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와 마찬가지로 3년 후 둘째를 임신했을 때 주중 2일 정도 마을에 오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다. 정해 놓은 병원도 출산을 맡아줄 주치의도 없이 예정일 전후로 양수가 터지기 시작하면 서둘러 가방에 급한 물건만 넣고 병원으로 2번을 달렸다. 응급실을 통해 들어간 분만실이라 의사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첫째 아이는 산모 20여 명이 줄을 서서 순서대로 아이를 받아 수유실로 가야 했던 대학 병원에서, 둘째는 고급 호텔로 바꿔질 계획에 곧 문을 닫을 예정이었던 로마 중심부 오래된 병원에서 산모가 단 3명이었던 어느 가을에 출산했다. 그러다 6년이 지나 셋째를 가졌을 무렵, 내 나이도 있고 해서 임신 초기부터 출산까지 도와줄 담당의사를 찾아 그가 일하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을 계획을 처음으로 세웠다.
그에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다. 예정일이 다가오자 날짜를 보더니 다음 일요일에 병원에 와서 분만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 유도 분만을 시작하기도 전에 진통이 왔다. 아기가 알아서 나오겠다는 신호였다. 분만실에서 힘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나고 의사, 간호사, 조산원 모두 뭔가 주고받는 얘기가 들렸다. 그리곤 내 의사가 다가와 수술실로 옮길 거고 제왕절개를 서둘러야 한다고 알려줬다. 아기 맥박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순식간이라 몇 분 같기도 몇 초 같기도 하다. 내게 마취를 한 것 같은데 갑자기 생전 느껴보지 못한 냉동실에서 갓 나온 쇳조각이 배를 가로지르는 차가움을 느꼈고 바로 이어 내 뱃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알았다. 마취가 되기도 전에 의사가 내 배를 갈랐다는 걸.
아기의 호흡곤란 시간이 경계선을 다가갔고 내 몸은 충격 때문인지 회복될 기세가 없었기에 보통 3-4일 후에 퇴원시키는 병원인데 우린 2주일을 입원해 있었다. 퇴원하던 날 소아과 의사는 아기에게 앞으로 나타날 여러 신체, 정신적 문제들을 조심스레 설명했는데 한 달 후 다시 만났을 때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안 오셔도 됩니다. 아기가 완벽히 극복했어요. 아주 건강합니다.” 우리 아기의 응급 처치가 1초라도 더 지체됐다면 아마도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었을 거라는 상상을 수백 번 더 했다. 내게 마취가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배를 가른 그 의사가 내 딸을 살렸다는 생각도 수 백 번 했다. 그의 대담함이 고맙고 그의 무모함을 용서한 지 오래다. 몸이 회복된 후 인사를 하려고 병원을 다시 찾아갔다. 바쁜 듯 보였으나 반가워하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제왕절개 하나 하고 올 테니 잠시만요.” 그리고 사라졌다. 그 의사의 이름은 ‘Cesare(영문명 Caesar)’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