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평화문화축제 - 기획자 생태계 (거리예술 분야) 연구 보고서
0. 서문
위기라는 이름의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다. 우리는 봄부터 가을까지를 시즌이라고 부르며 바쁘게 작업을 해오던 거리예술 창작자들이었다. 수년에 걸쳐 우리의 계절이 익숙해질 즈음, 코로나19가 찾아왔다. 마치 긴 겨울처럼 위기라는 이름의 이 시기는 모든 계절을 지배했다. 수많은 것들이 멈추고, 비로소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가 예술이라는 이름의 작업을 공유했던 거리는 어디였으며, 그 거리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본 연구는 거리예술 창작을 매개하고, 관찰해온 기획자로서 자기 배려의 관점을 가진다.
본 연구는 기획자의 입장과 관객의 입장에서 경험했던 거리예술의 사례들과 연구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았던 이론적 접근들을 오가며, 멈춤의 시간 동안 지금까지 만났던 거리예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거리예술을 내다보는 짧은 단서들을 찾는다. 거리에 온갖 예술이 가득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와 우리에게 거리와 그곳에서의 예술이 지닐 의미들을 살펴본다. 거리예술을 하는 우리에게 거리는 어디였을지, 그리고 그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위기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들로부터 어쩌면 우리가 잊었던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새로이 조망한다.
1. 공간에서의 예술, 거리예술
거리예술을 하나의 예술 장르로 분류하고 이를 타 장르와 구분하며 미학적 특징을 찾으려는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되고 있다. 누군가 거리예술이 무엇인지 물을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공간에 대한 해석을 통한 정의로, 거리예술을 극장의 공간이 아닌 장소에서의 예술; 일상과 맞닿아 있는 장소에서의 예술; 광장과 거리, 골목과 공원 등의 야외 공간 혹은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예술의 행위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의 경우 현대적 양식의 거리예술을 특정한 예술의 형태이자 분류로 보고 다양한 정책적 지원과 사업들이 앞서 이루어졌는데, 국가마다 거리예술을 이를 ‘거리의 예술(Arts of/from/in the Street)’, ‘거리예술(Street Arts)’, ‘야외예술(Outdoor Arts)’, ‘공공공간의 예술(Arts in Public Spaces)’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거리예술의 공간이 지닌 유형과 상징들을 살펴보며, ‘거리’에 대한 정의와 해석을 통해 ‘거리예술’에 대한 이해를 확장해보고자 한다.
- 광장에서의 예술
거리예술계 종사자들은 거리를 단순히 공연의 장소나 공연의 장소를 대체할 장소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공간들을 창작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 이 공간은 거리예술을 독자적인 예술 활동이 되게 하며, 공간과 장소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의 형식으로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거리’는 단순히 ‘도로’ 혹은 ‘도보’의 개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공공공간’, ‘공원’, ‘광장’, ‘주거지구’, ‘공터’ 등으로 확장된다.
