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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자신 Jan 19. 2021

지금 결제하시겠습니까?

수고와 함께 숙고도 사라져 버린 나의 소비에 관하여

이번 달 카드 명세서를 확인했다. 결혼 이후 카드 결제대금 최고 기록을 세웠다. 물론 이사라는 큰 변수가 있었기에 크고 작은 지출이 평소보다 훨씬 많이 생긴 이유도 있지만 지난달 대비 두배 가까이 나온 카드 대금을 확인하고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니 '이건 꼭 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눈에 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제대금 최고 기록의 일등 공신 중 하나는 바로 '간편결제' 기능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검색하고 몇 번의 고민을 하지만 일단 사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결제는 1초 만에 끝난다. 결제가 빠르니 내가 사고 나서도 산 것을 까먹어버리는 경우까지 생긴다.


사실 이 간편결제 기능은 편해도 너무 편하다. 현금이 필요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웬만한 물건은 밖에 나가지 않고 몇 번의 손가락 터치로 살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심지어 카드정보도 쇼핑몰 사이트에 한 번 등록만 해놓으면 비밀번호 여섯 자리 혹은 내 지문인식 등으로 간단하게 해결된다. 나는 이 편리한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네이*, 쿠*, 위메* 등등 굵직한 쇼핑 사이트에 대부분 카드 등록을 해 두었다. 심지어 자주 사용하는 네이*에서는 포인트 적립 혜택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유료 멤버십까지 가입해 가열차게 결제하며 포인트를 팍팍 쌓아가고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온라인 쇼핑은 완벽하게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그 옆에는 언제나 간편결제가 함께했다. 이사 전에는 일회용품 때문에라도 생필품 구매는 마트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을 선호했던 우리 부부지만, 이사 온 곳이 마트나 시장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고 마스크도 쓰지 못하는 어린 둘째 걱정에 직접 나가서 장을 보는 것이 꺼려지기 시작했다. 급하게 생필품이 떨어져도 아파트 안에 편의점 하나 없다 보니 결국 얼마 전에는 쿠*의 유료 배송서비스(로켓배송보다 더 빠른)까지 가입했다. 간편결제와 더불어 오전에 주문하면 저녁에 도착하는, 소위 로켓보다 더 빠른 배송서비스까지 콤보로 사용하니 날개를 단 듯 세상 편하다. 정말 말 그대로 카드(돈)만 있으니 다 되는 세상.


이렇게 쇼핑이 편해졌으니 내 삶의 질이 올라가야 하는데, 수고와 함께 숙고도 사라져 버린 나의 소비로 인해 몸은 편해졌을지언정 마음이 불편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쌓여가는 택배 박스와 불필요한 포장재, 플라스틱 등등.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한자라도 더 써보려고 어떻게든 쪼개서 쓰던 귀하디 귀한 자유시간(아이들 낮잠 시간)에도 끊임없이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하고 인플루언서들이 올려놓은 공동구매 물품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는 나의 모습. 물론 전염병의 위험, 어린 자녀들,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아파트 위치 등 온라인 쇼핑의 이유야 많지만 그 모든 이유를 뛰어넘어서 사실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것은 쉬운 소비가 아니라 현명한 소비일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간편결제 기능을 모두 삭제하고 모든 쇼핑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만 한다고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가족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는 사실 온라인 쇼핑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대신 앞으로는 미루고 미뤄왔던 가계부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은 가계부 애플리케이션도 잘 나와 있지만 온라인 마케팅의 노예가 돼버린 나의 수동적 소비 패턴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가계부만큼은 수기로 쓰면서 소비에 앞선 숙고를 일상화해보기로 한다. 가계부를 쓰는 자발적 수고를 통해 내가 소비하는 것들에 대한 숙고의 과정을 가지기만 해도 의식의 흐림에 따라 무분별하게 결제버튼을 누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 계획은 없고 실행(지출)만 가득했던 내가 이제 글을 쓰듯 가계부를 쓰면서 내 삶의 필요를 돌아보고, 가진 것에 감사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나눠 줄 수 있는 것도 찬찬히 헤아려 보며 내 삶의 규모를 다시금 세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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