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이민자, 사회적 계급과 신자유주의 비판에 가장 앞에 선 (내가 아는 한) 가장 '대중적'인 좌파 감독. 그러나 그의 이념과 가치관을 직설적이지 않고 은밀하고 세련되게 드러내는 노련한 감독. 드라마틱한 감동보다 현실적으로 냉정하고 시린 감동을 주는 감독. 그가 살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일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빅맥’ 광고를 찍은 일이라 할 만큼 이념과 가치관이 선명한 감독. 그래서 나는 그를 우아한 좌파 감독이라 칭하고 싶다.
그의 영화 특징은 워낙 많지만 결국 리얼리티인데, 그게 독특한 리얼리티다. 마치 투명카메라로 찍는 듯 배우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아 관객은 주위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특이한 리얼리티다. 그러니 배우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인 데다, 어디까지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배우를 풀어놓은 건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이창동 감독도 한국 리얼리즘의 거장이지만 그의 영화에선 배우의 연기가 연기임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끼게 된다. 말이 나온 김에 이창동 감독 얘기를 좀 하자면, 문소리를 대스타로 만든 영화 ‘오아시스’ 촬영 때 최영택 카메라 감독에게 특별히 주문을 했단다. 프레임을 느끼지 못하게 찍어달라고. 영상이 물리적으로 사각의 프레임인데 무슨 엉뚱한 주문인지 카메라 감독이 무지 고민했단다. 그래서 일단 핸드헬드 (들고 찍기)로 찍기로 하고 인물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디렉팅 하지 않고 자유롭게 두었단다. 이창동 감독이 원한 건 액자 속에 그려진 인물이 아닌 그저 관객의 시선에 잡히는 인물들이었는데, 몇몇 조연들의 연기 같은 연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만 했다고 본다.
그러나 켄 로치는 리얼리즘에서 카메라 기법보다 중요한 건 연기 같지 않은 연기와 만들어지지 않은 듯한 상황 연출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양반은 컷의 길이나 미장센 같은 세밀함에선 떨어져 때론 장면이 투박해 보이나 경륜으로 볼 때 어쩌면 그 따위는 신경 안 쓴다는 배짱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쨌든 관객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목도하는 듯한 연출은 계산된 치밀함인지 아니면 상황만 주고 배우들을 풀어놓는 건지 늘 궁금증을 자아낸다.
보통의 극영화는 커다란 사건을 기둥으로 관계된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서사를 가능한 복잡하게 엮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 영화일수록 짜임새가 중요하다. 그에 비해 켄로치 영화는 한 인물이 처한 경제, 사회적 위기만 설정한 후 그 인물이 겪는 고통을 직렬로 놓고 단선적 구성으로 이야기한다. 얼핏 보면 인물도 평범하고 플롯도 단순하니 이야기가 빈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인물이 가지는 캐릭터도 특별할 것 없이 내 주위에서 쉽게 볼만할 정도로 평범한 데다 우리가 처한 현실과 영화 속 상황이 다르지 않으니 판타지를 느낄 틈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영화적 재미가 떨어질 텐데 켄 로치에게는 그런 평범한 주인공에만 집중하고도 극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특이한 재능이 있다. 나중엔 인물의 됨됨이와 별개로 그 인물을 응원하게 만드는 재능까지 있다. 그것이 '연대'를 강조하는 감독의 숨겨진 메시지라면 대성공인 것이다.
