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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1. 2023

아들의 입영 날.

난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다. 기저귀 찬 나이부터 내게 찰싹 달라붙어 애교를 떨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그런데 꼭 그 이유만은 아니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날 닮은 구석이 많아 더욱 그렇다. 제발 안 닮았으면 하는 구석까지 죄다 닮아 신경이 더 쓰인다. 때문에 녀석의 속마음까지 훤히 보인다. 입대 영장을 받은 후 줄곧 태연하게 생활한 모습이 일부러 센척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대 마지막 순간까지 센 척은 하지 못하리라는 예상도 했다. 입대 하루 전, 전처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도 녀석은 입대가 설렌다는 둥 군 입대에 대한 두려움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듯 행세했다. 

       

훈련소로 가는 차 안에서도 녀석은 블루투스로 연결된 제 핸드폰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열창을 했다. 다행히 녀석이 꽥꽥댄 그 노래들은 내게도 익숙한 옛 노래들이었다. 녀석은 전날 밤, 친구들과 함께한 송별식에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다섯 번이나 불렀다고 자랑(?)을 했다. 이제 20살인 놈이 20년 전 노래라니.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보다 젊고 밝은 멜로디의 곡도 있는데.. 

애늙은이 소릴 듣고 자란 내 모습과 겹쳐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노랫소리가 안 들려서 바라보니 녀석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마도 입대 전날 밤이라 잠을 설쳤구나 짐작이 됐다. 그래놓고 친구가 입대하듯 태연한 척 굴다니. 역시 나를 닮았다.

         

아직 입소식까지는 세 시간이나 남아 있어 난 훈련소 부근 식당에선 아무래도 바가지를 쓸 것 같으니 가는 길에 식사를 하자고 했다. 딸이 닭갈비에 막국수가 먹고 싶다며 맞장구를 쳤다.

      

“입대하는 애가 먹고 싶은 걸 먹어야지. 니가 군대 가니?”    

 

애들 엄마가 버럭 역정을 냈다. 전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부터 애들 엄마의 심기는 티가 났었다. 어제부터 가장 덤덤했고 계속 그럴 자신이 있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 아들만 군대 보내나? 멀쩡한 남자들은 다 가는 군대인데 뭘 그리... 누가 보면 해병대 보내는 줄 알겠다.’

     

엄마의 서슬에 딸은 입을 다물었고 아들도 졸음에서 깨어났다. 결국 우리는 애들 엄마의 기세에 눌려 훈련소 부근 갈비집 사이를 헤매다 갈비집으로 들어가 수원 왕갈비를 시켰다. 입대하는 사람들은 오직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듯 그곳의 음식점이라곤 온통 갈비집뿐이었다. '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초라한 갈비가 등장해 불판에 얹혀졌다. 찬거리가 하나둘 차려지고 아이 엄마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우리는 벌건 갈비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어색함을 못 참은 아들이 고기가 왜 안 익느냐고 투정을 했다. 시간은 아직 두 시간 반이나 남아 있었다. 녀석은 어색함을 못 참는 성미마저 날 빼닮았다. 그런데 고기가 진짜 안 익었다. 고기를 들어내고 보니 석쇠 밑 화로는 숯불도 아니고 연탄도 아닌, 겨울철 난방기 같은 가스난로였다. 당최 익을 생각을 안 하는 고기와 함께 하자니 침묵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들. 군대에선 말이야 중간만 해.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빼지도 말고. 알았지? 괜히 나섰다간 아빠처럼 개고생만 하고 몸 다치고.. 나중에 억울하기만 해. 그리고 너 있잖아. 군대서 배운 거 사회 나오면 아무 쓸모없다? 그니까 자고로 몸만 성히 나와라 이 말이야. 혹시 포상 휴가 바라고 시범훈련 같은 거 막 지원하고 그러면 안 돼. 멍청한 짓이야. 휴가 많이 나오면 뭐 하냐? 돈만 쓰지. 그냥 월급 꼬박꼬박 모아서 제대할 때 목돈 만들어 와. 니 사촌형 봐라. 허구한 날 휴가 나와서 돈 뜯어간 거. 군대 끌려가는 것도 억울한 데 가서 돈이라도 모아 와야지. 안 그래?”     


어색함을 깨자고 경험자로서 한마디 한다는 게 나도 모르게 돈 뜯길 걱정까지 드러내고 말았다.  

     

“시끄러!! 휴가 많이 나오면 좋지, 왜 애더러 휴가도 나오지 말라고 그래?”   

  

애들 엄마가 발끈해서 도끼눈을 뜨고 소리쳤다.      


‘흥. 지금이야 빨리 휴가 나왔으면 좋겠지? 두고 보자. 애 휴가 나온다면 도망 다니나 안 다니나.’     


난 속으로 대꾸했다.  

