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허즈번즈>를 읽고
박소해 작가의 <허즈번즈>를 읽었다. 수향이라는 한 여성의 서사가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의 격변기를 거치며 장대하게 펼쳐진다. 해방을 꿈꾸는 수향은 나가스 저택에서 사람과 역사가 주는 고통과 절망을 통과하며 성장해 간다. 난 이 소설을,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주체적인 한 여성이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었다.
적산가옥에서 수향은 많은 사건들을 경험한다. 아기 무당으로 신내림을 받은 수향은 영적 존재와 접선하며 미스터리를 풀기도 하고, 살인과 범죄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끈적하고 설레는 연애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소재, 장르가 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강점기 후반부, 해방 후 혼란기의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다. 역사책엔 단 몇 줄로 기록된 역사를 작가는 고증과 상상을 통해 일상의 풍경을 그려 보여준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황급히 귀국선을 타고 돌아가고,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조선말과 혼란이 채운 장면을 보는 건 흥미진진하다.
"일본인이 빠져나간 자리는 혼돈으로 채워졌다. 이 도시가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곳이었던가. 태평양전쟁으로 묶여 있던 물류가 활발해지면서 시장에는 물자가 넘쳐 났다. 그중에는 조선을 떠나는 일본인들이 저렴하게 내놓은 것들이 많았다. 본토로 귀국할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인들은 먹다 남은 아지노모토(일본 조미료)까지 내다 팔 정도로 극성이었다."
주요 이야기는 나가스 저택 안에서 진행되지만, 작가는 간간이 역사 속 풍경을 스케치하는데 이 풍경이 생생하게 와닿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호러 미스터리물로 남길 바라지 않았던 것 같다. 비범하지 않은 수향의 삶은 굴곡진 한국의 역사를 비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수향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여자였다."
수향은 자신을 억누르던 권위가 사라지자 자유롭고 개방적인 모습을 보인다. 수향이 자신을 재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굴곡진 역사의 흐름과 수향의 성장사가 나란히 이야기를 관통한다.
이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들을 엮어낸 박소해 작가님의 솜씨에 감탄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여명의 눈동자>나 <미스터 선샤인> 같은 미니시리즈를 다 본 기분. 역사의 격랑을 헤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러 장르가 혼재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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