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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Aug 05. 2017

나폴레옹의 유배지 엘바섬에서 매일 비치 호핑을 떠나다

"음~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들과 달리 현지인들이 가는 곳은 따로 있는데, 당신이라면 아마 여길 더 좋아할 거예요.”

 피렌체에서 묵은 에어비앤비 호스트 크리스티나와는 유난히 호흡이 잘 맞았다. 매일 아침식사 테이블에 앉아 하고 싶은 여행을 이야기하면, 그녀는 열심히 듣다가 장소를 추천해준다. 골목여행을 하고 있으면 크리스티아나가 인터넷 검색과 친구들을 통해 얻은 추천정보를 메신저로 계속 보내준다. 덕분에 피렌체의 숨은 보석 같은 장소도 둘러보고 남아있는 이탈리아 일정을 모두 짤 수 있었다.


“바쁜 도시 일상에서 벗어나 흑백영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가족의 여름 바캉스를 경험해 보고 싶어요.” 그러자 마르코는 시칠리아 섬, 크리스티아나는 투스카니 지역의 섬을 적극 추천한다.


“남부 시칠리아는 밀라노와 피렌체와는 또 다른 이탈리아의 때 묻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요. 순박한 사람들과 약간은 거친 자연을 경험하고 싶다면 단연 시칠리아 섬이죠."(마르코)

시칠리아는 대학시절 친구와 배낭여행을 했던 특별한 추억의 장소라 꽤 먼 거리이긴 한데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 내 마음을 잡아준 건 역시 크리스티아나.


“앞으로 휴가가 일주일 남아있고 마지막으로 밀라노 근처 코모 호수를 가고 싶다면, 피렌체에서 멀지 않은 투스카니 지역 섬으로 가야죠. 피렌체 사람들은 여름철 관광객들이 몰리는 남부보다는 한적한 코르시카 섬 옆 작은 섬들로 가요. 나폴레옹이 유배를 떠난 엘바섬이나 그 옆 더 작은 질리오섬이 좋아요. 지중해 바다는 크리스탈처럼 맑고 아름답고, 피렌체에서 2-3시간이면 충분히 가요.” (크리스티아나)


 ‘현지인들의 여름 휴양지, 아름다운 섬, 짧은 이동시간.’ 역시 크리스티아! 덕분에 바로 엘바섬행 기차를 끊고 에어비앤비 사이트에서 얼마 남지 않은 방을 열심히 검색해 마음에 드는 방을 간신히 예약했다.


“그래. 피렌체 이후 여행을 무계획으로 온 건, 이렇게 현지인의 추천에 따라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여행지로 충동적으로 떠나기 위했던 거잖아.  
No Plan is the Best Plan! Local host is your travel planner!
이제 출발만 하면 된다.”

 아침 일찍 크리스티아나, 마르코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가장 빠른 기차로 엘바섬을 향해 떠났다. 피옴비노항(Piombino)에서 페리를 타고 한 시간 남짓 푸르른 해협을 건너면 저 멀리 섬이 조그맣게 보인다. 사람들이 뱃머리와 선체 난간에 몸을 길게 뻗어 섬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점점 커지는 엘바섬. 하늘만큼 푸르른 바다에 하얀 요트들이 섬 주위를 떠돌며 낚시와 선탠, 바다수영을 한가롭게 즐기는 사람들을 태우고 인사한다.  

 이탈리아에서 3번째로 크고, 투스카니 지역에선 가장 큰 섬인 엘바섬(Isola d’Elba)은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유명하다.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나폴레옹이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는 명언을 남기고 퐁텐블로 조약으로 이 섬에 유배됐다. 수백 명의 호위병을 데리고 섬에 정착한 그는 ‘엘바의 황제'로 불리며 11만 명의 엘바섬 주민들을 다스리며 재기의 기회를 노리다 1815년 300일 만에 섬을 지키던 영국군을 피해 엘바섬을 탈출해 프랑스로 향했다. 엘바섬은 1,019 미터 높이를 가진 아담한 카판네산(Monte Capanne)이 나름 초록빛 산맥을 형성하고 연안을 따라 색 바랜 주홍색 지붕과 황톳빛 벽을 가진 집들이 모여 곳곳에 마을을 만들었다. 항구엔 입항하려는 페리들이 줄을 잇는다.

 요란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입도했다. 구글 검색으로 숙소를 찾아보니,  포르토 페라이오(Portoferraio) 선착장 바로 앞 골목집이다. 항구에 위치해 짐을 놓기 편리하긴 하지만 좀 허름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기우. 눈이 부실 정도로 뜨거운 7월의 태양을 완전히 가려주는 아늑하고 어둑한 실내에 세련된 휴양지 감각의 인테리어와 시원한 에어컨. 더 바랄 게 없다.



 “오느라 고생했어요. 집에 온 걸 환영해요!”

