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달래를 캐고 쪽파를 다듬어 집으로 돌아올 참이었다.
거실에 앉아 혼자 화투 놀이를 하시는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저 이제 갈게요!' 인사했다.
'어.... 그래...'
아버지가 나를 보고 아기처럼 웃었다.
좋아하는 술을 이제 입에도 대지 않으신다.
방에서도 피우던 담배도 끊으셨다.
덕분에 아버지 얼굴은 말갛고 환해졌다.
사남매는 이가 약한 아버지를 위해 자주 빵을 산다.
대전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성심당에 들러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을 고른다.
좋아하던 고기도 못 드시게 된 아버지는 우리가 사간 빵을
환하게 웃으며 즐거운 손짓으로 꺼내 드신다.
엄마 말씀으로는 빵을 기다리신다고 한다.
아기같이 웃는 아버지.
나의 사춘기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이른 은퇴를 하셨고, 나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던 때였다. 우리는 늘 부딪혔다.
나의 모든 선택에 아버지는 끊임없이 개입하려 했다.
집을 떠난 후에도 갈등의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고, 본가에 가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갈등이 극에 달했던 어느날, 크게 다투다 아버지가 넘어져 이마를 다치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 이마에 희미한 상처를 보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무겁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 아기가 되었다.
우리 네 남매는 기억하지만, 아끼는 손자녀들은 헷갈려하신다.
'네가 누구냐....'
'잘 모르겠구나....'
본가에 모여앉아 우리가 웃고 떠들고 있으면 아버지는 옆에서 티비를 크게 틀어놓고 조용히 화투를 만진다. 그것도 싫증나면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나면 대문을 덜커덩 하며 돌아오신다.
달래와 쪽파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누구와 그렇게 갈등했나 물었다.
아기가 된 아버지, 얼굴이 벌개지도록 서로를 아프게 하던 나와 아버지는 이제 어디에 있는 걸까?
두어달전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서 치매검사를 받았다.
약을 타 왔지만 아버지는 종종 약 먹는 것을 잊으신다.
우리가 들르는 날에는 티비 아래 약봉지에서 알약을 꺼내 입에 넣어드린다.
약을 삼킨 후 환하게 아기처럼 웃는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본다.
나는 이제 은퇴하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네 아이를 키우며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고만 고만한 네 아이, 한참 가르치고 먹여야 할 네 아이를 둔 남자. 큰 꿈을 가슴에 품었던 남자.
오래전 어스름한 새벽,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던 아버지의 뒷 모습이 떠오른다.
한없이 커보이던 아버지는 이제 내 어깨 아래로 작아지고 만날 때마다 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