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5년 동안 6번 이직했다. 그중 4번은 사장하고 맞짱 뜨고 나왔다. (영상 제작사는 보통의 회사처럼 직급이 많지 않다.) 한 번은 사장 머리 위로 재떨이를 던지고 나온 적도 있었다. 미디어 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각광받았지만 미디어 종사자가 많지 않은 시절이라 이직에 어려움이 없었다. 지금은 구글링 좀 하고 나면 누구나 PC로 영상을 뚝딱 만질 수 있는 환경이지만 당시엔 나름 전문직이었다. 3D 업종이라 불릴 만큼 노동 강도도 높고 사람 구하기 힘든 시절이라 아무리 업계 이직률이 높았다 해도 남들은 3,4년씩 잘도 다니는 회사를 대부분 1년을 못 채우고 뛰쳐나온 이유는 다 내 욱하는 성격 탓이다. 게다가 ‘모 아니면 도’인 성질머리도 있다. 갈등 상황일 때 두 선택지 중 양쪽 모두에서 조금씩 손해 보고 둘의 장점을 취하는 법이 내겐 없었다. 못된 상사와 불화가 생기면 내 선택지는 퇴사냐 싸우느냐만 남았다. 그러니 상대를 설득하거나 인내하면서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려본 적이 없다. 정당하지 못하다고 하면 뒷생각을 못했다. (안 했다가 아니다.)
주위에서 ‘모 아니면 도’인 성격이라고 지적을 해도 지적을 지적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내 성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고백건대, ‘중간이 없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 란 말을 칭찬으로 알아들었다. 보통은 나이가 들고 사회에서 활동 영역이 다양해지면 성질이 수그러든다는데, 나는 오히려 다이내믹해졌다. 그런 유연성 없는 성격이 비즈니스에선 말할 것도 없고 그간의 인간관계에서 어마한 손해를 끼쳤다는 건 삼십 대 중반에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매사 옳고 그름을 따지고, 거기다 욱하는 성질까지 더해져 주위를 피곤하게 만들 뿐 아니라 내 삶을 퍽퍽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자 그동안 빵구 난 인생을 산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내 성질머리를 바꿔보기로 했다. 노력하면 성격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부터 조석으로 명상을 했다. 늘 양극단만 있고 중간이 없는 사고를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무슨 자신감으로 세상 혼자 잘났다고 다른 사람의 허물만 보고 내 오만은 못 보고 살았는지, 명상을 하며 되돌아볼 때마다 후회 정도가 아니라 나란 사람이 오싹하기까지 해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심정이 되곤 했다. 그래도 명상 덕분인지 이 나이 돼서 그나마 쪼끔 바뀌었다면, 예전엔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이었다면 지금은 언제고 터질 수 있는 불발탄이랄까? 늘 후회하고 반성해도 어떤 상황에 처한 나를 내가 예측할 수 없으니 아예 절에 들어가 수행이라도 해야 할지 싶은데, 그러기는 싫고, 그래서 지금은 아예 기도를 하고 산다. 때와 장소는 가리게 해달라고. 객사는 면하게.
도대체 난 왜, 어째서 아무 때나 그리 욱하는지, 가장 유난스러웠던 기억만 끄집어 내 추려봤다. 나름 나란 놈을 분석해 보려는 것인데, 쓰다가 말았다. 상대가 예의 없을 때, 남이 깔볼 때, 안하무인일 때, 부조리한 상황, 그걸 외면하는 사람, 비겁한 사람.. 이건 뭐 세상사 전부가 해당 돼서 사회 부적응자 같아서였다. 그래도 기억을 끄집어 내다보니 작은 희망 같은 게 보였다. 기도 때문인지 나이 때문이진 모르겠으나 몇 년 전부터 그 빈도수가 확연히 줄었던 것이다. 대상 범위도 축소 됐다. 예의 없음과 부조리 정도? 예전 같으면 욱하고 벌써 들이받았을 일을 참고 넘긴 경우도 꽤 있던 것이다. 몇 년 만에 만난 지인들이 하는 말도 내가 그런대로 좀 나아졌다고 생각하게 했다.
‘너 성질 많이 죽었다.’
