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는 귀가 길다

1. 율리시스

by 전명숙



당나귀를 탄 동네 노인이 집 앞 숲속 길을 지나가는 걸 신기하게 처음 봤을 때는 나도 몇 년 후에 당나귀와 함께 살 줄은 몰랐다. 체구가 작은 그 노인은 안장도 없는 당나귀를 타고서도 의자인 양 편해 보였다. 사실 그게 안락하지는 않다. 타 보고서 알았다. 장작으로 쓸 나뭇가지를 모으러 일주일에 한 번씩 숲으로 가는 당나귀 탄 노인은 그분 외에 또 있었다. 마을 목수의 아버지도 당나귀 등에 올라 숲으로 들어가곤 했다. 펠리니 영화에 나올 만한 흑백 이탈리아 시골 장면처럼 서울 촌사람의 눈에는 이국의 목가 풍경이었다.

시골의 정서는 소리도 달랐다. 아침저녁으로 지나가는 양 떼와 양치기 개들의 등장도 그랬고, 보이기 전에 먼저 들려오는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양들의 종종걸음에 맞추어 실로폰 소리처럼 다가오고 멀어지는 것도 색깔을 더했다.


수의사 시동생이 아이들에게 당나귀를 사주고 싶어 했다. 이웃 마을에 찾으러 갔다. 수컷밖에 없다는 주인 얘기에 망설임도 잠깐, 깎아 주겠단 말에 혹해서 그냥 사 버렸다. 오래 후회할 실수였다. 속으로 '너네, 잘 걸렸다' 했을 주인장은 건초 한 더미도 덤으로 집까지 운송해 준다고 우리를 꼬셨다.그래서 어느 초여름에 우리 집에 당나귀가 생겼다. 트랙터의 속도로 30분 걸리는 옆 시골에서 데려온 새끼 당나귀의 이름을 율리시스라 지었다.

어미 곁을 처음 떠나는 어린 동물의 마음에 두려움이 박혀 있었다. 인간과의 차이라면 얘들은 적응을 빨리 한다. 생존의식이 앞서니까. 처음엔 먹지도, 1미터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게 피해 다녔다. 오래지 않아 우리가 생명줄이라는 걸 알게 되면, 따라붙기 시작했다. 아기 고양이, 강아지는 새 집에 도착하면 바로 졸졸 따라다니지만, 산에서 데려온 멧돼지 새끼도 다가가면 온 힘을 다해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다가 하루가 지나면 발자국 소리에도 킁킁거리며 뛰어온다. 어린 율리시스도 이름을 부르면 가까이 왔다. 말 사육으로 유명하고 승마 클럽이 넘쳐나는 동네인 이곳에서 우리는 당나귀가 더 좋았다. 잘 아프지 않고 무엇이나 다 잘 먹고, 40도를 향해 치솟는 8월의 더위에도 올리브나무 사이로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그 모습이 지중해 풍경을 완성하는 절대적 요소였다.


당나귀는 말보다 친근하다. 키도 작은 편이고 이동과 노동을 도와주는 실용적인 동물이다. 지중해 산골 좁은 길을 오르고 내릴 수 있어 길이 없어도 잘 다닌다. 그럼에도 사라져 간 당나귀가 인기 동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불과 20여 년 전이다. 우리 동네의 두 노인이 돌아가시고 우리 집에만 한 마리 있던 당나귀였는데 그 이후 십 년 만에 여기저기서 수십 마리가 유행처럼 늘어갔다. 일도 안 한다. 그냥 ‘당나귀 치유법’이라고 부르며 주말에 사람들과 숲으로 산책하는 프로그램에 동원된다. 팔자가 폈다. 율리시즈로 시작한 우리 집 당나귀 족보는 제피, 바베트, 티탄, 그리고 이름을 짓기 전에 팔린 다른 당나귀까지 포함해 다섯 마리가 있었다. 그들과 지내며 당나귀는 귀가 길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그리고 오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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