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로변 길목, 차 두대가 양방으로 마주 오면 길 양쪽 시멘트 건물 벽이 닿을까 말까 하는 좁은 도로 그 저편에서, 내가 지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서 있던 예의 바른 소형차가 그 고운 색이었다. 그 차 가까이 도착해 손 들어 인사하며 운전석을 주시하니 젊은 30대 초반의 안경 쓴 남자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 양끝이 위로 향하고 미소가 얼굴 근육사이로 번졌다. 이건 오늘의 공짜 선물이다. 스치듯 지나가는 분홍 차의 옆면에 마가레트 흰 꽃 그림이 보였다. 그러자 바비 인형과 취향을 공유한 차주인에 대한 상상이 예열도 없이 바로 발동이 걸렸다. 자기 여자 친구의 차를 모는 중인가? 그런 차를 가진 여자친구라면 그것도 좀 별나지 않은가.
남 시선을 개의치 않고 사는 사람은 긍정적 표현으론 용기 있고 개성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라 하고 반대로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눈치 없는 부류에 놓기도 한다. 나는 남들 때문에 제멋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좋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내가 좋다는데 어쩌라고. 꽃분홍 차를 몰고 가던 그 젊은이가 멋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으면 남 눈치 안 본다. 그래서 아줌마, 아저씨라고 뭉퉁그려 불려도 피부에 착 붙는 때가 온다. 제멋대로 스트레스를 풀어 민폐가 정도를 넘는 연령대에 들어선다. 살만큼 다 살아보고 그제야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말고, 용기가 없고 남의눈이 두려워 자기 삶을 다른 이의 시선에 쪼개 넣지 말아야 할 시기는 청춘시대다.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실험도 해봐야 결과를 얻는다.
갑자기 수년 전 집에 온 젊은 부부생각이 떠오른다. 2살 배기 첫 아이가 있던 초년 부모였는데 그 훤칠한 애기아빠의 분홍 바지와 주황색 리넨 셔츠가 얼마나 멋졌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분홍색 셔츠를 사준 계기가 되었다. 짤막하고 배가 나온 남편이 입은 분홍 셔츠는 내 기대감을 완벽히 배신했다. 역시 젊을 때 해봐야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