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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메이트신화라 Nov 14. 2021

삼각형의 공간

엄마는 그곳에서 먹고, 자고 했다. 

엄마는 청소노동자다.

그간 집에서 부업도 하고, 야식집에서 김밥도 쌌다. 

어시장에서 회를 썰어만 주는 작은 가게도 조금 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체력이 안돼서 공장 같은 델 못 들어간다'라고 하셨다.

긴 시간 계속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공장보다는 

돈을 조금 못 벌지만 시간이 짧은 청소일을 그렇게 시작하셨다.


그 호텔이 첫 직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다니기 시작하다가 엄마는 신형 '티코'를 샀다.

출퇴근만 하기에 좋은 차였고 엄마는 그 보라색 티코를 타고 매일 출퇴근을 했다.


어느 날, 무슨 볼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막냇동생을 데리고 엄마가 일하는 호텔로 찾아갔다.

사전에 엄마가 어디로 들어오면 된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필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가 중학생이었는지, 초등학생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8살 어린 막냇동생과 함께 호텔 앞에서 쭈뼛쭈뼛거렸던 게 기억난다.

나에게 호텔이란 아이들이 막 들어가선 안 되는 곳, 

나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뒷문으로 살살 들어가면 잡힐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c 호텔은 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곳이었다. 

호텔 1층에는 예쁜 조명이 있는 커피숍이 있었고, 거기서 처녀 총각들이 선도 많이 본다고 했다.

대형 통 유리의 커피숍이 보이는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엄마가 미리 알려준 후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속 문이 보이는 멀찍한 곳에 떨어져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만 했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누가 나와서 데리고 갔던 것 같다.

"밖에서 쭈뼛대고 있드라 아니가."

누군가가 말했다.


무거운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화려한 조명과 금색 계단 봉이 보였다.

모든 게 반짝반짝거리며 내 눈에 들어왔다.

동생 손을 꼭 잡고 누군가를 따라 엄마가 있는 공간에 들어갔다.

순간 공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방금 본 반짝이는 곳은 어디 간데없었고, 

희다 못해 청색에 가까운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엄마가 우리를 반겼다.


세 명이 앉아있기엔 좁아 보였다.

계단 아래 빈 공간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온전히 서 있을 수 없었다.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몸을 숙여야 했다. 

계단 아래 공간이라 천장의 높이가 달랐기 때문이다.

마치 직각 삼각형과 같은 모양을 한 엄마의 휴식 공간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있는 엄마와 같이 일하는 이모들은 그곳을 쉬기 좋게 만들어뒀다.

전기장판인지 이불인지를 깔아 두었고, 수건도 곳곳에 널려있었다.

전기주전자도 보였고, 입고 온 옷을 걸어놓은 것도 보였다.

하지만 계단 아래의 서늘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고, 

나는 누가 앉으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입구에서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출처 : 픽사베이 


엄마는 우리 남매가 커 오는 동안 항상 그러셨다.

"엄마가 청소하러 다닌다고 애들 기죽을까 봐."

지금도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청소노동자를 귀하게 여기진 않는다.

하물며 90년대는 더 그랬지.

엄마는 우리가 '기죽을까 봐' 항상 신경 쓰셨다.


또 엄마는 월급이 막 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40만 원을 받기 위해 얼마나 협상을 했는지,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우는 소리 해가면서 

조금씩 입금을 올렸는지 이야기하셨다.


그 돈으로 내가 아플 때마다 병원비를 댔고, 비상금을 마련해두었고

살림에 보탬이 됐다.

그렇게 아낀 돈을 아빠의 보증 빚에 몇 번이나 쓸 때는 

엄마가 우리를 두고 집을 나가지 않을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볼 일을 다 보고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먼저 집에 가라며 호텔 밖으로 배웅을 하셨다.

나오면서 "저 계단을 일일이 손으로 다 닦아야 된다 아니가." 하셨다.

내 눈에 처음 들어왔던 반짝이던 금색 계단 봉이 엄마의 손으로 일일이 다 닦은 것이라니.

그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에는 누군가의 노동이 묻어있는 것이라고.

계단에서 내려오며 일일이 계단 봉을 바닥까지 닦고, 

그 사이사이를 모두 손으로 닦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수고로움은 지금 내가 하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그 이후로는 엄마가 일하는 곳에 가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점점 환경은 나아지는 게 분명했다.

사무실이 많은 곳에서 일하고 계신 지금, 

엄마는 넓은 빈 사무실 하나를 쉬는 공간으로 쓸 수 있다고 좋아하셨다.


제일 화려했던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었던 엄마의 공간.

누군가의 휴식을 위해서 쓸고 닦으며 가장 좁고 낮은 곳에서 쉬어야만 했던 엄마.

그때 그곳을 가지 않았더라면 받지 않았을 충격의 기억.

지금도 내겐 선명한 그 삼각형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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