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방식을 고민하는 결정은 가능할까
많은 것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멈춤의 선택을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판데믹으로 선언되고 몇 개월이 지나 어느덧 봄과 여름의 사이에 이르렀는데도 어쩌면 익숙해질 법한 이 시간이 아직도 어색하기만하다. 지난 상반기는 취소와 연기, 멈춤과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아직도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
이메일과 전화로 공연과 축제의 취소 연락을 받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올해 참여하기로 예정되었던 공연은 이제 모두 취소되거나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코로나19 관련 긴급 지원사업들이 도입되어 조금은 숨통이 트였지만, 앞날을 내다볼 수 없기에 상실감과 무기력은 여전하다. 객석 간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진행되고 있는 공연들도 있지만, 언제쯤 이전처럼 관객들을 자유로이 만날 수 있을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모두가 함께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상황을 마주한 취소와 연기의 방식은 다양했다. 주최/주관이 명확한 사업이 취소될 경우 취소 결정의 과정과 이유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던 적도 있었고, 어떤 사업들은 취소 결정을 내리는 주체가 누구이며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취소에 대한 보상을 약속받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년 사업에 다시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하거나 혹은 어떠한 약속도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통지하곤 했다. 취소가 될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 알 수 없었다. 취소하는 일의 주체가 내가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구체적인 국가적 지침이나 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 보다는 코로나19의 감염 증가 추이와 유사 사업의 대응 현황들을 참고해서 내부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공존의 방식을 고민하는 결정
취소를 처음 맞이했을 때 만난 벽은 ‘불가항력’이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저항해 볼 수도 없는 힘, 주로 천재지변이나 사회 통념 상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황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다. 우리는 이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정의한다. 불가항력은 계약 관계에서 주로 상호간의 책무가 없는 상황으로 해석되며, 불가항력으로 인한 계약 해지 시 ‘을’에 대한 ‘갑’의 지급 의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지난 3월 영국의 거리예술가협회(National Street Artists Association, NASA UK)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취소와 연기의 무게가 예술가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부당하며,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주최 측이 협상과 논의를 통해 보상책을 마련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국제공연예술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Performing Arts, ISPA)의 논의에서는 위기와 재난의 시기에는 불가항력과 관련 윤리적인 해석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이야기 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온라인 컨설팅 페이지에서는 불가항력에 의한 계약취소 시 ‘계약자유의 원칙’과 ‘공평의 원칙에 따른 손실의 분담’이라는 기준이 적용될 수 있음을 언급하며, 어느 일방 당사자에게 너무 가혹한 내용으로 이를 규정하는 것은 불리한 규정으로서 유효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불가항력에 관한 해석을 적용할 때 손실을 보상하는 범위를 △공연의 취소 시점, △공연의 준비를 위해 투입된 노력의 정도, △계약의 각 당사자가 공연을 위해 기 지출한 비용의 규모, △공연의 취소로 인해 입게 되는 손해의 정도, △계약 당사자의 경제적 형편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하여 결정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계약서의 조항들에 윤리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점은 지금의 상황을 떠나서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상황들이 우리 사회가 문화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들을 재조명하게 해준 셈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공존의 방식을 고려한 의사결정들이 절실하다.
멈춤을 넘어선 연대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되는 다원예술축제 쿤스텐페스티벌데자르(Kunstenfestivaldesarts)도 올해 행사를 3주 앞둔 지난 4월 15일에 결국 축제의 취소를 확정했다. 물론 유럽과 한국은 국가적인 격리의 방침이나 경제의 상황 등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 일관적인 태도
봄 축제들이 대부분 취소를 알리던 즈음에도 쿤스텐페스티벌데자르는 축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취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면서도, 취소 직전까지 아티스트 라인업을 충실히 전부 공개했고 모든 홍보 일정을 평소와 다름없이 운영했다. 축제가 취소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축제가 취소될지언정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일관된 의지의 표명이었다.
- 유령 티켓의 판매
축제의 취소를 알리며 이들은 축제의 역할 중 하나가 예술의 창작을 지원하고 생태계를 위하는 것임을 언급했다. 이에 축제는 온라인으로 ‘유령 티켓’을 판매하며, 이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예술가와 종사자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환원할 것임을 알렸다. 10유로부터 190유로짜리 패키지 격 티켓까지 금액을 선택해서 구입할 수 있었고, 해당 티켓 구입 시 별도의 제공 사항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후 축제는 일부 예술 작업을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있다.
