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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랩 Jul 24. 2023

배운 덕후 헤르만 헤세에게 배우는 덕질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형은 내가 쇼팽을 좋아한다는 사실로 내 취향 전체를 단정 지을지도 모르겠어.”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라는 책 속 헤세가 카를 이젠베르크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분이다.


책을 읽을 때 줄을 긋고, 순간순간 떠오른 감상을 책에 낙서하듯이 적곤 하는데 ‘이 문장이 왜 좋지? ‘라고 적어놨다.


이런 순간들이 있다.


좋은 문장, 좋은 장면, 좋은 대사들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벅찬데 “좋다” 이상으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


“왜 좋아?”라고 물으면 “글쎄” 혹은 “모르겠어”로 밖에 답이 안 나오는 답답한 순간.


언어 표현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 감정을 ‘디깅’ 해내는 습관이 덜 발달해서일까.


요즘 제대로 좋아하는 대상이 구체화된 이후로, 이 좋아하는 감정을 ‘탐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났다.


요즘 좋아하는 대상이 구체화된 이후로(그렇다. 장하오와 제로베이스원이다), 좋아하는 감정을 ‘탐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났다.


도대체 이게 왜 좋은지, 어느 포인트가 나를 흔들었는 지를 정확히 알고 싶고, 나를 더 선명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버렸다. 단순히, 덕질의 시작 때문이라기보다 전부터 나를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이 좋은 촉매제를 만난 느낌이다.


아무래도 저 문장이 좋았던 이유는, 저 심리 상태가 이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로 내 취향 전체를 단정 지어버리는 사람들의 시선 앞에 좀 더 구체적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고 싶은 맘이 불쑥 피어올랐기 때문인 것 같다.


“안 그래도 무엇에든 잘 빠져드는 성격인데 가사가 라틴어라서 경도된 것도 있었죠.”


헤세가 자기가 어떤 타입인지, 어떤 포인트에서 쉽게 감기는 지에 대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자기 인식이 확실하게 되어있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쇼팽을 사랑하는 헤르만 헤세를 사랑하는 나’가 되어버렸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어서 음악을 들을 때는 가급적 마음으로 깊이 포착하고 정신으로 외우려고 해. 그렇게 몇 가지 중심을 잡아 내 감상의 위치와 출발점을 단단히 하려고. 미적 감각이 참 보잘것없지.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고, 다른 사람의 감각을 모방하는 것보다도 나아.”


좋아하는 데에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좋아하는 이유에도 ‘정답’이 없다. 그 대상을 좋아하는 수 천 , 수 만의 사람들이 다 같은 이유로 그를, 그것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헤세의  문장을 통해 나는 어떤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또 큰 깨달음도 얻었다.


내가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음악을 듣고, 누굴 좋아하고 또 그것들을 통해 어떤 감정들을 느끼는 건지 잘 포착해야지.


그건 나의 고유한 것이니까. 남들의 감상과 견해에 비해 보잘것없더라도 ‘내 감각’, ‘내 느낌’이기에 소중하다. 내 이유가 열등하다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 문장을 통해 배웠다.


‘그냥’ ‘몰라’는 없다.


헤세의 이런 노력이 그를 더 섬세한 문장과 표현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낸 건 아닐까.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확한 표현을 찾아내고 단어를 골라내어, 순수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 간 애정 가득한 문장들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가끔 남의 리뷰를 먼저 보고 그 리뷰에 끼워 맞춘 감상을 쏟아내거나, 내 감상이 별볼이 없어 보여 어디 드러내지 않은 적이 많은 것 같은데  참 많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진짜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고유한’ ‘나의 감상’을 적어 내려가야겠다.


“뭘 좋아해? 왜 좋아해? 왜 그렇게 생각해?”


라는 질문이 어렵고 낯설지 않고 싶다.


오래 생각해서 예쁘게 윤나게 벼린 문장으로 내 취향에 대해서, 나에 대해 빛나는 눈으로 설명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내 색을 드러내고 싶다.


늘 튀지 않으려고 뒤로 숨고, 내 취향이 뭔지 잘 몰랐던 나를 뒤로 하고,


“아무거나, 너 좋은 걸로 시켜”라고 발 빼지 않고, “나는 칼칼하고 고기 들어간 거 좋아해. 먹고 나면 기분이 개운해지거든. 술은 맥주가 제일 좋아! 나 맥주 먹고 싶어!”라고 주저 않고 말하고 싶다.


내가 나를 선명하게 표현해서, 남들도 나를 특색 있게 묘사해 줄 수 있는 그런 근사한 사람이고 싶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그 순수함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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