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좋자고 하는 썸머캠프 레슨 기록. 워낙 쏜살같이 지나갔는데 학기 중에는 이렇게 밀도 높게 수업을 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대충 뭐 했는지 남겨놓고 싶다. 나중에 다시 보고 아이디어 좀 얻게. 이번 ESL 썸머캠프에선 하루에 총 네 그룹 가르쳤다. Lower 1 (알파벳 헷갈림), Upper 1 (단어 몇 개로 소통 가능), Level 2 (꽤 많은 도움 필요), Level 3 (일상생활에 별로 문제없지만 아카데믹한 언어를 정확하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데에 많은 도움 필요). 학년은 새 학기에 6학년 되는 5학년부터 12학년까지. 맡은 과목은 English language/speaking이었고 나 외에 읽기, 수학, 사회와 글쓰기, 기타 스페셜 (Social Emotional Learning, 미술, 체육 등 요일에 따라서) 수업이 진행되었음. 썸머캠프 테마는 20일의 세계일주.
개인 사정으로 둘째 날부터 출근했고 첫 수업엔 레벨 상관없이 자기소개하고 교실에서 지켜야 하는 사항들 전달하고 Find Someone Who 빙고 했다. 자기소개할 때 "I'm multilingual. What's your superpower?" 구절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이게 무슨 뜻이게? 묻고, multi-와 lingual의 뜻을 풀이하고,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내가 자기들 언어인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고 하면 대부분 무척 반갑고 신나 하고 ("스페인어로 인사해 봐요!") 한국어 얘기가 나오면 질문이 쏟아지고 ("근데 중국어랑 달라요? 선생님 집에선 한국어 써요 영어 써요? 한국어로 '안녕!'을 뭐라고 해요?") 중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 중국어를 할 수 있다고 하면 여러 가지 궁금증이 해소되며 ("중국이랑 한국이랑 다른 나라였어! 맙소사!")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며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고 얘기하며 공감대를 쌓는다 ("얘들아, 영어 너무 어렵지! 문법 미쳤지!"). 그러나 여러 가지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초능력이며, 이로 인해 나는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도 할 수 있고 더 많은 영화와 책을 볼 수도 있으며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얘기한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가족 따라 미국에 와, 혹은 태어나보니 집에서 쓰는 언어와 학교에서 쓰는 언어가 달라 영어 모국어 화자인 또래에 비해 영어가 부족하다는 꼬리표가 붙기 쉽고 스스로도 그걸 단점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아이들에겐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이 자주 필요하다. 돌아가면서 이름, 학년, 구사하는 언어, 문화적 배경과 함께 너의 슈퍼파워가 뭔지도 얘기해 보라고 하면 아주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축구를 잘한다거나, 스페인어와 영어를 둘 다 할 줄 알아서 엄마를 도와줄 수 있다거나, 기타를 배우고 있다거나. 심심치 않게 나는 아직 슈퍼파워가 없다, 또는 모르겠다는 대답이 나오는데 상관없다. "슈퍼파워를 다 똑같은 시기에 찾는 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해. 앞으로 생각해 보자!" 하고 넘어가니까. 그러곤 Find Someone Who 빙고 템플렛 나눠주고 애들 풀어놓으면 알아서 즐거워함. Find Someone Who 빙고는 각 칸에 "Find someone who likes ice cream"같은 제시문이 적혀있는데 해당하는 사람을 찾으면 밑에 이름을 적게 하고 기본 룰은 빙고와 같다. 아주 좋아하는 Speaking 연습 툴이지만 첫날이고 애들끼리 친해지는 게 먼저이기 때문에 따로 Sentence frame 등의 영어 말하기 가이드는 주지 않았고 스페인어로 소통해도 놔둠.
둘째 날 Upper 1은 There is.../There are... 을 연습했는데 준비시간도 부족했고 원래 근무하는 건물이 아니다 보니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많아서 상당히 흐지부지 아쉬웠다. Lower 1은 나라이름과 "My name is.... I am from..."을 엮어서 배웠다. Hot Onion 또한 내가 좋아하는 활동. 길게 자른 종이에 나라 이름을 쓴 뒤 똘똘 뭉치면 이것이 양파다. 이 양파는 매우 뜨겁기 때문에 내가 다음 사람에게 신속히 던질 것인데, 양파를 받은 사람은 껍질을 하나 벗겨 안에 적힌 단어를 넣어 배운 구문을 말한다. 그다음 다른 사람에게 또 토스. 이날 이걸 하고 주 후반에는 Where are you from? 과 국적표현 (예시- I'm from Mexico. I'm Mexican.)도 함께 배운 뒤 더해서 게임함.