 문을 열어준 짧은 커트머리의 통통한 이탈리아 아줌마 호스트 바바라가 바로 부엌으로 안내한다. 부엌에는 바바라의 남편, 딸, 부모님까지 북적댄다. 모두 가벼운 포옹과 함께 환영하며 방금 어머니 안나가 만든 빵과 쿠키를 어서 들라고 한가득 내놓는다. 그 순간 '아, 정말 집에 왔구나!' 편안함이 몰려온다.


 방금 손님들이 나가서 집안 청소를 마친 바바라와 둘째 딸 멜리사. 점심식사 설거지와 테이블 정리를 하던 남편 안드레아. 딸이 민박집을 한다고 하니, 점심시간 때 맞춰 도와줄 건 없는지 챙겨주려고 들른 부모님 루치아노와 안나는 모두 부엌에 모여 있다.


 ‘이탈리아 가정집에 가면 항상 주방에서 스파게티 소스를 만드는 냄새가 나고, 식구들이 거실 TV 앞이 아니라 식탁에 둘러앉아 엄마가 만든 쿠키와 음식을 먹으며 대화한다고 하던데... 내가 원하던 이탈리아 가정의 모습이다. 아~ 크리스티나 말 듣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에 속으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대충 짐을 내려놓고 바바라, 안드레아와 부엌 옆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엘바섬 지도를 펼쳤다. 엘바섬은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한 76개의 작고 특색이 다른 해변이 있고 여행객들은 취향에 따라 여러 군데를 골라 즐긴다. 두 사람이 베스트 해변가를 알려준다고 앱을 연다. 매일 부는 바람 방향을 고려해서 당일 해수욕하기 가장 좋은 해변을 알려주는 앱이다. 엘바섬엔 자갈 해수욕장이 대부분이다. 안드레아는 섬에서 가장 큰 모래사장 해변, 자연경관이 좋으면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해변가를 추천한다. 바바라는 마지막으로 항구 근처에 현지인들이 주로 가는 해변을 추천한다. 덕분에 매일 아침 비치타월, 자외선 차단제, 큰 생수 한 병을 들고 바바라가 추천해준 오늘의 해변가로 여행을 떠났다.

 

# 마리나 디 캄뽀(Marina di Campo)

 안드레아는 내륙에 가까운 동쪽보다는 바다를 향해 열린 서남쪽 해안가가 더 멋있고 오늘은 마침 남쪽으로 바람이 불어 파도가 적당하니, 엘바섬에서 가장 긴 1.4km 모래사장 해변을 추천했다. 북쪽에 위치한 포르토페라이오에서 버스를 타고 고불고불한 길을 따라 섬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30분을 달리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마리나 디 깜뽀 해변이 나온다.

 해변가를 끝까지 걸어가 보고 머물 비치클럽을 결정하려던 계획은 작열하는 태양에 50미터를 걷지 못하고 포기했다. 가장 핫한 해변인 만큼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사장에 비치 클럽에서 내놓은 각양각색의 파라솔들이 칼라풀하게 펼쳐진다. 파라솔과 비치베드 하나를 렌트해 타월을 깔고 수영복만 입고 눕자 선선한 바람이 온몸에 살랑살랑 기분 좋은 터치를 한다. “쏴아아 아~쏴아아 아" 파도소리가 자장가다. 선베드 옆에는 이탈리아 가족이 자리 잡았다. 모래사장에 형생색색 놀이기구를 펼쳐놓고, 아장아장 걸음을 걷는 아이가 잠시 모래를 파고 놀다 파도에 달려가 발을 닿으면 “꺄아~ 까르르르"소리를 내며 다시 내달려 “마마" 엄마를 찾으며 돌아오길 무한 반복한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탈리아 해수욕장의 주인공은 몸매가 잘빠진 남녀가 아니라 바로 이 천진무구한 아이들이다. 파도소리에 스스륵 잠이 들다 천사 같은 아이들의 즐거운 비명소리에 잠이 깨길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떨어진다.


# 라 비오돌라 (La Biodola)

 둘째 날은 안드레아가 모래사장 해변으로는 가장 아름답다면서 라 비오돌라 해변가를 추천한다. 10명이 타는 미니버스를 타고 10분을 달려 도착했다. 원래는 훨씬 한적하다던데, 7월 말 극성수기에 찾은 덕분에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산에 둘러싸여 800미터 길이의 만이 중간에 바위로 나뉘어 자리 잡고 있다. 생각보다 파도가 세고, 몇 걸음만 들어가면 바다가 금방 깊어진다.


