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질문들

축제 메뚜기들과의 만남, 질문, 대화

by 프로듀서 임현진

매년 연말이면, 문득 보고 싶어 지는 동료들이 있다. 공연예술 축제의 현장에서 스태프로 처음 만나, 온갖 축제들을 다니며 일하는 '메뚜기들'. 우리는 스스로를 축제 메뚜기라고 불렀다. 봄/가을 철을 따라 이동하며 마주하는 축제들에서 땀 흘리며 함께 판을 만들어간 동료들이다. 축제 메뚜기로 일하면 대부분 단기 계약 스태프로 여러 축제를 접하게 되는데, 거대한 일을 함께 만들어갔다는 성취감과 동시에 종종 존중받지 못하거나, 축제를 향한 열정이 큰 나머지 실망을 하게 되기도, 억울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하기도 한다. 정규직이 아닌 우리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상황들을 그저 넘길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업무의 내용이나 양으로만 따지고 보았을 때 그 서운함은 더해진다. 대다수의 축제는 이런 메뚜기 노동자들이 없이는 완성되기 힘듬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메뚜기들과 모여 송년회를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때로는 축제판의 여러 일들을 회고하며, 우리가 바라는 축제에 대해 성토하기도 했고, 잊지 못할 순간들을 같이 꺼내며 한바탕 웃어제끼기도 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야기들이 쏟아지곤 하는데,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우리만 알고 있기가 좀 아쉽기도 하다. 우리의 작은 모임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일을 이어나가기 위해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는지 등이 주된 이야깃거리가 된다. 우리는 계속 일하고 싶다. 축제라는 장이 우리에게 행복한 자리가 될 수 있기를, 우리가 만들어내는 행복만큼이나 우리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지난 모임에서는 [올해의 잊지 못할 순간]을 사진으로 공유하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묻어버리고 싶은 시간과 반짝였던 기억들을 차례로 이야기하며 한 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화두로 대화를 이어갔다. 이 질문들은 지극히 보편적이면서도 어디서나 꺼내어 서로 이야기를 나눌법한 주제들이었기에 기록하고 공유해 둔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프로듀서의 역할일까,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우리는 우리의 직무를 어떻게 정의할까. 프로듀서로 해왔던 일들을 나열해 보고, 그중에서 내가 지향하는 프로듀서의 직무를 정리해 보기. 프로듀서의 직무는 너무나 다양한 것들을 이미 포함하고 있기에. 공통점은 진취적인 계획 세우기. 사람과 사람 잇기.


예산을 책정하는 게 조금 부담되는데 조율점을 모르겠다. 협상해서 깎일 걸 생각해서 최대로 쓰느냐, 정말 정직하게 하느냐. 합리적인 예산으로 제안하는 것이 당연한데, 예산을 너무 절감하려고만 하는 일부 기관과 조직에 도리어 문제가 있다. 물가도 상승하는데, 예술계의 과업에 대한 예산은 왜 늘 제자리인가.


어떤 선배가 좋은 선배일까. 좋은 선배가 될 수 있을까. 함께 성장하며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까. 내 주변에는 왜 좋은 선배가 없을까. 정말 없을까. 아니 잘 찾아보면 있을지도. 좋은 선배는, 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도와주고,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나누어주고,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선배. 나를 시샘하거나 견제하지 않는.


나만의 스트레스 대처법. 어떻게 화를 내는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다루어내는가. 어쩌면 스트레스와 화를 제대로 다루어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달리다가 무심코 어느샌가 불쑥불쑥 드러나는 감정들에 당황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운동, 만남, 쉼, 새로운 경험. 그렇지만 궁극적인 해결 그것 역시 필요.


작업하는 아티스트와 맞지 않다고 느낄 때, 어떻게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가. 잘 헤어질 수 있을까. 다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터라 무언가를 '안 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래도 스스로가 건강해야, 앞으로 쭉 이 일을 해나갈 수 있지. 맞지 않는 가치관을 마주했는데도 타협하지는 말자. 용기를 내.