    

“이거 오늘 안에 익는 거야?”     


아무도 없는 고기 집에 또다시 침묵이 흐르자 아무 말 없이 안 익는 고기만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무심히 말했다. 녀석은 태연함을 가장하는 기술만큼은 나보다 뛰어났다. 군대 시간은 참 안 가더니 군부대 인근의 시간조차도 참 안 갔다. 찐 건지 구운 건지, 어쨌든 사십 분, 먹는데 이십 분. 딱 한 시간 만에 우린 갈비집 문을 열고 나왔다. 성미 급한 우리들에게 한 시간이란 식사시간은 최장 기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고깃집이 난로에 고기를 익히느냐며 앞 다퉈 욕을 쏟아 냈다. 입소식까지는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아있었다.  남은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난감했다. 우리는 가족 역사상 처음으로 다 같이 커피숍에 가기로 결의를 했다. 술잔이 아닌 커피와 음료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우리 모습은 참 낯설고 어색했다. 딸은 지가 주문한 팥빙수를 열심히 퍼먹었다.    

  

“야! 너는 동생한테 한 입 먹어보란 소리도 안 하냐? 입대하는데?”

“아이 참, 얘가 애야? 군대 두 번 가면 큰일 나겠네”      


나는 딸에게 격한 공감을 표했다. 애들 엄마는 입대하는 아이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연출은 내 아들이 더 부담스러워하고 어색해한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다. 날 닮았으니까.  

   

“너도 먹고 싶으면 가서 하나 주문 해.”   

  

딸의 말은 내가 듣기에도 참 무심했다. 그냥 한 입 떠 먹여주면 제 엄마도 좋아할 텐데.. 쯧쯧..      

커피숍 안에는 우리와 같이 까까머리와 그 가족들로 인산인해였다. 사장이 누군지 몰라도 훈련소 앞에 커피숍을 차릴 생각을 하다니 참 신선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면 고기 집을 차렸겠지.      


“그래도 우리 아들 머리통이 제일 잘 생겼다. 앞짱구 뒤짱구.”   

  

난 아들의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실제로 커피숍 안 까까머리들 중 내 아들 인물이 제일 나아 보였고 키도 제일 커 보였다.  

    

“아이, 왜 이래. 닭살 돋게.”  

  

아들이 얼른 머리를 빼고 내 손을 치우며 말했다.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큰맘 먹고 칭찬했건만, 역시 날 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 엄마는 부디 몸 사리고 건강 조심하라는 말만 몇 번째 반복했고 딸은 팥빙수 잔 바닥을 핥았다.  

   

“아~ 왜 이렇게 졸리지?”    

 

아들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식곤증이지.” 

   

내가 아는 척을 했다.  

   

“야! 군대 끌려가는 마당에 졸리다고?”       

 

애들 엄마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엔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엄마와 떨어지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아들이 서운했겠지만 성인이 되어 입대하는 놈이 그런 생각까지 하겠나 싶어 나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녀석의 센 척은 거의 허세 수준이었다.   

   

어느 때부터 옆자리 뒷자리 사람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도 그만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애들 엄마는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다며 서두르는 내게 또 역정을 냈다. 무슨 영영 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참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아줌마. 군대는 말이야.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거야. 혼자 개별행동하고 튀면 찍히는 거라고.”  

   

애들 엄마는 아들이 찍힌다는 말에 찔끔해서는 후다닥 일어났다.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날이 잔뜩 찌푸렸었는데 논산은 해가 쨍쨍했다. 우리는 손 부채질을 하며 터덜터덜 훈련소 안으로 향했다. 왜 군대 날씨는 늘 거지 같을까. 오래된 미스테리였다.      


입구부터 차량과 입소자 안내를 위해 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개중에는 칼 각 잡힌 군복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기계처럼 무표정의 병사들도 있어서 새삼 나의 군대 향수를 자극했다.

      

“그렇지. 저게 바로 군인 모습이야. 저 포스 하며.. 늠름하잖아? 저기 전차 봐라. 압도적 위용이지 않냐? 캬~ 옛날 생각난다.”

      

옛날 생각도 나고 축 처진 기분을 환기시킨답시고 또 주절거렸더니 전처가 또 발끈했다.     


“그럼 당신이 얘 대신에 군대 또 가!”     


아니, 이 아줌마가 미쳤나? 예비군 훈련 다시 받으라고 해도 치를 떨 마당에 무슨 그런 심장 떨어질 소리를.. 오늘 잘못 건드렸다간 괜히 국물도 못 건지겠다 싶어 이제부터 내 입을 틀어막기로 했다.      


“군인은 뚱뚱한 사람이 없네?”     


상기된 녀석의 표정을 보니 그제야 입대가 조금 실감된 모양이었다. 아니, 실감은 진즉에 났는데 잘 숨기다 이제 드러내나 보다 했다.     