그래서 진짜 나도 좀 변한 줄 알았다. 잘하면 이제 웬만한 일은 좀 적당히 넘기고 내 안위를 고려하며 사는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름, 이 희망을 여지없이 깨트린 일이 일어났다. 아니, 저질렀다. 돌이켜 보건대, 그날 일은 내 편견에 근거한 부조리 때문에 시작돼서 진짜 부조리에 일이 커졌다가 다시 편견에 근거한 부조리 때문에 망한 케이스다. 아니다. 정정. 부정행위라고 판단한 내 편견으로 시작해 공무원의 부조리에 빡치고 또 사회악이라고 판단한 내 편견에 발끈했다가 망했다. 변하기는 개뿔, 나란 놈 어쩔 수 없나 보다 싶은 사건이었다.
거래처 사람과 저녁 식사 겸 반주로 술 몇 잔 하고 택시를 탔다. 만취가 아닌 이상 집이 아닌 곳에서 술 먹고 잠든 적 없는 내가 이틀 밤을 샌 그날은 반주로 먹은 몇 잔 술에 택시에 오르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도착했다는 택시 기사의 말에 깜짝 놀라 깬 나는 택시미터기에 찍힌 요금에 또 놀랐다. 몇 년 동안의 거래처라 자주 택시를 탄 그곳에서 집까지 요금이 평소보다 오천 원 넘게 더 나왔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워나 심야에도 몇 백 원 정도 차이만 날 정도로 코스가 뻔했던 거리였다. 기사가 일부러 멀리 돌아온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취객에게 요금으로 장난치는 사례야 술자리 얘깃거리도 안될 만큼 새로운 게 아니지만, 막상 내가 당하자 일단 욱하는 성질이 튀어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간 단련한 마음가짐을 떠 올리면 침착히 물었다.
“기사님? 여기 제가 늘 다녔던 거린데.. 음.. 제 생각엔 오천 원 넘게 더 나온 것 같습니다만.”
내가 예의를 갖췄음에도 기사는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
“이봐요. 내가 지금 바가지 씌운다는 거예요?”
왜 한국 사람들은 상대가 공손하면 호구로 보는 걸까? 그러나 또 욱하는 걸 참고 말했다.
“아직 바가지라고 말하지 않았구요. 어느 길로 오셨죠?”
“뭘 어느 길로 와? 네비 따라왔지.”
여기까지가 내 한계였다.
“이 양반이 좋게 말했더니.. 당신 왜 반말이야? 손님이 물어보면 합당한 대답을 하면 될 일이지 성질부터 내고 말이야. 내가 이 길을 한두 번 다닌 줄 알아? 어디서 사기 칠라고...”
“사기? 이 사람이.. 파출소 갈까?”
이쯤 되자 당황한 건 나였다. 내가 아는 한 경찰은 실랑이 끝에 마지막으로 꺼내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맥주 몇 잔에 수십 번 넘게 탔던 택시요금을 착각했을 리 없었다. 이건 기세 싸움이라 생각했다.
“갑시다.”
택시기사는 내 말에 끝나자마자 대꾸도 않고 핸들을 돌렸다.
‘뭐지? 저 당당함은?
녹초가 됐던 몸에 갑자기 긴장이 흐르며 술기운이 싹 가셨다. 기사는 네비도 안 찍고 몇 분 만에 지구대 앞에 도달했다.
‘역시 전문가군.’
바가지요금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이쯤에서 기사는 전문가답게 택시에서 내리기 전 한 번 더 물어봐야 했다. ‘진짜 들어갈까요?’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서 요금 합의를 보든가 해야 했다.
그런데 기사는 아무 말 없이 택시에서 내렸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르며 내가 술을 몇 잔이나 먹었는지 세어 보았다. 기억은 안 나지만 요금을 착각할 만큼 취하지 않은 건 확실했다. 우리를 맞이한 경찰은 기사와 나를 쓱 번갈아 보더니 이내 사건의 전모를 이미 알겠다는 눈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기사와 나의 뻔한 진술이 오간 지 몇 분 안 돼 짜증 섞인 표정의 담당 경찰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아저씨. 그러니까 당신은 그 거리는 절대 그 요금이 나올 수 없다 이거야?”
“내가 거기서 집까지 한두 번 택시 탄 것도 아니고..”
“얼마나 탔는데?”
“수십 번은 탔을 걸요?”
“그때는 술 안 마시고?”
“...?...먹고 탄 적도 있고 안 먹고 탄 적도 있고..”
