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을 만나다
워낙 유명해서 쿠바의 음악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룹이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일 것입니다. 1930년대 쿠바는 경제적, 예술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당시 쿠바의 음악은 아프로 쿠반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켜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민속음악에 스페인의 라틴 리듬이 섞여 들고, 이후 아프리카 이주민의 애환과 타악기가 결합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스페인의 무곡 콘트라단사(Contradanza)에 아프리카 특색이 결합된 단손(Danzon)과 쏜(Son)을 비롯해, 쿠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음악 살사(Salsa)와 룸바(Rumba) 등이 생겨났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대표곡인 찬찬 (Chan Chan) 또한 쏜 이라는 장르에 속합니다. 이후 미국의 재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요.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도 좋아하지만, 쿠바의 모습을 더욱 주관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 ‘치코와 리타’(Chico y Rita)를 더욱 좋아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은 세계적인 음악가 베보 발데스(Bebo Valdes)의 곡들입니다. 그는 1940년대 쿠바 음악 전성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이자 바탕가(Batanga) 리듬의 창시자이기도 하지요. 2000년, 스페인 출신의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는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까예 54'(Calle 54)를 만들면서 베보 발데스와 연을 맺게 됩니다.
이후 애니메이션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와, '까예 54'의 포스터를 그린 디자이너 마리스칼이 협업해 만든 영화가 바로 ‘치코와 리타’입니다. 베보 발데스를 모델로 한 ‘치코’와, 당대 유명 가수 리타 몬타네르(Rita Montaner)의 아름답고 관능적인 사랑이야기가 주제인 영화죠. 다른 애니메이션과 달리 거칠고 간결한 선으로 섬세한 캐릭터를 묘사했는데, 음악과의 융화, 넘치는 생동감은 이 영화만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1918년 생인 베보 발데스는 2000년 ‘까예 54’를 시작으로 2010년 ‘치코와 리타’와의 인연 덕분에 다시금 자신의 음악세계를 선보일 수 있었고, 40여 년 만에 대중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2002년과 2006년에 발표한 앨범은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라틴 재즈 상 등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불우한 말년의 구두닦이로 묘사되었지만, 실제 그는 혁명의 파도를 피해 부인과 다섯 자녀를 남겨둔 채 해외로 떠돌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지난 2013년 3월 눈을 감을 때까지 그는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2007년에 남긴 마지막 공연 라이브 연주를 들어보면 여전히 리듬감 넘치면서도 어딘지 투박한 장인의 손놀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86세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그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쿠바에서 길을 가다 보면 나이를 막론하고 그룹을 이뤄 공연하는 밴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 그 앞에서 춤을 추거나 리듬을 타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지요. 그중 저희가 갔던 Cafe Taberna는 상당한 수준의 쿠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곳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또 한 분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서 공연할 때 ‘마사코테’(Mazacote)라 불리던 이냐시오 카리요(Ignacio Carrillo)할아버지. 그는 아바나의 외곽 구아나바코아에서 태어난 1927년 생입니다. 무려 90세. 그런데도 그는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손이 떨려서 마이크가 흔들거리고,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분이 힘주어 곡을 이어가는 모습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 연세에도 뻗어나가는 목소리만큼은 힘찬 그 모습이 멋져 보이다가도, 아무리 전설적인 가수라 해도 너무 늦은 나이까지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큰 오해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다 끝 편 테이블에 홀로 앉아 아이스크림을 드시는 할아버지를 다시 마주쳤는데, 다녀오면서 보니 혼자 일어서서 리듬을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손이 떨려 아이스크림도 제대로 못 드시는 분이 흥에 겨워 박자를 즐기고 있다니요. 나이만 들었다 뿐 전성기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느꼈습니다.
저는 사진가 김중만 선생님의 스튜디오에서 5년가량 사진을 배웠습니다. 저의 경우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배우려는 사람들은 늘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옆에서 듣게 되었는데, 기자의 질문 중 ‘제자를 어떻게 받으시는지 궁금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가지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놈이 평생 카메라를 쥐고 살 놈 인가’를 본다는 것. 대체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머지 하나를 대답하셨습니다.
‘들고 온 사진이 감각적인 사진인가 감성적인 사진인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얼핏 들으면 비슷한 말인 듯한데 선생님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감각이라는 것이 자극에 반응하고 사물에서 받는 느낌을 전하는 것이라면, 감성은 인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력에 관계없이 세상을 보는 그만의 마음이 느껴지는 사진이라면 오래도록 연마해 좋은 사진가가 될 자질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나라를 가 보았지만, 유독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만의 활동을 하는 예술가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쿠바였습니다. 무언가 하나를 평생 이어간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깊은 울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현대의 기준에서 비켜난 부분이 있지만, 문화예술을 아끼고 오래 즐기는 자세만큼은 존중해 마지않을 그런 곳이 바로 쿠바입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3994 <-원문은 스토리 펀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