처음 거리예술을 만났던 것은 내가 살던 도시의 중앙공원에서였다. 신도시 개발 계획에 의해 설계된 도시인 과천은 지역 내 모든 동들이 중앙공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횡단보도를 한 번만 건너면 연결될 수 있는 이 공원은 시민들에게 모두를 위한 광장의 역할을 했었고, 무대와 객석이 나뉘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보았던 첫 경험이 바로 이 공원이었다. 공원에서의 공연에 적합하게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공연자를 둘러싸고 있었고,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면 그 순간만큼은 그 장소가 일상을 넘어선 일탈의 공간이 되었다. 공연들은 있는 그대로의 장소와 경치를 재료로 활용(차경, 借景)했다. (1998)
광장의 경험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장터가 소통의 장이었던 시대의 마당극이 그러했고, 평화주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히피 문화에서의 탈사회 공간이 그러했다. 우리에게 광장은 민주화 운동과 2002년 월드컵의 상징이었고,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광장에서의 경험들은 수많은 공통의 경험들을 만들어내며 그 의미를 확장했다. 광장은 모이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공간의 성질을 넘어선 개념이 되었다. 덴마크의 거리예술축제 감독 트레보 데이비스(Trevor Davies)는 광장을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정의하며, 성명의 발표나 중대한 정치적 사건의 발생지, 큰 상징적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축제가 있어야 했던 공간이 어느새 노란 나비의 물결로 가득해졌다.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이들과 함께 우리는 울었고, 외쳤으며, 행진했다. 이 모든 장면들은 축제에서 보았던 거리예술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그 순간 같은 공간에서 공통의 경험들을 만들어내며, 함께 기억해야 할 것들을 다짐했다. 잠시나마 광장은 모두의 것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의 광장은 이전의 광장과는 다른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갈 법한 공간들이 위로와 공감의 기억이 스민 장소들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의 축제 역시 그 공간의 기억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2015)
- 삶의 공간에서의 예술
누군가의 삶을 훔쳐보고 싶은 욕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에서부터 성인이 된 이후의 영화까지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것을 해보지 않은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삶과 맞닿은 공간에서의 예술 역시 그러한 욕구들을 반영하고, 장소와 공간, 인물을 통한 대리의 경험과 동일시의 경험을 만들어낸다.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의 소도시인 타레가(Tarrega)에는 유난히 빈 집이 많다. 그 도시가 유일하게 외부의 방문객들로 붐비는 기간인 축제 ‘피라타레가(Fira Tarrega)’에서 극단 캄차카(Kamchatka)의 이동형 거리극 공연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을 법한 빈 터에서 도시의 옛 흔적을 더듬고, 마치 난민이 된 것처럼 신분증을 반납하고 태우는 의식을 거쳐, 누군가의 삶의 자리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편의 도시 여정이었다. 제법 자주 방문했던 도시여서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찰나에, 무심코 지나쳤던 삶의 단면들을 파노라마처럼 마주할 수 있었다. (2014)
누군가의 삶을 다루어내는 모든 종류의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예술의 이름으로 삶의 공간에 감히 침범한다는 것은 제법 무거운 일이다. 예술을 매개로 관계 맺기를 수행하는 공동체 예술 작업들을 거리예술에서도 빈번하게 마주할 수 있다. 단순히 장소와 그 장소의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을 때 이 작업들은 더욱 빛났다.
을지로의 좁은 골목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이전에는 온갖 일들을 다 만들어냈던 장인들이 어쩐지 헛헛한 뒷모습만 남긴 채 외로이 서있었다. 이들에게 쑥스럽게 인사를 건네고, 함께 달달한 다방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예술가들이 작은 축제를 열었다. 골목 구석 작은 공장의 사장님에게서 주물을 배우고, 커피를 배달하던 이들이 쉬던 평상에서 춤을 췄다. 달고나를 천천히 저으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노래를 불렀고, 어쩌면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가보지 않았을 곳에 조심스레 방문해서 그들의 흔적을 매만져볼 수 있었다. (2015)
- 잃어버린 광장, 잃어버린 삶
코로나19 이후 누군가에게는 표현과 해갈의 장이었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발언의 장이었던 광장이 이제는 위협의 장소가 되었다. 광장을 무대 삼던 거리예술 역시 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광장에서의 예술이었던 거리예술은 새로운 질문을 마주한다. 광장을 잃은 오늘을 넘어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인생을 통틀어 겪어보지 못했던 전염병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모이기를 감행한 이들의 이기심이 있었다. 잠시 잠잠했던 사회는 다시 감염의 위험에 걷잡을 수 없이 노출되었고 광장은 그 날 이후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모이기에 앞서 고려해야 할 조건들을 수 없이 나열한다. 어쩌면 내가 감염될 수도, 어쩌면 내가 숙주가 될 수도 있다. 광장이라는 공간은 어쩌면 공포의 상징이다. 언제쯤 다시 광장에 모일 수 있을까. 그때의 우리는 이전의 우리와 같을까. (2020)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은 삶의 많은 영역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터를 잃었고, 모임과 만남의 자리는 기약 없이 뒤로 미루어지거나 스크린을 거친 만남으로 대체되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눈만 내놓은 채 낯선 이들을 경계했고, 이전에 익숙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이제 일정한 간격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낯선 삶의 방식은 예술과 창작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장르의 특성상 관객과의 거리가 밀접한 요소가 많았던 거리예술은 속수무책으로 빠른 속도의 변화를 마주해야 했다.
