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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Feb 28. 2022

첫 비행기, 첫 외국. 피지

세계 시민으로서의 첫걸음

처음 비행기를 타던 날을 기억한다. 2004년 1월 15일. 대한항공 비행기 직항을 타고 피지로 향했다. 


피지로 도착한 날은 2004년 1월 16일 아침 7시경. 2022년인 현재까지 무려 18년 전이고 18년간 여러 나라에 살고 여행해왔지만 신기하게도 처음 비행기를 타서 처음 외국에 간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머릿속에 꼭 각인이 새겨진 듯한 느낌이다.


고 1을 마무리한 겨울방학, 엄마 아빠는 한 달 뒤에 우리가 출국이란 걸 한다며 이야기를 했다. 그때까지 나는 제주도도 가보지 못했는데 비행기라니. 피지는 또 어디에 있는 나라인 건지. 난 특별히 사춘기를 세게 겪지도 않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학교는 그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장소였고 성적 등 수도 딱 중간 정도였다. 공부도 거의 안 했는데 성적이 중간이면 머리가 아주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차후에 말씀하시길, 이대로 한국에서 공부하다간 대학도 못 가고 제대로 밥값도 못하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영어라도 배우면 뭐라도 하겠지라는 마음이셨다고.




그 당시 엄마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빠는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 남아 일을 계속하셨다. 우리 집은 돈이 많은 집도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 아빠는 일을 그만두고 가족이 다 같이 가는 것을 계획하셨다. 그런데 공무원이란 직업을 그만두고 그냥 피지로 떠나기엔 너무 막연하기만 했고 그 나라를 잘 알지 못했으며 우리나라의 공무원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아빠는 가족은 항상 붙어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으나 그것을 깨고 엄마와 나랑 동생만 외국으로 보낼 결심을 하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러기 아빠란 생활은 아빠에게 너무너무 힘든 생활이었겠지만, 그래도 그 직업을 그만두지 않으신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이 된다. 우리가 가서 겪은 피지는 좋은 직업을 그만두고 갈 정도로 전망이 밝진 않았으며 오래 살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당시 이민시켜주는 대행사에서 아빠가 한국에서 하던 일을 피지에 가서 그대로 할 수 있도록 손써주겠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터무니없는 말뿐인 말이었다. 


피지로 떠난 1월은 한국에선 가장 추운 겨울이었는데, 남반구에 위치한 피지는 한국과는 정반대의 날씨로 제일 더운 곳이었다. 비행기 내에서도 너무 더웠는데 내릴 때 되니 피곤한데 너무 더웠을 뿐이었고, 또 공항이 위치한 난디에서 수바까지 3시간 운전해서 가는 동안 녹아내릴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처음 약 한 달 정도는 한인 민박집에서 살면서 비자 처리, 현지 파악, 집 구하기 등등을 했다.


엄마는 그 당시 40대로 영어도 제대로 한 마디 할 줄 몰랐는데, 아무리 한인 에이전시가 도와준다고 했더라도 그 일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핸드폰도 노트북도 없던 그런 시절... 번역기는 기대할 수도 없던 그런 때였다. 특히나 피지는 더욱더 인터넷과 거리는 멀어서 시내에 있는 한인이 운영하는 PC방에 가서 이메일 하나를 쓸래도 이메일 로딩 화면이 몇 분씩 걸렸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쓰면서 구글에다가 Bayview가 맞는지 아닌지 찾아보니, 맞는지 아닌지가 알 수 없는 게 재밌다. 왜냐면 그 시절 나는 그곳에서 구글맵이란 걸 사용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수바가 그렇게 생겼는지도 왠지 18년이 지난 이제야 알게 된 기분이고, 내가 다닌 학교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 당시 같이 지낸 친구들이 어디서 학교를 다녔는지도 이름만 알다가 이제야 어딘지 알게 된 기분이 참 오묘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피지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는데, 지도를 보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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