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계 고려시대 석탑
김제에서 금산사와 귀신사 석탑을 답사 후 익산으로 넘어오는 길이었다. 지도를 보다가 군산의 탑동 삼층석탑이 내가 묵는 숙소에서 차로 15분 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익산 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아침 일찍 서둘러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 탑동 마을은 익산 오산면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제작시기: 고려시대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소재지: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답사일: 2025년 11월 30일
양옆으로 논이 펼쳐진 시골길을 따라 달리니 어느새 탑동 마을로 들어섰다. 도시에만 살아온 터라 이런 작은 농촌 마을의 길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좁은 골목을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가자, 죽산교회 너머로 석탑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우리나라에는 ‘탑동’이라는 지명이 여럿 있는데, 대부분 실제로 그곳에 석탑이 있었거나, 마을을 대표할 만큼 중요한 탑이 있던 장소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군산의 탑동마을 역시 오늘 답사하려는 삼층석탑이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교회 뒤쪽으로 조금 올라가자, 이 마을 이름의 주인공인 삼층석탑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에 별다른 건물 하나 없이 탑 하나가 홀로 서 있었다.
군산 탑동 삼층석탑은 하나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구조다. 기단과 탑신 모두 여러 장의 돌을 차곡차곡 맞추어 쌓은 방식이라 자연스럽게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떠오른다.
다만 지붕돌(옥개석)의 느낌은 꽤 다르다. 옥개석 끝선이 아주 약하게 들려 있기는 하지만, 기울기가 워낙 완만해서 멀리서 보면 거의 수평에 가깝게 보인다.
또 하나 눈에 확 들어오는 점은 1층 탑신부의 비례다. 세 층의 높이가 비교적 고르게 맞춰지는 신라, 백제 석탑과 달리, 군산 탑동 삼층석탑은 1층 탑신이 유난히 길고 위로 갈수록 점점 짧아진다.
이런 식으로 아래에서 위로 급격히 좁아지는 비례는 고려 시대 석탑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다.
탑 앞에 서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탑은 고려 시대 석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탑에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예전에 이곳에는 탑동에 사는 여자 장수와 장자골에 사는 남자 장수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힘겨루기를 하며 종종 시합을 벌였다고 한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탑을 쌓고 그것을 두 손가락으로 밀어 무너뜨리는 시합을 했는데, 여자 장수는 남자 장수의 탑을 무너뜨렸지만 남자 장수는 끝내 이 탑을 무너뜨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삼층석탑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약 그때 남자 장수가 이 탑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면, 오늘 우리가 이 석탑을 마주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탑 북쪽에는 '보탑정사'라는 이름의 작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절이 있었던 폐사지로, 1890년경 정매진 스님이 근처에 암자를 세워 '청룡사'라 이름 붙이고 법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후 1989년에 '보탑정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 그대로, 석탑을 보호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오랫동안 마을 언덕 한가운데 홀로 서 있던 탑. 이제는 그 곁에 작은 절이 자리하고 있다.
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