“지금은?”
“먹었죠.”
“취했지?”
여기서 내 한계에 봉착했다.
“그래 취했다, 임마. 근데 너 왜 자꾸 반말이야. 새파란 놈이.”
담당 경찰은 탁 책상을 치더니 의자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쉬었다.
“경찰이 돼가지고 왜 시민한테 반말이냐고? 내가 니 친구야? 그리고 술 먹으면 범죄자야? 넌 술 안 먹냐, 임마?”
담당 경찰은 찌든 얼굴이긴 했지만, 많아야 삼십 후반 나이로 밖에 안보였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놈이 제복 입고 반말하는 태도가 시민한테 권위나 부리는 경찰의 구태로 보였고, 술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술주정 부리는 취객 취급하는 것에 욱했다. 결국 욱하니 톤도 높아지고 몸이 자동으로 일어서졌다. 담당 경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뒤에 앉은 나이 지긋한 다른 경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마치 지원 사격을 해달라는 신호이겠거니 했고, 그 예상은 맞았다. 뒤쪽에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던 나이 지긋한 경찰은 나이 지긋한 말투로 몸을 더 깊숙이 누이며 말했다.
“어이, 이 양반아. 술 먹고 택시기사랑 요금시비 붙어서 와놓고 말이야,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우리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여기 경찰들 안 그래도 피곤하니까 시끄럽게 하지 말고 대충 합의 보고 나가.”
책상 위에 발이라도 얹어 놓으면 딱 어울릴 권위에 쩐 태도였다. 그 태도가 내 성질에 기름을 부었다.
“야! 그럼 경찰이 이런 거 해결하라고 지구마다 있는 거지. 그럼 니들은 살인사건만 맡냐? 이것들이 기껏 방범이나 서는 주제에 꼴에 경찰이라고 꼴값 떨고 있네. 민원이 들어왔으면 원만히 해결 방안 찾을 일이지 어디서 시민한테 반말 지껄이고 시건방을 떨어? 의자에 파묻혀 있는 거보니까 하는 일도 없는 거 같구만.”
욱 터지면 앞뒤 안 가리고 오버하는 버릇이 여지없이 튀어나왔다. 이미 내게 요금 시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나이 지긋한 경찰의 행태는 젊은 경찰의 잘못된 행동을 감추기 위해 대충 사태를 무마하려는 의도로 보이기까지 해서 난 더 열을 올렸다.
“그리고 당신 술 안 먹은 시민한테도 반말해? 아무리 경찰이라도 젊은 놈이 윗사람한테 반말하는데 계급 높은 사람이 지적은 못하고 거들기나 하고 말이야.”
이윽고 나이 지긋한 경찰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네이버 지도 봐봐. 그 거리면 모범택시로 그 정도 요금 나오겠는데, 왜 기사하고 시비 붙어가지고 우리한테까지 시비야? 당신 업무방해로 넘길까?”
‘....응?... 모범? 아 씨. 내가 탄 게 모범택시였구나.’
아까 택시에서 내릴 때부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싶었는데,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택시는 내가 잡아 탄 게 아니었다. 거래처 사람이 불러 준 택시였다. 이틀 밤을 샌 나는 어서 빨리 자리를 끝내고 싶었고, 그런 밤샘 작업을 안 그가 남은 술을 비우는 동안 미리 불러 놓은 택시에 도망치듯 올라탄 거였다.
‘그 사람은 지가 택시비 낼 것도 아니면서 무슨 모범을...’
‘택시기사도 그렇지. 모범이면 모범이라고..’
되도 않는 원망을 했다. 나이 든 경찰은 의자 깊숙이 몸을 숨기고 딴짓한 게 아니라 네이버 지도를 보고 있었던 거였다. 능구렁이였다. 이렇게 되면 내 행동은 기사나 경찰들 입장에선 명백한 술주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택시기사한테는 몰라도 경찰다운 구석이라곤 제복 빼곤 하나도 없는 그 경찰들한테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건 또 용납이 안 됐다. 오기였다.
“알았어. 당신들 잠깐 기다려. 내가 오늘 그냥 안 넘어간다. 어디서 아무한테나 반말하고 술 먹었다고 범죄자 취급하고 말이야..”
“이 사람이 진짜. 아까부터 누가 범죄자 취급했다고 그래?”
