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을 알고도 살아간다는 것

컨텍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도 바울

by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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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텍트'를 좋아한다. 한번 봤는데도 각인되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테드창의 SF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24년을 마무리하는 즈음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영화도 좋았는데 소설은 더 좋았다. 영화가 왜 그토록 맘에 남았는지 소설을 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연말연시에는 신년운세나 사주를 보며 한 해를 예측해 본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고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래를 알게 된다면 지금 여기에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지구에 온 외계인 '헵타포드'와의 소통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를 직관하게 된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 이야기를 다룬다.

루이즈에게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것이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인식체계를 익히는 것이다.

헵타포드의 문자는 표의문자이며, 문자가 곧 문장이다. 시작과 끝을 함께 담고 있으며, 루이즈는 이 문자를 익히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사고방식이 동시적인 의식 양태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그녀의 사고 역시 도형처럼 코드화되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자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루이즈와 딸의 대화와 에피소드는 루이스의 과거가 아니다. 이것은 미래, 사랑하는 딸의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지각하는 장면이다. 루이즈는 헵타포드처럼 사고하며 자신에게 나타나는 이 '기억'을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의 삶 전체를 동시에 지각하게 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만나는 삶의 선택을 마주한 루이즈는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길을 걸어간다.


헵타포드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물리학자 게리, 그는 딸의 아버지다. 루이즈는 미래의 기억 속에서 게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리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라고 묻자, 루이지는 "응"이라고 대답한다.


소설 속에는 '페르마의 원리'가 등장한다. 빛이 물속의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갈때, 다양한 경로 중 최단 시간을 선택하며 이미 출발점에서 도착점을 알고 있다는 원리이다. 이는 마치 루이즈가 자신의 삶의 끝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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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알랭 바디우의 '사도 바울'이 떠올랐다. 미래를 알고 있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이미 끝을 아는 인생이라는 문장을 발화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루이즈는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의심과 두려움을 뚫고 나아간다. 이는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믿음, 사랑, 희망의 재소환과도 같다. 믿음은 선언된 사유이며, 희망은 주체의 확고부동함이고, 사랑은 주체화 과정이다. 루이즈의 선택은 주체화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미래를 알면서 그 선택의 순간순간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간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언어와 사고, 시간과 자유의지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된다.

만약 미래를 알게 된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그 답은 루이즈처럼, 우리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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