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막이 제공되는 드라마가 좋다. 또 드라마를 보는 중간중간 <왜?>에 대해 누군가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다. 물론 그 누군가의 귀찮음도 잘 알고 또 고맙기도 하다.
나에게 배우들의 대사가 명쾌하게 들리지 않은 이유는 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이거나 아니면 감독이 의도한 그 상황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이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의 이유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이유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설명을 원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니 말이나 생각이나 다른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오펜하이머, 오늘은 세 시간짜리 영화를 비교적 혼자서 괜찮게 본 것 같다. ㅎㅎ 그리고 그 영화에서 현재의 우리 모습들과 겹쳐지는 것들이 꽤 많았음에 예상하지 못했던 흥미도 있었고, 또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 무식하고 천박한 정치적 이기주의의 행태들에 대한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의 일대기와 그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영화라는 일반적 설명 외에 뜬금없이 떠오른 <색깔 논쟁과 이기적인 집단주의>. 2차 대전 이후 정치적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해 모함을 일삼는 미국의 반공산주의의 유행. 하지만 해방 이후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진행형인 우리와는 달리 그리 오래 가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확실히) 여기나 거기나 정치적 편을 가르기 위해 조작과 모함을 일삼고 색깔논쟁을 벌이는 이들의 의식 수준은 참으로 저질이다.
오펜하이머가 소련의 스파이로 몰렸던 청문회장에서,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오펜하이머의 부인 키티는 스스로 공산주의를 탈피한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자신은 미국 내의 공산주의를 지지했지만, 소련과 연계된...” 아마 이 말은, 어느 한 쪽을 옹호하거나 비판할 수 없어서, 겉으로는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매카시즘) 모두를 비판한 말이었지만, 실제로는 모함과 시기가 가득한 반공산주의를 비판하려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머지않아 정리될 매카시즘이라는 의미도 담겨있었던 것 같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터트린 후, 화면은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발을 구르며 오펜하이머를 열광적으로 외치는 군중들의 집단적 행동을 보여준다. 또 동시에 오펜하이머의 발에 밟혀 바스러지는 검게 불타버린 시체도 보여주다. 그 속에서 당연한 민족주의도 또 인류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자책감도 모두 불완전함이 느껴졌다.
세계 최강의 폭탄으로 일본을 패망시킨 후, 승리에 환호하는 미국 군중들과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항복을 했던 일본. 그리고 언제부턴가 한마음이 된 미국과 일본의 정상. 때에 따라 변신하면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날짜가 8월 15일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다.
공산주의자에다 스파이라는 모함에 대처하는 오펜하이머의 자세는 깊고 진중함이 있었다. 자신에게 사실이 아닌 불리한 증언을 한 이가 내민 손도 망설임 없이 웃으며 잡는 오펜하이머. 아마도 자신이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를 폭탄을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펜하이머가 간첩으로 몰리게 된 이유가 스트로스 제독의 앙심 때문이었음이 드러난 후, 그 발단이 되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간의 대화가 내내 궁금했는데, 영화가 끝나기 전에 보여줄 것 같기도 했지만, 혹시 내가 놓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도중 지나간 장면을 떠 올리느라 머리가 좀 바빴다. 그 발단의 장면은 영화 앞부분에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멀리서 본 스트로스가 아무 말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간 아인슈타인을 보며 자신을 따돌리려 한다고 오해를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예상대로 그 장면은 마지막에 나왔다. 그 대화 내용은 생략한다. ㅎㅎ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우주에서 본 지구였다. 혹시 이 장면을 통해서 ‘이곳은 우리가 지켜야 할 터전’ 임을 전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 지구의 중심이 어느 나라였는지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구였던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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