시간관리. 쫓기지 않고 일하는 것, 내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것. (못해). 일을 미뤄두고 초조해하지 않는 것. 그래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드는 것. 종종 '바빠서 아플 시간도 없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길. 캘린더에 일주일에 하루 나만을 위한 시간 가지기. 오전 9시 - 오후 6시 업무 시간 지켜보기.


써 본 업무툴 중 가장 유용했던 것/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진정한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지-만. 구글 드라이브, 공동 문서, 노션과 슬랙 등 민주적인 대화와 공유, 과정에 대한 공동의 기여를 토대로 한 디지털 도구들이 최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챗지피티 역시 빼놓을 수 없지.


돈을 어떻게 버는가. 돈을 벌기 위해 프로젝트들 다양하게 하는 것, 해보지 않은 일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자꾸 이야기하는 것, 자기 PR. 그리고 어디선가 들었던 말,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돈 버는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그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지.


취미가 무엇인가요. 많은 경우 우리는 누군가의 여가를 위해 일하지만 정작 취미가 없기 일쑤. 삶과 일을 조금 분리해 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취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일 바깥의 나를 찾는 시간. 올해의 목표를 취미 찾기로 삼은 지 벌써 몇 년째. 그래서 당신의 취미는?


하나하나 사라져 가는, 변해가는, 사랑하는 축제를 지키는 방법은? 우리가 축제에서 일했던 것은 축제가 우리에게 어떤 부와 명예를 주어서라기보다는, 축제가 지닌 가치와 힘을 믿었기 때문. 어쩌면 그런 일들이 사라질 때 우리도 스스로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사라질 축제여 사라져라. 우리는 축제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의미 있는 장을 계속 이어가고자 한 것이니까. 축제는 사라져도 나는 사라지지 않지.


효과적으로 화내는 법. 유난히 화가 많이 났던 한 해. 무력감과 분노. 나를 추동하는 것은 결국 사랑과 분노였는데,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상황의 개선과 변화. 화내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나보다 후배인 사람과 함께 일할 때. 내가 하면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후배 친구가 하면 4시간 이상 걸리는 일, 또는 설명이 너무 귀찮고 어려울 때, 어떻게 잘 시켜야 할까? 나의 일을 잘 위임하고 신뢰해 주는 것, 그리고 오래 걸리더라도 길게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인건비 측정 어떻게 해? 나의 일은 어떤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받는가, 내가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투입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도 뭐 했는지 기록해 볼까? 시간, 과업... 데이터가 있어야. 학술용역단가와 시간당 시급의 기준 사이에서. 어쩌면 제한된 예산 안에서 그 시간 안에 일을 다 할 수 있나 질문하는 것이 필요. 프랑스의 시간당 과업 범위에는 축제에서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법. 감정,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형용사와 명사, 감각, 경험, 가치관을 문장으로 엮어내는 훈련. 직무 역량을 넘어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는 새로운 자기소개의 글이 필요하다. 어쩌면 인생을 설명하는 글인데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당연. 늘 변하고, 늘 고민하는 정의가 오히려 우리에게 맞다.


(프로듀서 아닌) 관객으로 올해 가장 좋았던 작품. 단편선과 순간들, 몬몬읽기, 더 프레임, 십대들의 밤 산책, 잉여의 도시, 물질, 긴-연희 프로젝트. 새비지 콜로나이저.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공연들이 많았다. 거리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들에 대해서도 작품을 언급하며 종종 이야기하게 되었다.)


어느덧 이십 대가 평균연령이었던 우리가 대부분 삼십 대가 되었다. 우리는 제법 여럿의 동생들, 후배들이 생겼고 우리의 고민도 좋은 리더가 되는 법으로 옮겨가 있었다. 책임지는 리더, 좋은 프로듀서가 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가 우리의 건강을 해치지는 않기를! 기획, 기획자, 프로듀서라는 복합적인 정의를 지닌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잊지 말기를. 나를 돌보는 시간으로부터 세상을 돌보는 힘을 찾기를, (혹은 세상을 돌보는 힘을 발휘하며 그 힘이 나를 잘 돌보아주기를). 그리고 2025년은 효능감 넘치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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