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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키 Oct 11. 2023

돈 안 되는 글을 쓰겠다는 각오

유시민이 일단 많이 쓰랬는데, 뭘 쓰지?

'글을 쓸거야'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적지 않은 글을 써왔다.


학생 시절에는 무언가를 계속 열심히 썼다. 뭘 그렇게 열심히 썼는지, 두 달마다 새 다이어리의 포장을 뜯었다. 시골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 집에 올라갈 때마다 미리 다이어리를 두어 권씩 사둬야 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로 서울 집에 갔을 때의 계획, 삶의 계획 따위를 썼던 것 같다. 만약 이때로 돌아가 MBTI 검사를 한다면 J 100%가 나올 것이다. 그만큼 계획을 많이 세웠고, 그 과정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성인이 되고서는 블로그를 했다. 첫 문장에서 '글을 썼다'고 했을 때 문학이나 에세이를 생각했는가? 아니다. 난 '반려견 블로거'였다. 2년 동안 요령도 없이 정말 많이 썼다. 각종 애견용품 리뷰와 사료 성분 비교, 애견동반 식당과 카페 후기, 박람회 방문 후기 등등. 공들여 사진을 찍고 보정해서 글을 쓰면 포스팅 한 건 올리는 데에 3~4시간은 걸리곤 했다. 1년에 치킨 두마리 정도의 광고비도 들어오는 블로그였는데 아쉽게도 계정 주인인 전남자친구가 블로그를 감춰서 더이상 볼 수 없다. 


전남자친구와 헤어질 즈음 대학원을 갔다. 대학원은 글쓰기로 시작해서 글쓰기로 끝난다. 수학계획서를 써서 지원하고, 논문(보고서)을 써야 나올 수 있다. 우리 교수님은 '원페이퍼'를 참 좋아하셨다. 내 의견을 한 페이지로 정리해서 가져오라는 것이다. 줄이자니 아깝고, 늘리자니 사족만 붙이게 되는 게 원페이퍼다. 4학기 동안 문자 그대로 '구르면서' 배워 간신히 졸업했다.


대학원 수업은 저녁에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일을 했다. 공공기관도 아닌데 아주 보수적으로 문서 작업을 하는 조직이었다. 여기서도 '구르면서' 문장을 짧고 명료하게 쓰는 방법을 익혔다. 누구나 기획서만 보고도 사업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법을 익혔다. 한자어를 많이 사용했고, 무엇보다 네 글자로 맞춰서 써야 했다. [사업개요], [사업목표], [세부계획] 처럼. 단어 사이를 띄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했으나 금새 붙여쓰는 것에 적응했다. 



글쓰기 능력 키우기에 필요성을 느낀 것도 이때부터였다. 바쁜 선임을 대신해 보도자료 초안을 내가 작업했는데, 실제로 보도된 내용을 보면 환골탈태가 되어있던 것이다. 내가 선임에게 전달한 글 중에 남아있는 것은 회사 이름뿐이었을 정도로 내 글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선임은 내게 '뾰족하게'를 강조했다. 보도자료는 하나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다 말하려다가는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문자 그대로 주경야독하던 시절이라 글쓰기를 따로 연습하지는 못했다. 대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었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과제를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고도의 글쓰기 수업이었다.


대학원 졸업과 비슷한 시기에 현재 회사로 이직했다. 출퇴근에만 3시간이 걸리던 전 직장에 비해 현재 회사는 100% 재택근무라 훨씬 시간 여유가 있다. 게다가 대학원까지 졸업했으니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누리고 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유를 즐기며 소설책을 읽으며 빈둥대는데 글쓰기의 필요성이 떠올랐다. '맞다! 나 글쓰기 연습을 좀 해야 했지?' 자침 추석 연휴가 길어 관련 책을 세 권 읽었다. 그중 한 권은 편집자가 쓴 책이었는데 '짧게 쓰되, 부지런하라'라고 했다. 사족을 붙이지 말되 다양한 어휘를 고민하라는 것이다. 늘상 사용하는 표현은 쓸 때는 편하지만 좋은 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다른 표현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지, 더 적확한 표현은 없는지 고민하라고.


다른 두 권은 모두 유시민이 쓴 책이었다. 한 권에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태도와 조건을 이야기했고, 다른 한 권에서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글을 쓰면 좋은지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전자는 소프트웨어, 후자는 하드웨어인 셈이다. 당신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둘 다 권하고 싶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티끌 모아 태산이 맞다." "뭐가 되었든 많이 쓰면 되는 것이다." 많이 읽어야 글을 잘 쓸 수 있고,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문으로 쓰되, 독자를 인지하며 쉽게 쓰라고.


'좋아, 글을 쓰자!' 각오하기 무섭게 고민이 떠올랐다. 

'무슨 글을 쓰지?' 


난 OSMU를 좋아한다. 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콘텐츠(자원)를 여러 곳에 활용한다는 뜻이다. 주로 콘텐츠 마케팅에서 사용되는 단어다. 이왕 글을 쓴다면 좀 더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에서 쓰고 싶었다. 이를테면 블로그 같은! 블로그는 어느 정도만 작업을 하면 광고비도 나오고, 협찬도 받을 수 있다. 조금만 요령껏 운영하면 수익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블로그에 쓸 수 있는 글은 한계가 있다. 일단 이런 일기장 같은 글은 쓸 수야 있겠지만 수익화에 적합한 내용은 아니다. 결국 쓸 수 있는 내용의 범주가 크게 좁아진다. '어차피 글 쓰는 건 똑같은데 뭐 어때?'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기도 했다. 결론은? 보다시피 블로그는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장 블로그를 하지는 않기로 했다. 책이나 맛집 후기보다는 내 생각과 경험을 먼저 써보기로 한 것이다. 


유시민은 하루 30분씩 일주일에 6일을 써보라고 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쓰게 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매일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오히려 하루 1시간 일주일 3일은 가능할 것 같다. 일단 시작이 반이라고 하니 이 글을 쓴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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