난 대꾸 않고 택시비에 삼만 원을 더 얹어 택시기사에게 건넸다.
“지금 기사 분하고 시비 가릴 때가 아니니까 이 돈 받고 그냥 가시죠. 일 못하신 시간까지 생각해서 더 드리는 겁니다. 난 저 사람들 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비겁한 변명이었다. 이때 솔직히 모범인 줄 몰랐다고 사과했으면 다들 어이없어하겠지만 뒤탈은 없었을 것이다. 간단히 나만 쪽팔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퉤퉤.’ 하고 털어버리는 여유, 또는 ‘오잉? 그게 모범이었어요? 히히.. 꿈에도 몰랐네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유머와 용기가 없었다. 정확히는 평소엔 잘도 그러다가 욱하고 나니 자취를 감췄다는 게 맞겠다. 결국 내 잘못은 숨기고 사태를 무마하려는 놈은 내가 된 셈이다. 택시기사가 헛웃음을 지으며 바지를 털고 일어나 경찰들에게 까딱 인사하고는 파출소를 나갔다. 이제 파출소엔 경찰 두 명과 나만 남았다.
“어이, 아저씨. 이제 끝났으니까 아저씨도 얼른 가.”
택시 기사가 나가는 걸 본 젊은 경찰은 이내 책상으로 시선을 꽂고 말했다. 정 자존심이 허락 안 했더라도 이때라도 대충 투덜대고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분노 버튼이 눌린 이상 제동이 안 됐다.
“이 자식이 끝까지 반말이네. 야, 너 뭐 하는 새끼야. 경찰 맞아?”
욕을 들은 그도 벌떡 일어섰다. 이때 나이 먹은 경찰이 젊은 경찰을 크게 불렀다. 그리고 눈짓을 했다. 그러자 젊은 경찰은 책상을 빙 돌아 나오더니 다짜고짜 내 손목 한쪽에 수갑을 채우고 다른 쪽을 긴 의자 팔걸이에 걸어버렸다. 이후 말씨름은 없었다. 술 먹은 게 죄냐, 욕했다고 수갑을 채우냐, 그럼 니들은 왜 반말이냐, 범죄자한테도 존댓말 써야 하는데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뭐 이런 한심한 투정과 둘 다 옷을 벗겨 버리겠다는 등의 공갈을 나 혼자 쳤을 뿐이었다. 그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므로 혼자 씩씩대다 얼마 안 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뜬 건 환하게 밝은 아침이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게 열 시쯤이었으니까 지구대 딱딱한 나무의자에서 8시간 이상 한 번도 안 깨고 편하게 잔 거였다. 주위를 살폈다. 지구대 안엔 어제의 경찰 둘 다 안보였다.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처음 본 젊은 경찰이 다가와 밤새 천둥번개 소리가 요란했는데 코 골며 잘도 주무시더라며 수갑을 풀었다. 그리고 날이 개었으니 얼른 집에 가시라고 했다. 툭하면 욱하고 자주 꼭지가 도는 내가 늘 궁금한 게 있다. 왜 자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을까? 미스테리다. 난 수고하시라고 꾸벅 인사를 하고 거리로 나왔다. 전날 천둥번개가 쳤다고 믿지 못할 만큼 하늘이 쾌청했다. 숙면을 한 덕분인지 기분이 상쾌했다. 이후 그날 일은 까맣게 잊고 욱하는 성질머리 뜯어고치겠다고 다시 매일 다짐하며 지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우울증이 또 도졌다. 보통은 나름 깨우친 방식으로 잘 넘기며 살아왔는데, 이번에 꽤 오랫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벌려 놓은 일은 마무리가 안 돼 몸만 바쁘고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도졌는지, 우울증 때문에 스트레스에 더 민감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만사 의욕이 없어 글도 쓰고 싶지 않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일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기 00경찰선데요. 000씨 되시죠.”
여기까지 듣고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팔. 그만 좀 해라.”