“살찔 틈이 어디 있겠냐? 훈련하고 매일 알통 구보하고, 또.. 전투 축구하고.. 너도 이참에 몸 좀 만들고 나와. 젊은 놈 몸이 그게 뭐냐? 물살만 피둥피둥 쪄 가지고 말이야.”

 

“아빠 뱃살이나 빼세요.”   

  

다른 때라면 내 배를 툭툭 치며 빈정댔을 녀석이 오늘은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말했다. 녀석이 드디어 긴장 타는 게 분명했다.      


‘그럼 그렇지, 명색이 군대 가는데 긴장 안 타고 배기냐?’     


내가 속으로 킥킥대는 동안 전처는 아들을 보며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 진짜 몸 좀 튼튼하게 하고 나와. 군대에서 남겨 오는 건 건강밖에 없다더라.”      


오늘 처음으로 내 말에 공감을 표한 말이었다. 왠지 고마웠다. 그러나 그 뜻은 종일 하고 싶었던 당부 말, 아까도 계속한 말, 무사히 제대하라는 얘기일 터였다.  


"배 나온 우리끼리 사진이나 한 방 박자."


내가 전차 앞으로 아들을 끌고 가자 들은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끌려왔다. 우린 부자지간답게 나란히 서서 차렷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일치감치 연병장 스탠드에 앉은 우리는 군악대의 리허설을 구경했다. 구린내 나는 군가를 연습할 줄 알았건만, 그들은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연주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군대 이미지 연출을 위한 짓거리라 생각됐다. 그래서 속으로 ‘보이는 짓거리 말고 진짜 병사들을 위한 행정을 하라!!’고 외쳤다. 모병제를 적극 지지하는 내가 아는 한, 징집 군대, 특히 한국 군대는 한창나이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가혹한 집단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에너지 왕성한 시기의 젊은이들을 이념, 성향과 무관하게 강제로 끌고 가 제식이니 총검이니 사격 따위를 가르치는 대한민국 현실을 한심해했다. 잊을만하면 의문사가 발생하고 성폭력이 난무하는 후진성, 가리고 감추고 가장해 드러내는 폐쇄성, 자기는 탁상행정에 젖었으면서 사상은 호전적인 똥별들의 보수적 사고방식 등 가장 낙후된 곳이 한국 군대라는 생각은 제대 후에 오히려 더 굳어졌다. 군악대가 가요를 연주하고 여성 연대장이 나와 엄마와 같이 병사들을 보살피겠다는 설레발 말고 진짜 남의 자식 소중함을 생각하는 군대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참여 정부의 공약이었던 모병제가 아직 논의조차 안 되고 있는 지금, 훈련소 연병장에서 내 아들을 바라보니 뭔가 억울했다. 그러나 남들 자식들도 다 가는 마당에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입대 삼십 년도 더 지난 내가 어느새 아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이 되어 다시 한번 녀석의 까까머리를 쓰다듬었다. 까끌까끌한 촉감에 서글펐다. 그런데 웬일로 녀석은 제 머리통을 온전히 내게 내어주고 있었다. 녀석이 기저귀를 벗을 때쯤에도 그랬다. 난 방바닥에 누워 스케치북에 색칠을 하고 있는 녀석의 바지를 벗기고 통통한 두 엉덩이 볼을 좌우로 스쳐 쓰다듬으며 TV를 보는 게 낙이었다. 그럴 때면 아무 투정 없이 연신 제 바지를 훔쳐 올리곤 하다 지쳐 엉덩이를 다 내어주고 그림을 그리던 녀석이었다. 


상념을 접고 연병장을 보니 어느새 군악대가 제 위치에 자리했고 조교들이 분주히 뛰어다니는 모습이 리허설이 끝난 것 같았다. 투박했지만 가족과 함께 한 배웅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녀석도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녀석의 무료한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 자식 센 척 장난 아닌데?'

"어머. 이제 진짜 들어가나 봐. 어떡해.""

 

내가 녀석의 의외의 모습에 놀라 있을 때 애들 엄마는 목소리는 다급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을 터트렸다. 때를 맞춰 입소자를 연병장으로 불러 모으는 안내 방송이 퍼지자 애 엄마는 아예 통곡할 듯한 얼굴이 됐다. 딸이 얼른 제 엄마의 어깨를 감쌌다. 여태 핸드폰으로 게임만 하더니, 눈치는 다 있었나 보았다. 녀석은 안내 방송이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 엄마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내게로 돌아섰다. 


‘설마? 이 녀석이?’


난 예상치 못한 시추에이션에 당황했다. 초등학생 이후로 우리 부자는 서로 껴안아 본 적이 없었다. 녀석도 멈칫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녀석을 감싸 안았다. 녀석은 내 팔에 다 감기지 않았다. 그러자 녀석이 나를 안았다. 언제 이렇게 덩치가 커졌을까. 녀석은 딱 2초간 나를 안았다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씩씩하게 연병장으로 걸어내려갔다.    


