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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Sep 07. 2020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한 번에 몰아 쓰려니 쓰고픈 게 너무 많아 손가락이 갈 곳을 잃었다

월기도 아니고, 주기도 아닌 왜 일기여야 하는지 잘 알겠다.

매일 쓰라는 것이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감당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키는 때에 글을 쓰려니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의 일들이 머릿속에 동시에 두서없이 떠다니고 난 그중 어떤 걸 골라 잡아 써야 할지 너무 난감하다. 

글감이 많아서 고민이다. 추려봐도 서너 꼭지는 나올 것 같다. 


쓰고 싶지도, 읽고 싶지도 않았던 요즘이었다. 약간 삐져있었다. 일을 너무 많이 했는데 정말 눈을 뜨자마자 일을 시작해서 자기 2시간 전까지 아주 늦게 까지도 계속 일을 했다. 창문 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경이었다. 재택근무도 간간히 했지만 집에서 여유 있게 뭘 차려먹을 수 없었고 1분 단위까지 계산해 휴식과 화장실, 식사를 어레인 지하며 배달 음식만 주야장천 먹었다.  영혼이 고갈되고 몸뚱이는 신음했다. 가장 돌아버릴 거 같았던 지점은 전 지구적 대역병 덕분에 언감생심 사표조차 꿈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1n연차 피고용인으로 살면서 몇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걸 극복하고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에너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사표라는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에라이, 계속 이따위면 내가 나가고 말지. 뭐 어디 나 받아주는 곳 또 없겠냐" 하면서 적당히 일에 거리도 두고 초연해질 수 있었던 건데 이젠 그 카드가 나에겐 없다. 나 받아줄 곳은 없을 것 같다. 있어도 아주 열악한 곳에서 많은 걸 타협해야 하는 자리만 있을 것 같다. 그런 직감이 들어서 고용주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해내야만 했다. 


믹스커피 기본 3잔 마시는 건 예사고, 그러고도 또 아아를 사 마시고, 그래도 버티기 힘들어 잠 쫓는 사탕과 껌도 씹어보고, 나름 마인드 컨트롤하겠답시고 업무 중간 틈틈이 스트레칭도 했었는데 말이지. 그 모든 발악이 내가 고통을 버티려고 몸부림치던 것이었다. 피곤해서 마신 커피가 아니라, 카페인 약발로 어떻게든 디지고 싶은 처참함을 고양시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이제야 그 몇 주간의 미친듯한 노동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는 이미 오래전 끝났지만, 그 여파에서 온전히 회복하여 복기할 수 있게 되기까지 몇 주가 필요했고 난 그 회복과정 중에도 많은 일을 쳐내야 했다. 이 망할 역병은 왜 돌게 되어 모두를 고통 속에 빠뜨렸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정말 사악하다. 코로나라는 말을 쓰고 싶지도 않다. 이 상황은 그런 고상한 말로 표현이 안된다. 마치 역사책에서 보았던 그 느낌으로 "역병이 돌아 2020년 인류는 고통과 불행 속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텼다"라고 기술해야 한다. 코로나라는 말보다 역병이 더 직접적이고 어두우며 죽음과 가깝게 들린다. 내 기분은 이 사태를 코비드-19보단 그냥 역병으로 부르고 싶다. 역병. 역병. 우라질 역병.


모르겠다.

어쨌든 어떻게 될지 몰라도 난 버티고 있다. 

제 명을 다 해야지 않겠는가. 내게 주어진 세상인데, 비겁하게 도망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쓰면서도 진짜 한심스럽다. 결국 살겠다는 마음을 먹는 이 비관의 가면을 쓴 긍정형 인간은 도대체 누구인가? 모르겠다. 일은 어쨌든 다시 안정적이고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되돌아왔고 세상은 돌아가고 나는 살아있다. 산다. 그냥 어쨌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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