같은 날 레벨 2와 3 수업은 완전 망했다. 엉망진창이었다. 말하기 수업을 하기에 조금 어려운 조건과 성향적 조합이었고... 나는 아직 애들 성향 파악이 덜돼서 준비해 간 활동 자체가 이 순간 이 아이들과 하기에 썩 좋지 않았음. 근데 또 하필! 이 순간에! 위에서 참관을 나왔네! 뭐 공식적인 참관은 아니고 그냥 썸머캠프 어떻게 되어가나 보러 나온 거라곤 하지만 이 어색한 분위기에 들어오셔선 뒷자리에 앉아있는데 정말 세상에서 제일 긴 50분이었다. 나중에 다른 반 선생님들한테 물어보니 거기도 분위기는 비슷했는데 과목 특성상 말하기가 덜 필요해서 글을 쓰거나 수학 문제를 풀거나 하면 됐기에 나보단 좀 나았다고 한다... 이 짧은 시간에 얘네들의 Comfort level을 어떻게 높일까가 나의 주된 고민이었음.
레벨 3도 조금 더 난이도 있는 텍스트로 대체했을 뿐 똑같은 활동이었는데 여긴 정반대의 이유로 망했다. 장난기도 제일 많고 에너지 레벨도 제일 높고 같은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많아 자기들끼리도 제일 친하고. 근데 인원도 여기가 제일 많고 영어도 제일 잘함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음). 다시 말하지만 나도 아직 아이들 성향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고... 여기는 활동에 내 개입이 좀 더 있었어야 했음. 너무 자율적인 활동을 했더니... 썸머캠프 내내 레벨 3 수업 참 재미있긴 했는데 하고 나면 기가 쪽쪽 빨려서 허기가졌다.
둘째 주의 테마는 음식이었다. 20일의 세계일주 테마에 맞춰서 세계의 음식들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Lower 1의 언어학습 목표는 "I like... I don't like..." 말하기였고 교과학습 목표는 음식 관련 단어를 말하기. Upper 1과 레벨 2의 언어학습 목표는 요청하기 (Can I get...? 등)였고 교과학습 목표는 역시 음식 관련 단어를 말하기. 지금 레슨플랜 다시 보니 레벨 3의 언어학습 목표는 추천하는 말하기이고 교과학습 목표는 세계의 음식들을 둘러본 후 친구에게 한 가지를 추천하고 이유를 말할 수 있다 (reasoning)...인데 이걸 한 기억이 없다. 어딘가 또 망해서 계획이 틀어졌던 것 같은데 왜 안 했고 뭘 대신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레벨 1들과는 음식 어휘를 배우기 위해 픽셔너리 게임 했다. 피피티로 음식 이름 배워봤자 그걸 곧바로 기억해서 게임할 때 말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Word bank (이거 한국어로 뭐라고 하나요, 단어주머니? 예시 단어?)가 필요했고 쓰기 연습을 곁들일 겸 직접 만들기로 한다. 종이 한 장씩 나눠주고 길게 반으로 접은 뒤 한쪽엔 영어, 한쪽엔 스페인어라고 제목을 쓴다. 단어 하나 배울 때마다 해당 단어를 쓴 뒤 옆에 스페인어 번역을 적는다. 플래시카드에 사진이 있으니 보통은 사진만 보고도 스페인어로 말할 수 있었고 애매한 경우 내가 알려줬다. 이러려고 스페인어 배웠지, 뭐... 그렇게 한 스무 개 배웠나. 그 종이를 레퍼런스 삼아 들고 한 명씩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오게 함. 해당 학생에게만 플래시카드를 보여주면 그 학생이 칠판에 그리고 나머지가 맞춰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여러 연습이 동반된다. 일단 내가 보여주는 제시어에는 더 이상 사진이 없기 때문에 그리는 아이는 영어단어를 보고 그게 뭔지 알아야 함. 모르면 아까 쓴 리스트에서 찾아야 함. 사과, 오렌지 이런 거 솔직히 그림으로 그리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내가 가끔 추가질문 ("What color is it?" 등)을 물을 때가 있고 해당 단어를 영어로 말(하도록 유도당)해야 함. 맞추는 아이들에겐 맞출 때마다 사탕 하나씩 던져줬고 아주 경쟁 과열되고 재미있었다. 주 후반에는 Class survey 했다. 구문 (I like... I don't like... Do you like...? Yes/No, I do/don't.)도 배웠겠다 음식 어휘도 배웠겠다, 템플렛 나눠주고 돌아다니면서 친구에게 템플렛에 적힌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이름과 답변을 기록하도록 하는 활동. 별거 아닌데 재밌어해서 나도 재밌었음.
