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끈적과 보송보송

by 전명숙



끈적거리는 걸 찾아본다. 딱풀, 녹은 아스팔트, 침, 땀, 코딱지(남편은 코딱지를 침대 뒷벽에 붙이는 더러운 습관을 안 고친다). 먹는 것도 있다. 껌, 설탕, 꿀, 엿, 참기름. 다시 말해 끈적이는 게 다 나쁜 건만 아니다. 난 찹쌀이 맵쌀보다 더 좋고 떡도 인절미가 씹는 맛이 일품이다. 게다가 풀이 없는 세상은 문제가 된다. 스틱커도 접착성분이 들어간 거니까 풀 패밀리다. 운송업계가 붕괴할 수 있다. 배송 전지를 어떻게 붙일 것인가?

다음은 보송보송이다. 아기 피부, 탈크, 햇볕에 잘 마른 이불 홑청, 도화지, 새로 산 공책, 나무 숟가락, 청소기 돌린 바닥, 샤워 마친 피부. 어떻게 보면 보송보송한 세계를 우대하는 듯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의도는 아니다. 그런데 보송보송과 끈쩍끈적 사이에서 차별과 적대심이 한쪽으로 몰리는 시기가 있다. 7월과 8월의 한국 여름.

파 한 단을 사러 시장에 갔다 와도 그 사이 흘린 땀으로 같은 옷을 두 번 못 입는다. 목욕을 금방 마쳤는데도 5분 후면 도루묵이 된다. 실내 온도 27도에 습도 79도면 모든 게 끈적끈적해진다. 한국 밖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불쾌지수’라는 건 결국 ‘끈적끈적 지수’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효과가 다르다. 끈적끈적한 관계라면 뭔가 살을 맞대고 쫀쫀하고 뜨겁고 온도가 있는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니게 느껴진다. 그럼 보송보송한 관계를 느껴 보자. 이게 뭐지 싶은 의문이 생긴다. 서로 접촉도 없고 깔끔하고 열이 감지되지 않는다. 이 둘은 마치 열정적인 연애와 플라토닉한 사랑의 표현으로 구분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세상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과 절대적으로 나쁜 것으로 구분할 수 없는 이유다. 그 사이에서 양쪽 방향으로 수시로 옮겨 갈 수 있는 역 전환은 언제냐, 어디서냐에 달려 있다. ‘끈적’이 필요할 때도 있고 ‘보송’이 차갑게 들릴 때도 있으니 뭐든지 적당히 받아들이며 살면 된다. 미지근함보다 뜨겁고 차가운 건만 찾는 것도 잠시다. 때가 되면 다 일상생활에서도 중용을 실천하게 되는 스스로를 만나게 된다. 적당한 게 적당하다.

25도와 45도. 전자는 실내 온도이고 후자는 습도다. 7월 중순, 아침 7시에 내 방의 온습계에 보이는 수치다. 보송보송하고 쾌적하다. 서울의 장마를 감내한 후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지구 반대편의 나의 집은 잠들기도, 아침에 눈을 뜨기도 문제가 없다. 한국의 여름을 견뎌낸다면 어디서든 살 훈련이 끝나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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