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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Jan 30. 2024

[한국의 신화] 동생을 내쫓는 언니들

신화 속 언니들은 왜 동생을 쫓아낼까?

최근 <나 혼자 산다>에서 키와 카니가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를 보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죠. 불륜과 분노가 뒤엉키는 K-막장 드라마의 정수와 같은 장면을 따라 하며 즐거워하였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바로 한국 드라마에선 왜 늘 이 대사가 나오냐며 "잤니? 잤어? 잤냐고!"를 따라 하며 웃던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나 혼자 산다> 528회


"잤니? 잤어? 잤냐고!"를 외치는 하유미의 연기는 전부터 인터넷에서 회자되어 왔었죠. 요즘은 주인공이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리는 이야기가 유행이라면, 당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순하디 순해 아무 말도 못 하고 마음 앓이만 하는 것이 정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마냥 고통받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곁엔 반드시 악한 인물을 벌주는 인물이 있었거든요.

<내 남자의 여자>에서 주인공을 대신하여 불륜 커플에게 분노를 퍼부어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안겨주었던 인물이 바로 하유미가 연기한 주인공의 언니인 김은수였습니다. 김은수는 동생을 대신해서 불륜 커플에게 화를 내고 그들과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죠. 아무 말 못 하는 동생을 대신해서, 동생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달려드는 '사이다' 같은 언니였습니다.

우리가 요즘 드라마에서 만나는 자매는 대체로 <내 남자의 여자>의 김은수와 동생 김지수 같죠. 가끔 투닥이더라도 서로를 아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끝까지 내 편인 존재. 내가 약하고 힘이 없을 땐 나를 위해 두 팔 걷고 나서주는 존재요.


그런데 한국 신화에서 자매들은 퍽 서운한 관계로 그려집니다.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삼공본풀이>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누구 덕에 사느냐"는 부모의 물음에 가믄장아기는 "내 복에 산다"라고 말합니다. 화가 난 부모가 집을 나가라 하자 가믄장아기는 주저하지 않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섭니다.
막상 가믄장아기가 떠나자 부모는 금세 후회하며 첫째 딸에게 가믄장아기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언니는 가믄장아기에게 가서 말하지요. 부모가 때리러 오고 있으니 발걸음을 재촉하라고요.
가믄장아기는 언니의 거짓말을 알아차리곤 말합니다.
그리고 언니는 가믄장아기의 말대로 지네로 변하지요.

첫째 딸과 가믄장아기가 돌아오지 않자 부모는 둘째 딸을 다시 보냅니다.

둘째 딸도 마찬가지로 가믄장아기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가믄장아기는 이번에도 말을 하고, 둘째 언니는 가믄장아기의 말대로 버섯으로 변합니다.


요즘 드라마의 언니들이라면 부모가 쫓아낼 때 어떻게 했을까요? 답답하리만치 착한 동생이 집을 나가라는 부모의 말에 대꾸 한마디 없이 짐을 챙긴다면? 아마 우르르 달려가 부모님에게 항변했을 겁니다.

"엄마 어린 저 애가 어떻게 혼자 험한 길을 다니겠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잘 이야기해 볼게요."

동생을 대신해 부모에게 사정을 해보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짐을 싸는 동생의 등짝을 때리며 달래었을는지도 모르지요.

"부모님께 가서 내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다고, 딱 한 번만 봐달라고 해. 너 바깥이 얼마나 험한지 알아?"

아마 동생을 붙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할 겁니다.


그런데 신화 속 언니들은 꼭 신데렐라의 언니들 같지요? 행여나 부모가 동생을 붙잡을까 거짓말로 가믄장아기의 등을 떠밀려하지요. 가믄장아기도 가만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언니들을 지네로, 버섯으로 바꾸어버리지요.

신화의 자매들에서 자매애가 느껴지시나요? 그보다는 꼭 경쟁관계처럼 보이지 않나요? 가믄장아기가 행여나 집에 돌아왔다 부모가 다시 받아줄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꼭, 파이를 빼앗길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안돼. 나가. 여기에 더 이상 네가 설 자리는 없어."


이쯤에서 고전 작품 속 '계모'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신데렐라가 그렇듯, 고전 작품에서 '계모'라는 존재는 늘 전처의 자식을 괴롭히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한국의 고전소설과 신화에서도 그랬지요. 그런데요. 재혼의 상대의 조건이 '심성이 못된 사람'인 것도 아닌데 계모는 왜 그러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일까요? 생부모 중에서도 나쁘고 착한 사람이 있듯 의붓어머니 또한 그러할 텐데 말이지요.


'계모'라는 존재가 전 부인의 아이를 죽이거나 쫓아내고 싶었던 이유는 단순한 악감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보다는 내 위치의 불안함이 더 큰 이유였겠지요. 전 부인의 아이가 이미 있다면 심지어 아들이라면, '계모'가 아이를 낳아도 그 재산은 아마 그 아들에게 갈 것입니다. 그럼 남편이 죽었을 때 자신을 부양해 주리라는 보장도 없고,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상상할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해 왔을 겁니다. 그러니 전처의 자식을 내쫓고-죽여 자신의 아이가 설 자리를 그리고 자신의 안전한 미래를 만들려 했던 것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계모의 악행의 근저엔 집 안에서의 그의 불안한 위치가 끊임없는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 아이가, 내가 안전하려면 저 아이가 없어야 해. (물론 그렇다 하여 그의 악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문제의 근원을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신화 속 자매들도 꼭 그러해 보입니다. <바리공주>에서도 집에서 곱게 자란 6명의 언니들은 바리공주가 길을 떠나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언니들은 자신은 부모를 위해 저승에 다녀올 수 없다고 하고, 그 짐을 대신 진 바리공주를 외면하지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리공주가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남편을 보내 바리공주를 막아섭니다. 대신 고생해 준 동생을 꼭 끌어안아 주지는 못할 망정 왜 그러는 것일까요? 아마도 두려웠던 것이겠지요. 바리공주가 돌아오면 부모는 감동하여 상을 내릴 테고, 부모의 왕좌 또한 바리공주에게 넘어갈 테니까요. 자신들이 받을 것이 자꾸만 바리공주에게 넘어갈 테니까. 실제로 여정을 끝내고 돌아온 바리공주는 부모에게서 "네 아들에게 왕좌를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언니들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삼공본풀이> 속 언니들 또한 마찬가지로 두려웠던 게 아닐까요. 가믄장아기가 돌아온다면 그 아이가 우리의 몫을 가져갈지도 몰라.


자매가 꼭 경쟁하거나 서로를 시기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걸 알지요. 그러니 우린 <삼공본풀이>와 <바리공주> 속 언니들이 동생을 내쫓는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 볼 법하지요. 신화에선 자매를 왜 늘 저렇게 그려낼까 하고요. 신화에서 형제들은 늘 사이좋게 하나로 뭉쳐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말이에요.


우린 누군가의 행동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심성을 판단해 보곤 합니다. 못된 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고민을 끝내기도 하지요. 물론 나쁜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꼭 개인의 마음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을 먹도록 만드는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낸 파동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내가 지금 저 아이를 내쫓지 않으면, 내 파이는 모두 저 아이의 몫이 되어버릴 거야." 하고요. 그러니 이야기 너머의 사람들의 삶에도 종종 눈길을 주면 좋겠습니다. 심성 너머의 그 사람이 처했던 환경을 짐작해 보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다면 우린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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