Upper 1이랑 레벨 2는 주 후반엔 롤플레이했다. 미리 템플렛 나눠줬고, 웨이터랑 손님 역할 정한 다음에 그룹을 나눠서 '식당'에 방문했다. 웨이터는 손님을 맞고 메뉴판을 주고 (이것도 내가 따로 프린트해 감) 주문을 받아야 한다. 손님은 메뉴판을 읽고 먹고 싶은 음식과 그 개수를 이야기해야 한다. 웨이터는 내가 받은 주문을, 손님은 내가 시킨 음식을 본인의 활동지에 기록해야 한다. 역할과 메뉴 바꿔가면서 몇 번 했는데 재밌었다. 이런 거 하기에 애들 나이가 좀 많은가 (10학년도 있었음) 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진짜처럼'하는 데 진심이었고... 나중에는 '식당'에 같이 방문한 친구들과 나눠먹을 디저트를 상의하기까지 했음. 메뉴판에 처음 보는 단어들도 종종 있어서 중간중간 큰 화면에 구글 이미지검색 해주면서 진행했다.
일요일에 아버지의 날이 껴있어서 테마는 가족으로 정했다. 해당 테마 안에서 Lower 1은 Can/Can't와 Action verbs를, Upper 1과 레벨 2는 현재진행형을, 레벨 3는 비교/대조하여 말하기를 할 생각이었다.
레벨 1은 엔칸토에 나온 The Family Madrigal 보면서 가족 어휘 배웠는데, 그동안 항상 먹히던 거라서 잘될 줄 알았더니 이걸 쓰기에 애들 학년이 너무 높았던 것 같음. 생각보다 재미없어해서 속상했네. 아무튼 기본적인 가족 관련 단어 배우고 마드리갈 가족 가계도 완성하기 했다. 이번주 레벨 1의 궁극적 목표는 가족이 뭔가 하고 있는 그림을 보고 Action verbs와 Can/can't 사용하여 묘사하기(Father can sing.)여서 Action verbs 하면서는 몸으로 말해요 게임했고 다들 많이 웃었다.
레벨 2와 3은 본격 언어연습 (현재진행형 및 비교/대조하는 말하기)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의 날을 맞아 가족(같은 사람)에게 영상편지 쓰기를 먼저 했다. 어제가 무슨 날이었게? 아버지의 날! 어떤 걸 기념하는 날이지?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날이 있을까? 선생님 나라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로따로 기념하지 않고 일 년에 한 번 어버이의 날이 있어. 그런데 꼭 아버지만 기념해야 하는 건 아니야! 아버지 같은 사람(Father-like figure)을 생각해도 좋고 가족이나 가족과 다름없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날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영상편지를 쓸 건데, 아빠한테 쓰고 싶은 사람은 아빠한테 쓰고, 아니면 다른 소중한 사람에게 써도 좋아.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친한 친구, 친한 이웃, 선생님, 아무나 좋아. 이렇게 빌드업해놓고 예시 영상 하나 본 후 미리 작성한 편지 템플렛 나눠줬다. 내가 Sentence frame을 미리 적어놔서 "One thing I like about you is ______________" 같은 것에 빈칸만 채우면 됐다. 그리고 크롬북 카메라를 사용해 영상을 찍었고 나에게 이메일로 제출하게 함. 아빠한테 쓴 아이들도 있었고 친구나 반려견에게 쓴 아이들도 있었고 나에게 쓴 영상편지도 몇 개 받았다. 어째서 내 앞으로 온 영상편지는 죄다 "Ms. Kim, you're sometimes angry but"으로 시작하는지...? 내가 뭘 또 언제 화를 냈어 얘들아...
젠가를 한 것도 3주 차였구나. 젠가 역시 나의 최애 활동 중에 하난데, 젠가에 미리 번호만 매겨놓으면 아무 데나 활용할 수 있는 마법의 젠가가 되기 때문! 전날 FiveBelow 가서 5달러짜리 젠가 세 개 사다가 블록마다 번호를 매겨놨다. 그리고 번호판은 세 종류 만들었다. 레벨 1은 Can/Can't, 레벨 2는 현재진행형, 레벨 3는 비교/대조하여 말하기. 젠가를 하나 뽑아 번호를 확인하고 해당 번호의 지시문에 따른 뒤 위에 쌓는 방식이다. 레벨 1의 지시문으로는 He / Not / Swim 같은 게 있고 플레이어는 "He cannot swim'을 말해야 했다. 레벨 2도 지시문은 같았는데 해당 지시문을 현재진행형으로 말해야 했다. 레벨 3 지시문으로는 "Ronaldo and Messi. How are they different?" 같은 게 있었는데 호날두 vs 메시는 이 아이들의 영원한 논쟁거리이므로 열띤 토론으로 번지곤 한다. 다만 대답할 때에 배운 구문을 이용해야 한다. "Unlike Messi, Ronaldo is..." 혹은 "Ronaldo is.... However, Messi...." 같은 식이다. 젠가는 언제나 반응이 좋은데 다들 너무 즐거워한 나머지 나중에 옆반에 가서 혹시 우리가 너무 시끄럽진 않았는지 사과해야 했다.
...는 수업을 안 했다. 썸머캠프 마무리 평가가 있어서 그거 시험 치고 애들 데리고 현장학습 하루 다녀오고 뒷정리하고 애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나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