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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22. 2021

영상 바닥,이건 알고 디디자.

1화- 화려하게 쩐 내 나는 현장

영상 제작 실무 강사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면 내가 첫 강의 때 꼭 하는 질문이 있었다.

영상 제작 일을 하고 싶은 이유이다. 

고리타분한 질문이지만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거나 시각적으로 자기만의 표현을 하기 위해서라거나 하는 좀 거창(?)한 대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기대에 미치는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강의 의욕을 북돋울뿐더러 보다 제작의 고차 방식까지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들게 해서 눈여겨보게 된다. 그러나 60~70%의 학생들은 매년 같은 대답을 한다.      


“재밌을 거 같아서요.” 


직장인 반에서는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하고 거의 대부분 십 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학생들에게서 나오는 ‘연예인을 많이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대답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연예인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가질만한 나이라 해도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문 영역에 도전하는 이들이 내뱉는 저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어떤 학생들은 ‘1박 2일’ 같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본 카메라맨과 PD, 작가 등 제작 현장에서 뛰는 이들이 함께 웃고 즐기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음도 고백한다. 연예인 따위엔 관심 없고 전문적 기술을 익히고자 하는 학생들도 제작진이 그 화면을 위해 몇 날 며칠을 땀으로 지새운 건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여서, 그 고역스런 날들이 앞으로 본인들이 겪어야 할 날들임을 아는 나로서는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다.        


카메라맨은 10Kg에 육박하는 ENG 카메라를 들쳐 메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느라 장애물에 걸려 자빠지더라도 몸보다 수천만 원짜리 카메라를 먼저 보호해야 하며, 오디오 맨은 점점 내려오는 붐 마이크를 저린 팔로 부여잡고 차라리 얼른 NG라도 나기를 빌고 있으며, 조명 맨은 따가운 뙤약볕 보다 훨씬 더 뜨거운 조명 열기 아래서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고, 모든 스텝이  출연자의 동선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 조명, 음향 등 수십 Kg의 수십 가지 장비들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옮겨야 한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 그럼, 연출진은 편하게 앉아 놀고먹느냐? AD(조연출)는 당장의 촬영장면도 들여다볼 시간 없이 다음 장면에 필요한 소품과 출연자 점검하느라 머리에서 김이 나고, PD(제작연출)는 촬영 시간과 제작비는 빠듯하건만 자꾸만 NG를 내는 연기자를 다독이느라 열불 터지는 데다 예상치 못한 비 때문에 촬영 컨셉을 바꾸느라 진땀을 빼고 있으며, 작가들은 대본 수정하랴 펑크 낸 출연자 대타 구하랴 바뀐 컨셉에 맞춰 새로운 장소 섭외하랴 죽을 맛이란 걸 몰라서, 그래서 그들이 안쓰럽다.      




그들이 무지개 같은 환상만 가지고 무작정 이 바닥으로 뛰어드는 데는 90년대 이래 미디어 산업 육성을 기치로 방송사 아카데미를 비롯해서 사설 학원이 우후죽순 신설된 탓이 크다. 특히, 아카데미나 사설학원 같은 곳에서 대량으로 양성된  졸업생들은 대충 엮은 이론과 어설픈 실습만 마치고 현업에 뛰어들었다가 상상과 다른 쓴 맛만 보고 다시 진로를 고민해야 했다. 그런 양성소들은 장차 영상을 업으로 삼으려는 새내기들에게 제작 실체를 느낄 수 있는 교육 없이 허황된 꿈만 심어주고 내보내다 보니 졸업생들은 취업한 곳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경우, 취업자 대부분은 몇 달 못 가 잘리거나 스스로 퇴사해 내가 강의하던 직장인 반 같은 곳으로 다시 들어온다. 단지 취업통계만을 반영하는 100%라는 기이한 취업률을 간판으로 세워놓고 무늬만 실습인 커리큘럼으로 때우는 양성소가 지금도 많다. 며칠 만에 퇴사했는지는 반영하지 않는 숫자놀음으로 손짓하는 곳이 도처에 널려 있으니 지금 이 시간에도 방송사뿐 아니라 서울에만 수천 개가 넘는 외주 제작사, 프로덕션 등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허술한 커리큘럼뿐 아니라 정보 면에서도 아카데미나 학원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곳은 대학처럼 선후배 간 유대의 끈이 없어서 현역에게 제작환경이나 업계 실태를 들을 기회가 없다. 교수나 강사마저도 흥미위주의 ‘썰’만 풀어놓으니 학생들은 그나마 간접체험도 못하는 것이다.         


사실, 앞에 언급한 노동의 강도는 본인이 제작에 커다란 재미를 느끼거나 성취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성향이라면 이겨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 이들은 피곤에 지쳐 더 이상 창조적 아이디어가 동 났을 때도 휴가라도 얻어 재충전을 하면 대부분 회복이 되므로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매력적인 겉만 보고 뛰어들었다가 호기심이 사그라지자 매너리즘에 빠져 더 이상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다. 슬럼프로 착각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하면 안 맞는 직업을 택한 것이다. 영상 바닥은 늘 하던 식으로 촬영하고 편집하고 연출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더구나 보통의 직장인처럼 대충 시간만 때우고 퇴근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나 하나 실수로 장면 전체를 버리기도 하며, 심하게는 많은 스텝들이 재촬영과 재편집을 해야 하는 팽팽한 긴장 속 작업이라 구태의연한 자세로 제작에 임했다가는 곧장 쫓겨나기 십상이다. 영상 바닥에 종사하는 분들은 대부분 잦은 밤샘과 불규칙적인 식사, 마감 스트레스로 인해 역류성 식도염쯤은 기본으로 달고 살며 나처럼 불면증을 앓기도 한다. 이런 3D업종을 지원하는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지 않고서야 그깟 연예인이나 보자고 덤빌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리 기죽일 수도 없다. 어떻게든 제작 현실을 직시하고 준비하며 그때그때 대처하는 요령과 버티는 힘을 길러주는 수밖에.. 

그래서 영상 바닥이 화려하다는 것은 화려한 연예인과 같이 호흡해서가 아니라 그저 해야 할 일이 워낙 다채롭고 다이내믹해서라고 말하고 만다.      


첫 강의 마지막엔 꼭 덧붙이는 말도 있다. 

“영상 바닥은 지쳐 졸다가도 큐 사인만 떨어지면 감각세포가 살아나 절로 흥분하는 끼, 어떤 단서도 없는 백지 위에 상상만으로 화면을 그려낼 감각이 있으면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타고나지 못했어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쩐 내 나는 옷을 며칠씩 입고도 고된 노동 끝에 보람을 느낄 뚜렷한 목표만 있으면 충분히 버틸 수 있고, ‘존버’한 그 시간이 나머지 부족분을 해결해 줄 것이며 그런 마음 자세로 도전한다면 영상 바닥은 기어이 성취감으로 보답할 것이다. 전문인이라는 자부심도 함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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