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를 다녀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칭기즈칸은 역사상 누구보다 넓은 영토를 이룬 것으로 이름 나 있다. 그가 정복한 땅은 한반도의 35배 이상이 되는 777만km²에 이른다. 그가 정복한 땅은 과거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348만km²와 ‘나폴레옹’이 정복한 115만km², ‘히틀러’가 정복한 219만km²를 다 합친 것보다 넓다. 이후 몽골은 25년간 계속된 정복활동을 통해 총 3,320만 km²에 달하는 역사상 가장 커다란 제국을 이루었다.
제국의 영광을 간직한 몽골이지만 이제 더는 가장 거대한 나라도, 가장 힘 있는 나라도 아닌 그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사막과 추위 정도의 이미지만 가진 나라로 인식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칸의 후예들은 드넓은 목초지를 터전 삼아 여전히 자신들의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보통 서울에서 지낼 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집을 떠나면 아침의 일과를 달리기로 시작한다. 늘 달리던 코스가 아닌 새로운 코스를 달리면서 내가 있는 곳의 지리를 익히고 현지의 아침 풍경을 구경한다. 전날 마신 술기운도 아침 공기에 날려 보내며 새로운 기운을 충전한다. 울란바타르에 도착해 초원을 지나 고비를 절반 정도 돌아서 오는 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평지가 있다. 그리고 드문드문 몽골의 전통 가옥 형태인 게르로 만든 여행자들의 숙소가 우리의 쉼터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끈을 고쳐매고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조금만 달려 나와도 마주하는 탁 트인 시야가 상당한 해방감을 주었다. 평원의 햇살, 적당한 바람, 서서 한 바퀴를 빙글 돌아도 아무것도 걸릴 것 없는 광야. 이런 곳을 달린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순히 광활한 평야라고만 생각했는데 거기엔 작은 둔덕들이 있었다. 달리면서도 딱히 인지하기 힘든 정말 완만한 언덕들. 보통 나는 달리는 시간을 듣고 있는 음악의 곡 수로 가늠하는데, 3분 30초가량의 노래 3곡을 들으면 10분이 지난다는 정도의 생각으로 달리는 거리를 계산한다. 그렇게 적당히 해의 방향과 시간으로 머릿속에 큰 사각형을 그리면 숙소로 되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웬걸. 분명 떠나온 숙소의 방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가도 여전히 무한의 지평선뿐이다. 지도 앱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주 야트막한 언덕 탓에 방향을 잃고 숙소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해는 뜨겁고, 인터넷은커녕 아무 통신조차 안되는 막막한 땅. 세상에 복잡해서 길을 잃는 게 아닌, 길이 없어서 길을 잃는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난데없이 공포가 밀려왔고, 정처 없이 한참을 헤맸다. 정신을 가다듬고 평원의 높낮이를 인식하고는 그중 높아 보이는 언덕을 향해 뛰었다. 저 멀리 내가 출발한 게르 몇 채가 보였다.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각도의 차이로 인해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던 것. ‘휴. 멀지만 보이기만 하면 괜찮아.’하고는 한참을 걸어서 돌아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다가 영영 미아가 되어버릴 뻔 했다.
고작 달리기하러 나와도 이렇게 길을 찾기 어려운데, 우리가 탄 차를 운전해준 몽골인들은 아무런 이정표 없는 초원을 그저 내달렸다. 커다란 SUV에 몸을 싣고 하루평균 6~7시간씩을 이동해 우리는 사막의 한가운데까지 왔다. 차는 크고 힘도 좋았지만 몽골의 대평원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교통체증 같은 건 생각할 필요 없이 마음껏 내달릴 수 있어도, 바람과 진동으로 만들어진 땅의 크고 작은 요철에 차는 쉴 새 없이 시달려야 했다. 펑크가 나는 일은 다반사, 가끔 중대한 고장이 나기도 한다. 운전사 무리 중에 기술이 좋은 사람이 도맡아 고치기는 하지만 누구나 간단한 정비 정도는 해야 험하고 먼 길을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 정말로 차 한 대가 엔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고장이 났다. 가까운 도시도 900km를 가야 나오는 그야말로 사고무탁의 한중간인데 말이다.
처음 작은 수리로 이동이 중단되었을 때부터 이상했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는데, 당황한 우리와는 달리 농담을 건네고 담배를 피우며 차를 고치는 사람들. 그들이야 늘 겪을법한 일이라 그렇다 하지만 제시간에 숙소까지 가지 못하면 일행은 쉬지 못해 고생일 거란 걱정이 들었다. 내 걱정도 잠시, 몇 번의 수리를 겪으면서 우리 일행들도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며 자리를 편다. 머리 위의 뙤약볕을 피해 차가 만들어준 손바닥만한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누군가는 음료수를 꺼내오고, 누구는 맥주 캔을 딴다. 시간이 더 걸릴 거라며 미안하다는 한마디에 옆에선 컵라면의 물을 끓인다.
수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배운 몽골 말이 하나 있다. 차가 어떠냐, 괜찮은 거냐 물으면 응당 그들은 씨익 웃으며 “주게레, 주게레.”하고는 했다. 우리말로 괜찮아, 괜찮아하는 뜻이다. 여러 힘든 상황에도, 정작 엔진이 내려앉아 차를 쓰지 못하게 되어도 그들은 늘 주문처럼 미소와 함께 ‘주게레’를 되뇌었다. 누군가 밤새 운전해서 트럭을 가져왔고 또 누군가 원래의 차를 대체할 차를 타고 돌아왔다. 이게 가능한가 싶은 상황인데도 그들은 그저 괜찮았다. -pt.2 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