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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스두어 Apr 13. 2017

살구나무 아래 도심 바비큐 파티

백만 불짜리 저녁 야경을 품은 성곽길 집에서의 일상 일탈.

"카톡"

카카오톡에 앙상한 살구나무에 몽실몽실한 핑크빛 꽃봉오리가 보이는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우와 살구꽃 너무 예쁩니다! 꽃잎 떨어지는 술잔에 술 마시고 싶네요. 바비큐랑."

"그래서 꼬시는 거죠. 그동안 고기 굽는 솜씨도 더 늘었고."


 명륜동 성곽길 꼭대기 집에 살고 계신 멋진 부부를 만났습니다. 산자락에 찰싹 달라붙은 집. 언덕 위에 위치해서 공간은 크지 않지만 나름 4층 집입니다. 4층은 산을 병풍으로 삼고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 낸 살구나무가 멋지게 버티고 있는 도심정원을 품었습니다. '살구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바람이 불면 꽃잎이 술잔에 떨어지는데... 그 맛이 참 좋다'는 이야기에 반해 살구나무에 꽃피면 바비큐 파티를 열자고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친구 생일파티를 겸해 마련한 자리. 몇 주 전과 달리 산엔 봄기운이 완연하네요. 뒷산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이름 모르는 화초들이 여린 속살을 드러내며 울긋불긋 색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야외정원에서 서울 전경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입니다. 이 집의 매력이죠. 컴컴한 밤. 왼쪽으로는 조명이 황금빛 길을 만들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길이 보입니다. 저 멀리 용문산에 위치한 군부대 즈음에서는 횃불처럼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옵니다. 정면으로는 낮은 동네 집들의 옥상을 거쳐 고층빌딩 숲을 지나면 강 건너 뭉툭하니 우뚝 선 롯데월드 건물이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남산타워가 언덕 위 집들에 가려 살짝 보입니다. 어두컴컴한 밤하늘에 뜬 둥근달은 흩뿌려진 구름이 뿌옇게 가리려고 하네요. 어릴 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봤던 TV [전설의 고향]처럼, 평상시와 다른 무언가가 벌어질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일상을 탈출한 이 날의 분위기에 딱 맞는 거지요.

 

 4층 방 CD에 걸어 놓은 레이 찰스의 블루스 음악이 열린 창문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임을 고려해서 이야기는 조근조근 나눕니다. 그런데도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는 어찌해 볼 수가 없네요. 말소리와 음악소리, 고기 타는 소리, 아삭아삭한 김치를 씹는 소리가 어우러집니다. 공중에 메달아 놓은 화로에 숯불이 사그라지면서 나는 연기가 알싸한 공기 중에 피어오르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서울이 아닌 시골 어느 펜션에 온 것만 같습니다. 월요일 저녁 일상의 여유가 꿈만 같습니다.

 

 퇴근 후 한 명씩 등장하는 사람들. 웬만한 건 미리 주문 배달을 했지만 계속 늘어나는 인원에 불발탄과 숯불이 모자라 늦게 오는 사람에게 사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먹다 보니 이번엔 고기가 부족해 더 늦게 오는 사람에게 고기 좀 사 오라고 전화합니다. 처음 찾아가는 동네에서 정육점이 어디 있는지 알 리 없는 친구. 집 근처 식당에 들어가 두꺼운 삼겹살 6인분과 반찬까지 살뜰하게 챙겨 와 큰 박수를 받습니다.


 생일을 맞은 사람, 집주인, 동네 주민, 친구의 친구들. 서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월요일 저녁의 여유로운 일탈을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생일을 핑계로, 살구나무 꽃 핀 걸 핑계로 모였습니다. 좋은 사람들이라 그런 걸까요? 어색함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재미가 모여서 하루가 행복해지는 걸까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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