비주얼씨어터꽃의 거리극 ‘마사지사’는 본래 관객들에게 마사지를 직접 해주며 작품의 주요한 메시지를 끌어내는 구조를 지니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관객의 참여를 배제한 상태의 작품 ‘셀프 마사지사’를 새로이 만들었다. 공연의 중간에 한쪽 벽에 ‘미안합니다. 이 시국에 도저히 관객들이 참여하는 장면은 도저히...’라고 큰 글씨로 적어 내리며, 잠깐 모든 것이 멈춘 순간을 만든다. 공연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들은 창작과정에서 매일 변화했던 코로나19의 상황이 공연의 장면과 구성 요소들을 시시각각 변화시켰으며, 그 장연들을 어떻게 다뤄낼지에 대한 창작자들의 의견 또한 서로 달라서, 위기와 공포에 대해 서로가 어떻게 인식하고 안전한 방식에 대한 기준들이 어떤 혼란을 겪고 있는지 마주했다고 했다. (2020)
2. 소외의 광장에서, 또 다른 광장으로
준비 없이 찾아온 위기라는 계절이 창작자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창작자들의 실험 과정을 잠시 엿보며, 관찰과 대화의 방식을 통해 거리예술이 새로이 가지게 될 미학과 가능성들을 돌아보고자 했다. 이들이 공연을 통해 새로이 마주하고 있는 광장과 삶의 공간은 어떤 모습이며, 이 공간에서의 창작이 작품의 미학과 가능성을 어떻게 확장하고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은 영사기가 돌아가는 작은 극장이 있는 이탈리아의 한 마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던 이들을 위해 광장으로 영사기를 돌려 모인 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며, 광장이 잠시 모두를 위한 광장이 되게 한다. 이 장면은 광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잃어버린 광장은 어쩌면 우리의 광장이 모두의 광장이었는지 살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육아로 삶의 모습이 통째로 바뀌어버린 한 창작자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말했던 예술들이 과연 누구에게 닿고 있는지 돌이켜보았다. 그는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자신에게는 원래 기회가 없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 정한 시간에 맞추어, 누군가 정해진 장소까지 나가서, 그 공연들을 볼 수 있는 일들은 그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대유행 이전에도 이미 광장을 누빌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던 이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경계 없이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으며, 누구나 관객이 될 수 있다며 기치를 내세웠던 거리예술은 어쩌면 시간이 흘러 양식화되고, 그 만남의 방식을 고착화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때이다.
제네럴쿤스트의 ‘피켓라인(2020)’은 이미 소외되었던 목소리들에 주목했다.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대규모의 행사가 아니라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주체를 아주 작은 미니어처 인형과 깨알 같은 글씨의 손 피켓으로 대체했다. 그 피켓에는 전염병이 사회를 덮치기 이전부터 이미 거리에 나올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이들과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거대한 광장에 숨겨진 아주 작은 목소리들을 찾기 위해 관객들은 구석을 살펴야 하고, 몸을 구부려서 이전에 보지 않았던 곳들을 봐야 하며, 읽기 힘든 작은 글씨들을 더듬어내야 한다. ‘피켓라인’은 이 작업이 공연인지 전시인지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은 채, 도리어 관객들이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공연으로 만들어낸다. (2020)
한편으로 공연의 일시적 온라인화는 이러한 소외의 현상을 잠시 해소시켰다. 물론 무대의 현장감과 실제성을 대체할 만큼의 기술은 아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공공공간, 또 다른 이름의 광장이 지닌 가능성들이 속속들이 확인되었다. 온라인 콘텐츠들을 사실 이전에도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다만 대유행이 사회 안에 여러 제약과 규범들을 새로이 도입한 이후, 온라인을 통해 예술을 접하는 관객들이 많아지고, 그 층이 넓어진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연의 현장보다 조금 쉽게 자막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좁은 계단과 문턱을 지나지 않고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정해진 시간 외에도 언제든 관객이 될 수 있었다.
