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비행에 선배라니
2011년 가을, 나는 드디어 내 몫의 서비스 구역을 가지고 일을 하는 진짜 승무원이 되었다.
비행 실습으로 단거리 한 번, 장거리 한 번을 같은 반 동기들이랑 다녀온 뒤 정식으로 브리핑 시트(그날의 목적지, 현지 시간, 비행시간, 식사 메뉴, 담당 구역, 서비스 순서, 강조사항이 나와있는 양식, 매 비행마다 그날의 팀장이 배정해 준 위치에서 근무하게 되는 방식으로, 비행 전 날 본인이 어디에서 일하는지 확인하고 그 근무에 맞는 준비를 해간다.)에 내 이름이 찍혀있었다.
[YAR (근무 위치) 장보윤]
Y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말하고 A는 비행기의 A존 즉 최전방, R은 RIGHT SIDE 즉 오른편을 의미한다.
일반석 앞쪽 오른쪽 구역이 내 담당 구역이라는 뜻이다. 그 구역에 있는 손님을 내가 도맡아 서비스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신입 승무원은 늘 이코노미 클래스 가장 앞쪽 오른편을 담당한다. 그 비행기의 부팀장님 혹은 이코노미 최선임 승무원과 함께 일을 한다. 신입이 헤매거나 사고를 치면 바로 수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의 첫 비행은 중국 우한으로 가는 퀵턴 비행이었다.
퀵턴이라는 것은 비행 패턴을 말하는데 그날 목적지로 갔다가 손님들이 다 하기한 후 청소를 하고 새로운 식사를 현지에서 실어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 패턴이다. 현지에서 탑승한 새로운 손님들과 함께 말이다.
우한까지 가는 비행기는 소형 비행기여서 총 배정된 승무원이 6명이었고, 복도가 한 개만 있는 작은 비행기였다.
짧은 단거리 비행 동안 중국 입국 서류, 식사, 기내 판매까지 해야 해서 말도 못 하게 바쁘고 빨리 서둘러야 하는 비행이다. 하지만, 그것을 첫 비행인 내가 알 턱이 있나.
내가 실습으로 갔던 단거리 비행은 단거리에 속하지 않는 중거리에 더 가까운 중국 창사 비행이었다. 3시간을 가는 비행이라, 하루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힘들고 고되긴 하지만 그래도 “착륙 임박!! 얼른 모든 일을 끝내야 해!!” 하는 다급함은 없었다.
브리핑 실에 들어서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나의 모습도 너무 어색하고, 도망가고 싶고, 심장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으로 가득했다.
지나치다가 다른 브리핑실에서 나처럼 쭈구리 같이 구겨져 있는 동기를 발견이라도 하면 붙들고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눈치만 보며 앉아있던 와중에 우리 브리핑 실로 낯익은 훈련강사님과 남승무원 한 명 여승무원 한 명이 ‘비행실습’ 배지를 달고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한 비행에 실습 비행을 온 000,000입니다.”
실습생은 브리핑 시트에 이름이 없어서 오늘 실습생이 함께 타는지 몰랐다. 승무원 명단을 보는 법도 그 시절엔 몰랐으니까.
나도 오늘이 첫 비행인데 내 밑에 두 명의 실습생이 따라붙은 상황이었다.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제가 멘토를 하라고요…????? 상태였다. 저야말로 멘토가 필요한데요..
그 당시엔 신문 서비스가 있어서, 막내가 신문을 차려야 했다.
카트를 펴고, 묶여서 던져진 4~5 팩의 신문을 각 신문사에 맞게 분류하고 제호가 잘 보이도록 카트에 펼쳐 놓고, 주요 승객, 상위 클래스 승객들을 위해 조, 중, 동, 매경, 한경, 영자 신문, 스포츠 신문을 4~5부씩 곱게 접어 상위 클래스 담당 승무원에게 전하는 것 까지가 나의 일이었다.
요령 없이 그 무거운 신문을 막 무릎 위에 올려놓고 빨리 해보겠다고 낑낑 대고, 맨손으로 신문을 분류하다 보면 손은 잉크가 묻어 새까매지고, 손님 탑승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신문을 제대로 못 차리면 엄청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예전에 막내 담당 구역 선반은 검은 손자국이 꽤 많았다ㅎㅎㅎㅎ, 하얀 치마에 검정 잉크가 묻어있는 막내들도 꽤 있고, 이제는 다 라떼 이야기일 뿐)
그 시절엔 막내가 탑승구에서 탑승권 체크를 했는데, 요새야 바코드로 딱딱 찍어서 편리해졌지만 그땐 내 눈으로 편명, 날짜를 정확히 확인해야 했다. 오늘 처음 해보는 막내에겐 너무 가혹했다.
심지어, 그때의 중국 손님들은 무법자였다. 승무원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말도 안 통하고, 점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땀이 흐르며 눈은 매직아이가 되어갔다.
휴우… 드디어 탑승이 끝나고 좌석벨트 체크를 하고, 선반이 잘 닫혔는지 확인하고, 안전 업무를 하는 와중에도 오늘이 난생처음 근무인 비행 실습생들은 내가 인사를 끝나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내 뒤에 따라붙었다.
“선배님, 손님께서 협조를 안 해주시는데 그럴 땐 제가 강하게 말해도 됩니까?”
덩치는 나보다 두 배는 큰 남승무원이 제발 도와 달라는 말투로 나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지금 해바라기씨를 다 까서 드시고 바닥에 완전 다 버렸는데 주우라고 말씀드려야 합니까?”
나도 … 이 모든 상황이 처음이고, 당황스러운데 그들도 차마 다른 선배들에게 물을 수가 없는지 자꾸 나에게 물었다.
왜냐하면 선배들은 진짜 바빴다. 멍청이 세 명이 멍- 하니 혼이 나가있는 사이에 할 일을 다 해야 했으니까. 그런 선배를 붙들고 도저히 물을 수 없었겠지?
교육원에서 혼나가며 배우고 익힌 다나까 말투가 , 나도 교육 내내 배워서 입에 붙었지만 자꾸 저렇게 물어오니까 요즘 말로 진짜 킹 받았다.
아니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만 물어보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