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고려시대 석탑

by 제이미

영화 극한직업을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대사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이 문장이 떠오른다.


이 탑은 백제탑일까, 아니면 신라 탑일까.


익산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백제 왕도’라는 표현을 마주하게 된다. 이 말은 곧 이곳이 한때 백제의 정치와 문화가 모여 있던 중심지였다는 뜻이다.


그 근거로는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首部(수부)’ 명문 기와와 일본 「관세음응험기」의 기록 등이 자주 언급된다. 학계에서는 이를 토대로 백제 무왕이 부여에 이어 익산 일대에 또 다른 왕궁과 도성을 두고 국가의 부흥을 꾀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런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왕궁리 유적 한가운데에는 한 기의 석탑이 서 있다. 바로 왕궁리 오층석탑이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제작시기: 고려시대

국보

소재지: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답사일: 2025년 11월 30일


왕궁리 유적에 들어서면 먼저 텅 빈 터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에서 왕궁리 오층석탑이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다.


멀리서 보면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생각보다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탑 가까이 다가가 기단부를 살펴보니,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특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주와 탱주가 비교적 뚜렷하고, 기단의 구성도 안정적이다.

그런데 시선을 위로 올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몸돌(옥신석)과 지붕돌(옥개석)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된 옥개석과 옥개받침, 얇고 평평한 지붕돌, 끝에서만 살짝 들린 곡선까지. 백제 계열의 조형 감각이 분명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왕궁리 오층석탑을 마주하고 있으면 한마디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통일신라식 기단 위에 백제식 탑신이 얹힌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탑을 보고 있으면 영화 극한직업의 그 유명한 대사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고려 시대에 세워진 석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섞어 냈던 고려의 성격과도 닮아 있다.

왕궁리 오층석탑의 탑신부(사진 위)와 기단부(사진 아래)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낼 때 또 다른 아름다움이 생긴다. 왕궁리 오층석탑은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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