비대면의 수단으로서의 온라인을 넘어서서 관람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거리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들을 구체화한다.
보이스씨어터몸MOM소리의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는 관객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소리극 공연이다.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햇살과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를 들으며 잠시 머무르는 시간을 만든다. 해먹에 누워 잠시 햇빛과 바람을 느끼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의 울림이 내 안의 어린아이를 토닥인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의 자리가 마음을 다독이는 소리의 자리로 관객을 초대한다.
‘한 사람을 위한 자장가’는 전작 ‘숨, 자장가’의 새로운 버전으로 관객의 숫자를 한 명으로 줄이고, 작품이 지닌 표현의 방식과 관객 간의 만남 방식을 재조직하여 기존의 보이스 퍼포먼스가 공간을 다루어내고,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과정들을 완전히 바꾸어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보다 친밀한 관계 설정, 소리가 지닌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들은 창작자들에게 흥미로운 요소일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수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펼쳤을 때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내밀한 장면들이 안정적으로 진행되었고, 향후 지속적으로 공연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가 만나야 할 관객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3. 새로운 광장 찾기
코로나19 이후 공간의 민주화가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중요해졌다. 공간의 시민권과 연관하여 예술은 그 역할과 가능성을 돌아볼 수 있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랬던가 반문한다. 그리고 광장을 이미 잃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우리의 미래에 모두의 광장은 가능한가. 소리의 광장과 적막의 광장, 빛의 광장과 어둠의 광장, 느린 광장 혹은 멈춘 광장, 냄새의 광장과 촉각의 광장, 계단 없는 광장, 한 사람을 위한 광장, 아주 작은 광장과 아주 큰 광장, 안전한 광장. 새로운 광장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광장에서의 예술을 상상한다.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공간을 만들기를 제안한다.
- 거리예술의 다양성 실험
한국의 동시대 거리예술은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실험을 한다는 기치를 표방하며 다원예술로서의 지향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점차 체계적인 장르 지원과 다양한 사업 구조들이 갖추어짐에 따라 이러한 탈 경계적 성향은 또 다른 경계를 만들며 어쩌면 그 장르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거리예술의 방식들을 돌아보며 보다 다양한 관객과 공간에서의 창작을 실험해야 할 때이다. 이를 통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생동하는 장르로서의 거리예술을 지향할 수 있을 것이다.
- 접근성에 대한 지표 개발
제너럴쿤스트와 보이스씨어터몸MOM소리의 작업은 거리예술이 기존에 만났던 관객들이 아닌 또 다른 대상에 주목했다. 공연이 관객들을 만나는 창구를 ‘축제’로 대표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리가 이야기하던 거리예술의 공간은 획일적이고, 일방적이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의 거리예술은 다양한 창구와 채널을 통해 관객들과의 접점을 마련하며, 거리예술에의 접근 가능성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포용적인 관점에서 다채로운 양식의 거리예술을 창제작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향후 거리예술의 관점에서 평화란 이러한 가능성들을 중심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거리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미래의 거리예술 공간과 관객들에 대해 다소 개념적인 접근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들을 찾아보고자 했다. 다만, 여전히 유효한 여러 거리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드넓은 광장에서 자유로이 거리예술로 관객들을 만나던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여전히 우리는 만남과 대면을 통한 예술을 추구하며, 서로 다른 규모의 작업들이 여러 모양새로 공존하며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전할 것을 기대한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와 방법을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는 과정들이 남아 있지만, 언급한 사례들이 앞으로의 거리예술을 조망하는 단서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찾아내고, 이 질문에 도달하는 과정을 함께 걷기를 제안하며 글을 마친다.
2020 서울평화문화축제, 도봉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