 세련된 리조트형 레스토랑 겸 비치 클럽들 코앞까지 파도가 밀려왔다 내려간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일부러 자리를 잡았다. 작열하는 태양을 가려주는 파라솔 밑에 온몸을 이완시켜 누워있으면, 바닷물이 밀려와서 비치 의자 밑으로 훑고 지나가면서 시원함을 선사한다. 해변가에 누운 게 아니라 발목까지 바다가 닿는 곳에 살짝 몸을 뉘어 파도를 타는 느낌이다. 더위에 지칠만하면 만과 만을 연결하는 좁은 바위 통로에 서 저 멀리 작은 섬을 바라보면, 곧바로 거센 파도가 바위를 쳐대면서 일으키는 물보라에 온몸을 틀면서 가방을 보호한다. 거센 파도소리를 뚫고 그 바위 길목에서 갑작스러운 파도 공격에 당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즐거움을 선사한다. 높은 파도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몇 발자국 들어가지 않아도 작은 나의 키를 훌쩍 파도가 넘실넘실 거리며 오는데, 무릎 반동으로 발만 살짝 띄우면 몸이 파도와 함께 둥실 대며 해안가로 밀려간다. 남녀노소 모두 파도 타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소년들은 팔 안쪽에 서핑보드를 하나씩 들고 밀려오는 파도를 타보겠다고 연신 뒤를 보다가 잠시 서핑보드에 올랐다 곧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모습도 라 비오돌라 해변의 볼거리다.  


# 르 기아이에(Le Ghiaie)

 아쉽지만 엘바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욕심을 버리고 포르토페라이오 마을 중심에 있는 자갈해안을 찾았다. 아침 일찍부터 도르래에 접이 의자, 비치타월, 파라솔, 간식거리를 싣고 걸어가는 주민들을 따라 이백 미터쯤 걸으면 소담한 해변가가 보인다. 관광객들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다. 여기저기 비치의자에 앉아 신문과 잡지를 펼치고 낱말 맞추기 퀴즈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수영복도 입지 않은 벌거벗은 꼬마들은 할아버지 품에 찰싹 안겨 파도 맛을 살짝 맛보며 즐거워한다. 성인 남녀들은 구릿빛 피부를 만들기 위해 선탠에 여념이 없는 데, 잡지책을 읽거나 서로에 몸에 기대 과감하게 얼굴과 몸을 드러내고 잠을 잔다. 얕은 높이의 둑방 바로 뒤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작은 공원과 피자가게가 있다. 배가 고프면 피자를 사와 해변에 앉아 피자를 먹는다. 어깨에 파인애플이 든 바구니를 짊어지고 가는 아저씨가 “주스, 파인애플 주스"를 외치면 현금을 내고 시원한 과일주스를 사마시 기도 한다. 섬을 떠나기 전날 버스 타고 다른 마을까지 갈 필요 없이 포르토페라이오에서 수영을 즐기기엔 충분한 해변가다.  


# 르 비시떼 (Le Visite)

 “포르토페라이오에선 바로 르 비시떼를 가야지"라는 바바라. 항구 오른편 황토색 집들의 구시가지 골목길을 따라 약간의 등반이 필요하다. 언덕너머 절벽 아래 자그마한 만이 보이는데, 당장 뛰어내려 가 바닷속에 뛰어들어가고 싶을 만큼 절경이다. 사람도 거의 없다. Le Visite라 쓰인 나무 표시판 뒤로 갈매기 한 마리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어서 해안가로 내려가라며 길을 안내한다. 절벽으로 내려가는 굽이길을 꺽을때 마다 새롭게 보이는 풍경이 즐겁다.


해변가 절벽 한편에 터를 낸 유일한 비치 클럽에 앉아 아침부터 밤까지 변하는 바다의 풍광과 파도소리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 아니지만, 십여 명의 사람밖에 없는 한적함이 매력적이다. 근데 자갈이 생각보다 굵고 파도가 세서 파도가 쓸려 나갈 때마다 발목에 자갈이 치고 내려가 무척 아프다. 그래서 여기선 모두 아쿠아슈즈를 신고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외딴섬에 밀려와 하루 종일 수영을 하고 그늘 차양막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는 것처럼, 샌들을 신고 파도에 몸을 싣다 지치면 잠시 비치 클럽 그늘에 들어가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먹어본다. 그렇게 매일 아침 새로운 해안가를 찾아 떠난 섬 여행이 끝났다.



바바라와 안드레아의 추천 모래해변 (엘바섬 주요 해변지도):


Capo Bianco - 포르토페라이오 인근의 하얀색 자갈해변.  날카로운 절벽 아래에 자리 잡은 아주 작은 해안가로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아름다운 숨겨진 해안가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싶다면 추천한다.  


Cavoli- 서남쪽에 위치한 작은 모래사장 해변가. 뒤로는 카판네산이 북쪽에서 오는 바람을 막아주다 보니, 언제나 온화한 날씨와 바람이 선탠 하기에 최적이다. 절벽에서 튀어나온 바위에서 그대로 바다로 뛰어내리며 수영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Procchio- 북쪽에 위치한 긴 모래사장 해변가 중 하나다. 황금빛이 도는 고운 모래사장과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수영하기에 더없이 좋다. 특히 수심이 깊지 않아서 좋고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Fetovaia-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서남쪽 200m 길이의 작은 모래 해변가. 사파이어 빛이 나는 맑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바닷물도 차지 않고 수심이 깊지 않아 멀리까지 걸어갈 수 있어 아이들이 놀기에도 적합하다. 유난히 가족들이 많이 찾는 해안가라 작지만 시끌벅적해서 캐러비안 해안가에 온 듯한 즐거움이 공기 중에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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