 그 ‘현실’마저 그리워진 것이죠.


그녀에게 다시 살 의욕을 불어 준 건 낙천적이며 낭만적인 파트너인 맷의 긍정 바이러스입니다. (역시, 친구를 잘 만나야 합니다.)


“두 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맷이 말합니다. 고난이 있어도 딛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의 말대로 두 발을 딱 디디려면 중력이 필요하죠. 여기서 중력은 고난을 은유한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그럼 중력이 없어 평화로운 우주, 인간이 없어 고요한 그 우주에서 중력이 지배하고 인간이 있어 시끄럽고 인간에게 상처 받는 지구로 돌아가 고난을 견디며 희망을 품고 살으라는 얘기겠죠.

결국 다시 살고자 의욕을 일으킨 그녀를 실은 귀환선은 그 중력의 힘 때문에 대기권을 뚫습니다. 고난으로 성장한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중력을 벗어나 살 수 없으며 단지 딛고 살아가는 것뿐이란, 매우 철학적인 과학 영화라고 메세지로 읽은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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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으로 덧붙이자면, 그녀가 우주선에서 우주복을 벗고 태아의 모습(태아)처럼 웅크리고 잠드는 모습(탯줄 처럼 보이는 장치도 보입니다.)에서 시작해 대기권에 진입할 때의 고통(산고), 강물(양수)에 불시착해 물속을 헤엄쳐 나오는 장면(출산), 그리고 비틀거리며 발을 딛는 (걸음마) 과정. 그녀가 다시 태어난 의미를 설명하는 이 장면들은 무사귀환을 넘어 의미 없는 삶을 살던 그녀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엇음을 의미합니다. 맞습니다. 고난을 이겨내면 분명 그 만큼 단단해 지죠. 또 역경을 헤쳐나갈 새로운 지혜도 얻겠죠. 이상이 내가 이 영화를 내 멋대로 해석하고는 ‘철학적 과학영화’라고 결론지은 이유입니다.


여담으로, 산드라 블록이 혼자 며칠 동안 고생스럽게 촬영하다 촬영장을 찾은 조지 클루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그래서일까요. 영화 속에서 둘의 모습은 참으로 애절합니다.


아무튼 이 영화 다시 봐도 귀환씬에 울리는 OST만큼 저릿저릿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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