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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22. 2021

촬영 동네

1화- 네모의 세상

-가상 사례- 

A는 카메라를 배우고 싶었다. 

자기만의 색깔과 구도로 표현하는 뮤직비디오 촬영 감독이나 비디오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유명하다는 아카데미에서 6개월의 속성 과정을 거쳐 교수의 추천서를 들고 입사한 프로덕션에서 3개월째 촬영 조수 노릇만 하고 있다. 입사 후 언제쯤이면 정식 카메라맨이 된다는 규정도 없다. 애초에 영원한 ‘시다바리’를 구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B도 같은 처지였다. B는 방송 제작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 촬영 과정을 배웠다.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실습 성적도 가장 좋았다. 그런데 입사한 외주 제작사에선 반년이 지나도록 입봉을 시켜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빨리 카메라를 잡고 내 맘대로 찍고 싶어 자꾸만 안달이 났다. 차라리 퇴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 더 빨리 

입봉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결국, 성화에 못 이긴 둘의 사수는 시험적으로 카메라를 맡긴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카메라가 쥐어지던 날,      


A는 쥐어만 주면 누구보다 잘 찍으리라는 자신감과는 딴판으로 카메라를 들고 우왕좌왕하며 시간만 보낸다. 

원하는 구도가 안 나와 카메라를 이리저리 옮기며 ZOOM 기능까지 동원해 애써 보지만 프레임 안의 피사체가 왠지 어색하다. 인물은 왠지 불안해 보이고 화면 ‘때깔’도 원하는 색이 아니다. 어디서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니 더 답답하다. 한심한 듯 바라보는 사수의 눈빛이 따가워 어쩔 줄 모르겠다.      


B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했다. 시간은 빠듯한데 인터뷰이는 자꾸만 NG를 냈다. 설상가상 자동차 경적부터 헬기 소리까지 주변 소음이 비집고 들어와 그나마 건질 수 있는 컷도 망쳐 놨다. 인터뷰이는 자꾸만 시계를 본다. 조급해진 B는 하는 수 없이 편집 때 NG 부분을 잘라내기로 하고 Head Room, Nose room도 고려해서 Full Shot, Bust Shot 등, 아카데미에서 배운 모든 구도를 동원해 찍었다. 불안한 마음에 되도록 많이 찍었건만, 결국 그날 밤 편집 실장한테 박 터지게 깨졌다. 워낙 많이 찍어놔서 OK 컷을 고르느라 꼬박 밤을 새야 했고, OK 컷도 오디오에 맞게 잘라 붙이니 점프 컷이 난무하는 데다 막상 쓸 만한 그림은 오디오가 안 맞았다. 그렇다고 점프 컷을 커버할 인서트 그림도 없었다. 그림은 많았지만 정작 쓸 수 있는 그림은 없는 것이다. 

편집실장은 한심한 눈으로 질타했다.      

“NG가 많이 나면 씬을 분할했어야지.”      


     



제대 직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군대 고참 덕분에 우연히 프로덕션에 입사한 내가 세 달 만에 테스트도 없이 카메라 입봉을 하게 된 것도 역시 우연이었다.     


프로덕션이란 곳에서 밑바닥 생활을 한 달쯤 했을 때였다. 

어느 날, 호출을 받고 들어간 사장실엔 사장님과 선배가 모니터를 보며 뭔가 수군덕대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엔 그동안 내가 연습용으로 지급된 8미리 홈 비디오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내 은밀한 일기장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영상들은 주말마다 대학로나 비교적 번화한 지하철 역사를 돌아다니면서 버스킹이나 교회 홍보 공연 등을 찍은 것이었다. ‘교회 오빠’ 밴드에게는 커피와 간식까지 능청스럽게 받아먹고는 성가곡도 흥에 겨워 마음 동하는 대로 카메라를 마구 휘두른, 일종의 변태적 객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어디서 벌써 카메라 장난질이냐’는 호통이 두려워 쥐구멍만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말없이 영상을 끝까지 보신 사장님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매우 인자한 얼굴로 대뜸 말씀하셨다.      


“너 입봉 해라.”      


대학 전공은커녕 (당시에 막 생기던) 방송 아카데미 근처도 못 가본 나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선배의 방송용 카메라를 짊어지고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시다바리였을 뿐, 현장에선 감히 카메라 뷰 파인더조차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그런데 나더러 입봉 하라니. 