짧고 찰지게 욕하고 빡 끊어 버렸다. 한동안(?) 착하게 살아온 데다 거만하게 일부러 내리 깐 목소리가 보이스 피싱이 분명했다. 보이스 피싱도 많이 발전했다는데 아직도 경찰 사칭이나 하는 걸 보니 신생 조직인가 보다 했다. 그리고 또 잊고 지냈다. 잊을 수밖에 없었다. 꼬인 채 풀릴 기미가 안 보이는 프로젝트와 우울증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느라 딴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뒤 집으로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경찰서에서 보낸 거였다. 죄목은 경범죄. 상세 사유는 관공서에서의 음주 소란. 벌금 50만 원. 몇 달 전 여름 파출소 사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날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히 재현됐다. 하지만 욱하지 않았다. ‘치사한 새끼들. 기어이 넘겼군.’ 중얼거렸을 뿐 부아가 나지 않았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내 욱하는 성질머리는 기운이 다 빠져야 겨우 가라앉는 걸까? 이번엔 욱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지쳤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서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몇 번 만에 담당 경찰과 통화할 수 있었다. 전화를 넘겨받은 경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벌금을 부과하기 전에 사전 고지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이의제기를 하든 말든 하죠.”
따지듯 물었다. 그런데 담당 경찰은 내 이름을 확인하고 나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변했다.
“저번에 내가 전화했더니 선생님이 욕하고 끊었잖아요!”
띵~. 진짜 머리가 띵했다. 식욕도 없어 잘 먹지 않은 탓도 있었을 거다. 그래서 잠시 말을 못 하고 있었더니 경찰은 다시 차분해진 목소리로 출석 요구서도 보냈다느니, 답이 없어 전화를 했다느니 뭐라 뭐라 설명했는데, 연달아 카운터펀치를 맞은 느낌이라 도통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다만 그때 내가 보이스 피싱으로 확신한 목소리가 이 목소리였는지가 궁금해서 기억을 되살려 봤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내가 아무 말 없자 더 차분한 목소리로 즉결 심판을 받을 건지 벌금을 낼 건지 물었다. 그날 그 경찰들의 무례함을 설명하고, 맞고소를 하고, 정식 재판을 요구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러느라 걸릴 시간과 쏟을 에너지가 당시로선 감당이 안 됐다.
“저.. 경찰관님. 벌금을 좀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저번 사건 때 부리지 못했던 유머를 부렸다. 진짜 깎아주길 바란 게 아니라 그냥 완전 망한 기분인 나를 위로하려고 익살스럽게 말했다.
“참나. 그걸 내가 어떻게 깎아요? 즉결심판 받으시고 판사한테 얘기해 보세요.”
“으하하. 농담입니다. 경찰서가 시장판도 아니고 깎기는 무슨. 낼 게요, 벌금. 그럼 오늘도 수고!”
유머랍시고 아무 말이나 막 던져놓고 냉큼 전화를 끊었다. 허접하나마 유머를 부리고 나니 우울감도 잠시 사라졌다. 유머는 이래저래 만병통치약이었다.
욱해 놓고 좋았던 기억은 내 인생을 통틀어 딱 한 번이었다. 회사 여직원이 어느 날 옥상에서 울고 있길래 이유를 들어보니 남친이 개쓰레기였다. 그래서 또 욱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그 남친에게 갖은 욕을 퍼 댔다. 그랬더니 여직원이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그리고 내 찰진 욕에 속이 좀 풀렸다고 고맙다고 했다. 난 진짜 열받아서 그런 것인데 상대가 고맙다니, 욕이 필요할 때도 있구나 싶어서 어리둥절했었다. 그러나 그때 딱 한 번뿐. 난 99% 욱해서 망할 뻔하거나 망했다.
오십이 넘은 지금, 회색을 선택한 사람이 비겁하다고 할 수도 없고 나 역시 회색지대에 숱하게 놓였었다는 걸 알지만, 아니 이젠 그게 과연 회색인지 확신이 없어 불안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총천연색으로 사는 것 같아 흑백의 두 가지 색으로 세상을 산 내 삶이 너무 단순무식해서 쪽팔린다. 내 가치관에 비춰 다른 것을 욕한 내 오만을 조석으로 반성하고 살지만, 그게 뾰족한 성격이 무뎌진 것인지, 세상을 보는 눈이 흐리멍텅해 진 건지 몰라서 불안하긴 하다. 혹시라도 내가 욕했던 그들이 이미 산 세상을 이제 내가 시작한 거라면 남들보다 삼십 년은 늦은 거 아닌가? 남들보다 삼십 년 더 산다고 해도 늦깎이 인생 같은 심정은 변치 않을 것 같아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