또 그는 이야기를 돌리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투박하지만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그 힘이 원체 강해서 평면적 플롯이어도 지루하지 않다. 말이 쉽지 이건 사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본을 업고 상업 영화를 만들면 장르적 공식에만 충실해도 기본 빵은 하게 마련이다. 시나리오의 부실함을 유명 배우나 CG 등 볼거리로 때우고 웃음, 슬픔 감동 등 트렌드 코드만 잘 설치해 흥행하는 영화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대개 저예산 영화고 더구나 시나리오도 줄거리만 보자면 단편 영화 같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낯선 배우로 러닝타임 내내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비결이 뭘까 늘 궁금했다. 아직 영화 연출에 대해 미천한 나는 그건 혹시 매장면마다 인간에 대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어서 아닐까 추측할 뿐 그만의 다른 비결은 알 도리가 없다. 한마디로 휴먼 리얼리즘? (이거 말이 되나?) 여하간, 주연배우들 누구도 연기가 연기 같지 않다.
예컨대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다니엘이 케이티와 처음 만난 후 그녀의 집으로 가는 씬에서 케이티의 아들이 빈 카트를 몰고 따라가다 엄마의 재촉에 카트를 냅다 버리고 뛰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카트가 의외로 큰 소리를 내며 자빠지자 아들이 입을 막으며 익살을 부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유심히 보면 절대 연출할 수 없는 표정과 행동이다. 그런 ‘순간 포착’ 같은 장면들이 그의 모든 영화 전반에 깔려 있고 그런 장면에서 묘한 푸근함을 느끼게 된다. 홍상수 영화에서 배우들이 쪽 대본으로 즉흥 연기하는 것과는 다른, 그의 특이한 '연출 아닌 연출'이 주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모든 영화에서 느낄 수 있다.
아래는 내가 본 그의 영화들 특징을 감히 내 맘대로 해석하고 추천하는 영화다.
'자유로운 세계"
내가 본 켄 로치 영화 중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싱글 맘이자 부당해고까지 당한 여주는 돈을 벌기 위해 불법과 비양심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 대찬 여성으로 그려진다. (감독의 다른 영화에선 없는 범죄와 배신도 등장한다.) 자신도 비정규직에서 쫓겨 난 신세지만 자신보다 더 열악한 이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게 밉지 않다.
'빵과 장미'
켄 로치식 코미디.
불법체류자인 여주가 열혈 인권 운동가 남주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는 코믹하고 유쾌한 영환데 결말만큼은 먹먹하다.
'보리밭은 흔드는 바람'
켄 로치식 블록버스터.
그에게 첫 번째 황금 종려상을 안긴 영화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 중 형제의 갈등을 묵직하게 그려냈다.
'지미스 홀'
켄 로치식 로맨스.
역시 아일랜드 독립 직후의 역사를 배경으로 ‘지미 그랄튼’이란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환데, 인물 개인의 서사이다 보니 로맨스가 등장한다. 영화 속 그의 연설이 기억이 남는다.
"우리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 탐욕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일해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버티는 게 아니라 노래하고 춤추며 축배를 들기 위해 살아야 한다."
백수시절 내게 큰 위안을 줬던 대사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국의 복지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한 명작.
평생 목수로 일하며 성실히 살아온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실업급여를 받으러 관공서를 찾게 되고 이후에도 정부의 탁상행정에 대항해 싸우며 구직센터 상담 시간에 고작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복지 제재 대상이 되어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된 케이티를 만나 서로 보살피게 된다는 휴먼 드라마다.
대단한 사건이나 극화된 인물이 없는데도 세 번 이상 보고도 질리지 않은 영화다. 역시, 작위적이지 않은 덤덤한 연출이 주는 묵직함 때문이겠다. (감독이 이 영화 전 은퇴를 선언해서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더니 영국 보수당이 재집권해 복지를 줄이겠다고 하자 다시 복귀해서 하마터면 그때 보수당 만세를 부를 뻔했었다.).