사장님이 어제 드신 술이 덜 깨 큰 실수를 하신 것 같았다. 

그저 여느 아마추어들처럼 홈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마음에 든 피사체에 무작정 렌즈를 들이댄 것이 전부인 ‘야매’ 촬영이었는데 뭘 보고 저런 턱없는 소리를 하신 걸까. 이게 뭘까? 무슨 상황일까?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중학생 시절부터 줄곧 영화광으로 산 내 편향된 취미가 엉뚱한 보상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었다. 늘 보던 영화 속 정형화된 구도와 때론 파괴적인 구도들이 내 무의식에 스며들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입봉 작이 하필 다큐멘터리여서 그날 밤 편집실에서 대박 깨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B의 경우는 내 얘기다. 


영상 바닥에서 카메라 입봉을 하려면 카메라를 다루는 숙련된 기술과 함께 감각, 그리고 현장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시간이 필요하다. 초점거리와 렌즈, 노출의 역학 관계, 카메라 메커니즘과 녹화 원리, 파일 속성 따위에 대한 이론은 책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현장 경험은, 흔한 말로 돈 주고 못 산다. 특히, 화면 구도나 영상문법, 색감 등 보는 이의 시각을 자극하는 요소들은 감각에 의해 늘 파괴되고 실험적 시도 속에서 다시 창조되는 것이라서 그저 배운다고 될 게 아니다. 그래서 보통 업계에서는 경력자가 아니면 소위 감각과 열정을 먼저 본다. 그러니 감각이 있다면 벌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고 부족한 기술은 열정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메우는 것이다. 그래서 남이 만든 영상을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많이 느껴야 한다. 구도와 감각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다. 


A의 경우, 본인이 구현하고자 하는 그림이 있다면 먼저 카메라라는 기계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렌즈 특성, 조명과 노출, 미장센(화면 안에 시각적 요소들을 배치하는 것), 구도 등 화면을 만드는 구성 요소들을 먼저 배웠어야 했다. 그것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는지를 배우고 난 뒤 그 요소들을 사각의 프레임 안에 원하는 모습으로 구현할 할 때 비로소 자신만의 네모의 세상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런 건 학교나 아카데미에서 속성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장 스텝들이 협동해 화면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느끼며, 스스로 공부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다. 예컨대, 조수 시절에는 현장에서 조명 감독이 어떤 빛을 이용해 어떤 화면 ‘때깔’을 내는지, 피사체에 어떤 생명력을 부여하는지 등을 어깨너머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B의 경우, 다큐 촬영이야말로 직, 간접 경험이 필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이 콘티를 바탕으로 하는 촬영이야 밑그림이 미리 나와 있으니 내가 찍을 장면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나 있다. 그 외 연출 촬영도 카메라 NG가 나면 OK 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찍으면 된다. 그 시간 동안 PD의 짜증과 스텝들의 비난의 눈초리만 꾸역꾸역 삼키면 된다. 막 입봉 한 카메라 감독이라는 어드밴티지까지 계산하면 입봉에선 가장 이상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다큐는 전혀 다르다. 방향을 제시하는 큰 틀에서의 대본이 있지만, 그 대본은 촬영에 컨셉과 대략의 윤곽만 전달할 뿐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세부 내용이 얼마든지 바뀌기도 하고 아예 다시 만들어지기도 한다. 촬영 큐시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PD는 대략의 윤곽만 지휘하기 때문에 카메라맨은 알아서 대상을 찾아서 찍어야 하며 기민한 상황판단도 필요하다. 한쪽 눈은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쫒음과 동시에 다른 한쪽 눈은 시야 내의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머리로는 이후 펼쳐질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 그런 긴박한 현장에서 편집 때 필요한 대체 컷들까지 적절히 챙기는 노련함을 부리는 것은 초짜가 모든 잠재력을 끌어 모으고 우주의 기운까지 쓸어 모아도 될 일이 아니다. 오직 촬영 조수로서 경험을 익히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영상 바닥이 대부분 도제 시스템으로 돌아가니 카메라 조수 역할 말고도 커피 심부름이며 운전 등 궂은일을 도맡아야 하는 설움이 있지만, 욕심낸다고 바로 감독 호칭을 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촬영의 속성을 이해하고 현장을 익히며 대처 노하우를 전수받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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