난 전날부터 그 순간까지 줄곧 태연한 척해왔다. 아들도 그랬다. 우리 둘은 남자끼리 누가 더 태연한 지 우스운 겨루기를 했다. 그러나 아들도 명색이 군대에 입대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태연한 척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녀석은 끝내 태연한 척했다.

      

‘그래. 내가 졌다.’

     

내가 패배를 인정한 건 연병장으로 걸어가는 아이가 뒷모습을 보았을 때다. 똥꼬에 바지 씹힌 엉덩이를 실룩 거리며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에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으이구. 칠칠 맞게스리.’     


그랬다. 녀석은 벌써 스무 살이었고 아직 스무 살이었다. 바지가 똥꼬에 씹힌 것도 모르는 천진한 애였다. 저 어린것이 험한 군 생활을 한다니. 옛날 내가 허구한 날 쓰다듬었던 아들의 그 엉덩이가 이제 좀 컸다고, 군대 간다고 바지를 씹고 실룩거리고 있었다. 뒤늦게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녀석은 내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열의 맨 앞에 서서 가슴을 한 번 쪽 펴더니 척하고 열중쉬어 자세를 했다. 


'어쭈리? 짜식이 진짜 센데?’    


난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며 하늘을 봤다. 

         

입소식이 끝나고 아들이 인솔되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자리를 지켰다. 그러지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엄마에게 한 마디 했다. 


"엄마. 우리 PX 가자."    

“너 어떻게 알았어. 엄마 오늘 PX 털 건데.”     


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애들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딸의 팔짱을 끼고 수다를 떨며 발걸음 힘차게 걸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불쌍했다. 한 시간 반 후, 계산대 앞으로 두 여자가 들고 온 장바구니는 네 개였다. 과연 배웅이 목적이었을까 의심까지 들었다. 

    

그날 저녁 애들 엄마와 나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위로주를 산답시고 앉았지만 사실 내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취기가 돌자 애들 엄마와 나는 앞 다퉈 아들의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녀석의 어릴 적 모습과 몇 시간 전 찍은 사진을 비교하며 웃었다가 착잡해했다가 또 낄낄댔다가 했다. 그리고 애들 엄마이자 전처와 함께 오랜만에 아들 얘기를 하다 보니 술이 과했나 보았다. 그 시각 녀석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보세요. 우리 아들 입대했어요, 입대.”

“아, 그렇지.” 

    

애들 엄마는 나를 타박해 놓고 또 울상이 됐다. 

     

“적당히 해라. 니 아들만 군대 갔니?”     


나도 그렇고 애들 엄마도 그렇고 둘 다 이대로 뒀다간 뒷감당이 안 될 거 같아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나 역시 애들 엄마에게 타박은 했지만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아 녀석에게 미리 편지를 썼다. 쓰다 보니 걱정과 당부 같은 뻔한 얘기만 자꾸 나왔다. 어느새 꼰대가 된 건지 아빠는 꼰대일 수밖에 없는 건지 한숨만 쉬다 다음에 아들을 군대 보낸 아빠가 적응이 되면 쿨하게 쓰기로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꿈에 공습 싸이렌 소리를 들었다. 꿈속에서도 군부대를 방문한 후유증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번엔 휴대폰이 자지러지게 요동 쳤다. 뭔가 심상찮은 예감에 눈을 떠 휴대폰을 열었다. 위급 재난문자였다. 


'경계경보 발령. 대피 준비.'


분명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그래도 난 숙취에 분간이 안된 줄 얼른 TV를 켰다. 속보엔 '북한이 남쪽으로 발사체를 쐈으니 대피준비'라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북이 해상도 아니고 이쪽으로 뭘 쐈다고? 뭐야? 그럼 이제 전쟁이야?’      


난 잠이 확 달아났다. 


‘우리 애 아직 총 쏘는 것도 못 배웠는데? 이것들은 어차피 쏠 거면 일찍 쏘던가, 왜 하필 내 아들 입대한 날 지랄들이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자대도 아니고 훈련소에 있는 애와 어떻게 연락할지 몰라 허둥지둥 담배를 찾아 물고 침착하게 연락 방법을 궁리했다. 


'논산으로 찾아 가?'


그때 또 휴대폰이 방정맞게 울렸다.  

     

‘오발령.'

'........!!! 이런 개새끼들 같으니라구.’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울화가 치밀었다. 대체 이 나라는 왜 이 모양일까? 앞으로 재난뿐 아니라 군 장병 부모로서 군 관련 뉴스에 얼마나 가슴 졸이며 살게 될까. 언제까지일까? 착잡한 마음에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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