- 사회와의 연대
또한 ‘유령 티켓’과 함께 함께 판매하는 ‘연대 티켓’은 브뤼셀의 민간단체인 두쉬플룩스(Doucheflux)에 기부된다. 이 단체는 머물 곳도 없는 상태에서 정부의 격리 지침을 따라야 하는 노숙인들을 위한 샤워, 세탁, 식사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그동안 쿤스텐페스티벌데자르의 프로그램들이 작품을 통해 사회의 사각지대를 드러내고, 소수자들에게 주목하곤 했던 것을 기억하면 축제에 제법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이 밖에도 많은 공연과 축제들은 단순히 행사의 ‘취소’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각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새로운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과 같은 방식의 공연들은 내년으로 연기하지만, 올해는 비대면의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며 제작 지원을 이어가는 등 축소된 형태로 축제를 진행한다’는 스페인의 거리극축제 피라타레가(FiraTarrega)의 안내문은 ‘취소’라는 말이 주는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공연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지만, 우리의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어질 것이라는 연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축제-공공 간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고민
기존의 코로나19 관련 피해 실태조사가 예술가, 예술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유럽축제연합(EFA)에서 시행한 코로나19관련 축제 연기 및 취소 조사는 축제와 주최측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설문을 찬찬히 보는데, 페스티벌에 필요한 것들과 의지의 선언에 이어 예술가-축제-공공 간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설계에 반영되어 있다. 수년 뒤 우리들의 축제는 어떤 모습을 할까?
• 연기/취소로 인한 재정손실의 규모는?
• 재정손실이 비용 감축/절감을 통해서 상쇄되는가?
• 재정손실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나?
(재원 변경, 보유했던 재원 사용, 협찬 제안, 소셜펀딩, 로비 / 티켓 판매, 후원 모금, 정부 기금 유치 등)
• 만약 공공 기금의 주체가 재정 지원을 약속한다면 아티스트들에게 사례를 계약대로 지급할 것인가?
• 축제 취소 시, 아티스트들은 어떤 부분을 보상받지 못하게 되는가? 이 경우 동일한 작품에 대해 올해 중 다른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아티스트와 축제 간의 관계는 어떤가?
• 유럽축제협회를 비롯, 각 국가의 관련 기관들이 참고할만한 정책적 해결책이나 구체적인 전략이 있다면? (예: 축제 취소 시에도 보조금을 전액 지원; 세금 및 부가세 납부 의무의 연기 혹은 면제; 고용된 인력의 인건비에 대한 보상; 자국의 프리랜서 아티스트들에 대한 보상; 보조금 선금 지급 등)
• 연기 혹은 취소에 대한 대안 프로그램을 진행했는가? (예: 온라인 채널, 아카이브 등)
• 이번 사태로 인해 어떠한 것들을 새로이 인지하게 되었는가? 이런 교훈들이 축제의 7년 뒤에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 이번 사태로부터의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 (예: 아티스트/관객/타 문화 영역/도시/후원기관 등의 관계 변화)
위기를 돌봄력으로 버텨내는 이들
코로나19로 인해 실제로 경제활동이 대부분 중단되고 실제적 대면활동이 불가능한 미국에서는 서커스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공유 구글문서를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제공할 수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리스트업되고 있다. 간혹 무료도 있지만 대부분 후원이나 소정의 등록비를 내면 링크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다른 것보다 대단한 것은 한 두 사람의 아티스트들이 해서는 어려웠을 일들을 여러 아티스트들이 협력해서 공통의 자산으로 만들어서 알리고,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https://docs.google.com/…/1pr6mBQYFEu1qHUZnSY6_eU10uR…/edit…
- 출처: Circus Every Damn Pandemic
한편, 유럽에서는 이런 훈련/교육 프로그램들 중 무료로 공개된 것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공동으로 업데이트 해오고 있는데, 이 리스트의 목적은 전문가/준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격리 중에도 자기 개발과 훈련을 이어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업을 홍보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https://docs.google.com/…/1XpqPXkYQh0xQyluQ-tNdx8SgAA…/edit…
- 출처 : Covid-19 Outdoor Arts Information, Questions & Advice Forum
공유화 공존을 통해 이 위기를 버텨내는 이들의 모습에서 돌봄력(그런 말이 있다면)을 발견했다.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하루에 한번 오지랖을 부리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고민이다.
하던 일들이 많이 중지된 지금은 할 일이 참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연대할 수 있음이 참 다행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는 지금을 버틸 힘과, 앞날을 그려나갈 힘이 모두 필요하다. 이는 예술 생태계 모두의 과제이다. 함께 살기 위한 여러 목소리들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게 머리를 맞대고 모여야 한다. 당장 우리의 삶이 버틸 수 있는 긴급책들을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관객과 창작자들, 종사자들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의 안전과 지속가능성을 점검해야한다. 나아가 재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들을 고찰하고, 전 인류/지구와의 동행을 위한 가치를 고민하며, 앞으로 예술계가 실천해야할 것들을 논의해야 한다. 겪어보지 않은 이 일들은 여전히 낯설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주했어야 할 일들이다. 주어진 숙제들을 실천으로 답해가며 다시 서로를 반가이 맞이할 수 있기를 매일 기다린다.
2020. 06. 월간 <한국연극> 기고글에 일부를 추가한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