켄 로치에게 두 번째 황금 종려상을 안긴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실업에 대한 정부의 허점투성이 복지 정책을 비판하지만 끝내 자존감을 지키기로 한 주인공 다니엘로 마무리함으로써 노동문제가 돈만의 문제가 아닌 인간 존엄에 관한 문제임을 지적한다. (몇 년 전까지 쌍용차 사태 후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그들을 비판하는 일부 키보드 이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느꼈지만, 속 터지는 탁상행정, 울화통 터지게 융통성 없는 공무원들을 보자니 뚜껑 열리고, 복잡한 복지 구조 때문에 스스로 가난과 질병을 증명해야 하는 주인공들을 보자니 안타까워 혈압 오르는 영화였다. 그보다 더한 한국에 사는 내가 영국을 뭐라 할 처지가 아니지만, 혜택이란 단어도 웃기고 알량한 수당이라는 걸 받으려면 수치와 모멸을 지불해야 하는 행정을 복지라 부르니 참.. 그나마 다니엘과 케이티가 서로 보살피는 장면에서나 조금 숨이 쉬어졌었다.
이 영화처럼 시작하자마자 인물에 빠진 영화도 흔치 않다. 여기서 다니엘은 꼬장꼬장하고 까칠한 노인네로 설정됐다. (탁월한 설정이라 본다. 대부분이 국가나 행정제도 앞에선 무기력하니까. 성깔이라도 있어야 지랄이라도 하지.) 그래서 캐릭터가 살아 움직인다. 그가 절망할 때는 수당이 끊겼을 때나 돈이 없어 살림살이를 팔 때가 아니다. 그때도 까칠한 성격대로 굳건해 보인다. 그가 눈물을 보인 때는 살길이 막막해 성매매 업소 여인이 된 케이티를 찾아가 만났을 때다. 그만큼 이타적인 사람이다. 그는 결국 자신의 실업수당은 포기해도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질병수당 제도에 대해 항고를 한다.
나도 다들처럼 케이티가 푸드뱅크에서 식료품을 담던 중 아이들에게 먹일 통조림을 그 자리에서 바로 뜯어먹다 자괴감에 빠져 슬피 우는 장면에서 울컥했지만 개인적으로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엄마를 생각하는 갸륵한 딸아이의 베드씬(?) 장면이 영화 ‘아이 엠 샘’에서 지적 장애를 앓는 아빠를 위해 어른스러운 가식을 펼치는 루시 (다코다 패닝)에게 울컥한 것처럼 커다란 연민을 느끼게 한다. 또, 그 아이가 다니엘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돕고 싶다는 순수를 좁은 우편함으로 비추자 다니엘이 물리치지 못하고 큰 문을 열고 미안해하는 장면도 굉장히 상징적이고 짠하다.
감히 추측컨대, 이 영화가 주는 주된 감동은 통쾌함이 아닌가 싶다. 다니엘은 결국 유서가 됐지만 항고문으로 쓴 글에서 '가난했지만 성실했고 그 무엇도 아닌 오롯이 존엄한 인간임을 인식하라'고 정부에 통렬히 외친다. 그런 그의 호소가 영화 전반의 소소한 사건의 의미를 단숨에 통합하는 효과적 메시지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뻥 뚫린 슬픔을 느끼고 각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센터에서 케이티가 조금 지각했다고 되돌려 보내지는 장면에서 다니엘이 욱하고 나설 때도 통쾌했다. 무엇보다 벽 글씨 장면에서 느꼈던 통쾌함은 흔한 영화에서 주인공의 복수에 느끼는 통쾌함과 결이 다르다. 그러 장면에서 통쾌함이 느껴지는 건 우리 모두 점점 개인화되어 살지만 사실은 공동체와 연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자세히 보면 다니엘이 벽에 그래피티를 할 때 주위에서 환호하는 건 명찰을 단 직원들과 흑인들, 행사 도우미들 등 그와 비슷한 부류의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끈끈한 유대감이 부러웠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그 장면은 그의 낙서에 동조하던 실업자의 말대로 '우라지게' 멋졌다. 전반부의 울화를 후반부에서 달래줬달까?
아무튼 켄 로치 감독. 제발 은퇴 말고 오래오래 우라지게 멋진 영화 계속 만들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