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메이트신화라 May 25. 2024

차가버섯과 선운암 된장

아빠의 면역을 위해

아빠의 암밍아웃 이후로 가족들의 마음이 약간 분주해졌다.

아직도 연락이 없는 남동생은 그래도 단톡방은 나가지 않고 있어서 일부러 그 단톡방에 아빠의 소식을 알렸고, 나중에 1이 지워져 있는 걸로 봐서 읽었을 거라 생각한다.



여동생도 아빠에게 안부전화 했을 때도 못 들었던 소식이라 많이 놀란 모양이고,

애증의 관계인 엄마는 쯧쯧부터 시작해서 안타깝고, 안 됐고, 뭐 그런 여러 가지 마음이 드시는 것 같았다.



집에 있는 헤모힘을 먹다가, 아빠에게 하나 보내드렸다. 이거 개발도 어차피 원자력 발전소에서 뭐 어쩌고 했으니까, 면역력에 효과가 높겠지 다른 것보다. 그즈음에 엄마는 암환자용 뉴케어를 두 박스 시켜서 아빠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보내고 엄마는 내게 바로 입금하시고.



그러고 또 일주일 만에 엄마는 문자로, 

'차가버섯 주문 좀 해봐라. 시베리아에서 만든 걸로, 그게 암환자에게 좋다고 하더라' 

그렇게 엄마의 오더?!를 받고 차가버섯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또 내가 모르는 세계가 펼쳐졌다. 차가버섯이 암환자에게 좋다고 많이 주문하는 것 같은데, 가격이 장난 아니다. 100g에 20만 원부터 시작하지 않나, 300g은 거의 70만 원이다. 대박, 이렇게 좋은 거야?



그렇게 찾다 보니 암환자 카페에 또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차가버섯 먹으면 간수치 올라간다고 해서 먹지 말래요' 음,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친하게 지내는 대표님이 예전 대학원 연구실에서 여러 가지 연구를 많이 하셨던지라, 혹시나 차가버섯 연구해 봤냐고 물었더니, 어, 그런 적 있었데. 그래서 먹어도 되는지 물어봤다. 함께 연구했던 교수님에게 10년 만에 연락해서 ㅋㅋ 알아봐 주셨는데, 결론은 정말 좋은 제품을 연하게 타서 음용하는 정도를 추천한다고. 



헤모힘도 일단 보냈고 하니 엄마와 이야기해서 차가버섯은 보류하기로 했다. 담당 교수를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지.



그리고 대표님은 차가버섯 말고 된장을 추천해 주셨다. 정~~~말 좋은 차가버섯, 정~~~말 좋은 된장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통도사 선운암 된장을 추천해 주신다. 혹시나 검색해 봤더니, 와 사이트가 있네.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된장, 고추장을 바로 주문하라고 오더를 내렸다.



다음 주 2박 3일 항암 하러 병원에 들어가기 때문에 퇴원에 맞춰서 주문하라고. 그러면서 또 하나 오더를 내린다. 좀 시원한 색상으로 모자도 하나 사라고. 나는 여기서 스탑. 다른 건 잘 찾아보고, 주문도 잘하는 편인데, 옷이나 패션 관련, 색상 관련으로 가면 피로도가 확 올라간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스트레스 지수가 급 상승했다. 



내가 이런 걸 아는 남편은 옆에서 보더니, 모자도 어울리는 게 있고 없고 하는데, 본인이 써보고 마음에 들어야지, 라며 내 비위를 맞춰준다. 엄마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다. 



면역에 좋은




아빠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면서, 참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게 없구나. 싶었다. 정서적인 교류가 많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빠가 자기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말하는 사람도 아니고. 술 마시고 말이 많아지는 사람도 아니고(바로 잠드는 사람) 아빠의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나와 여동생은 어릴 때 아빠와 놀러 간 기억은 조금 있는데, 막냇동생은 전혀 없을 것 같다. 막내가 태어나던 그 해부터 아빠는 사업할 거라며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밖으로 돌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하지 않고, 항상 자기 선에서 해결하다가 더 나빠지고 나서야 가족들이 알게 했다. 나름 피해 주지 않고 해결해보려고 한 것은 알겠지만, 결과는 항상 안 좋았다. 이번에도 저렇게 머리카락이 다 빠질 정도로 항암을 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암이라고 말하기 전에 식당에서 사위가 '장인어른 술 한잔 하실래예?'라고 했을 때 잘 받아 드셨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술 드실 정도면 괜찮은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암인걸 밝히고 나서 엄마는 '아까 술을 안 마셔야지'라고 타박을 주니, 아빠는 '거절하면 사위가 실망할까 봐'라고 했단다. 엄마는 아빠에게 욕을, 욕을 했단다. 자기 목숨을 걸고 거절도 못하는 등신이라고.



그렇게 거절을 못하는 성격에 보증을 몇 개나 서고, 가족을 힘들게 하고. 심지어는 사위에게도 거절을 못하고 술까지 마시냐고. 하. 이건 나도 어떻게 실드 못 쳐주겠더라.



그렇게 기억에는 아빠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 인데 정작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빡빡머리가 되어 나타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